[민은미의 보석상자] (104)
반지 외길 40년, 이석호 대표 인터뷰
“내게 반지란 사랑·행복·축복 담는 매개체
커플링과 반지 공방 문화는 우리가 종주국
세계적 반지 브랜드 탄생의 밑거름 되고 싶어”

‘커플링’은 연인이 쌍으로 맞춰 끼는 반지를 말한다. 주로 기념일, 생일, 밸런타인데이 등에 맞춘다. 그러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용어인 커플링(Couple Ring)이 사실 ‘콩글리시’, 즉 한국식 영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꿔 말하면, 커플링은 원조가 한국이다. 순도 100% 한국의 주얼리 품목이다.
해외 명품이나 브랜드의 경우, 반지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약혼반지와 결혼반지가 중심이다. 데이트하는 커플이 기념 반지를 맞추는 문화는 거의 없다. 서양에선 사랑, 헌신, 미래의 약속을 나타내는 ‘약속반지(Promise Ring)’가 커플링과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커플링'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건 1990년대쯤이다. 그런 커플링이 지금은 어엿한 보통명사가 되었고, 한국 주얼리 산업의 주요한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커플링을 주로 만드는 반지 공방 문화 또한 단연 한국이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K-주얼리를 상징하는 커플링을 10만 개 이상 만든 40년 경력의 반지 장인이 증언한 내용이다. <내 상상이 ’커플링’이 되는 순간, 번지야 놀자~>라는 제목의 기사(2025년 7월 19일 자)에서 소개했던 체험 공방의 반지 마스터 이석호 대표(59)를 지난 7월 22일에 만났다.

—반지를 만들게 된 계기는.
“만 20살에 반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소아마비 장애가 있어서 내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을 직업을 생각하다가 20살에 세공을 시작했어요. 그때 처음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주얼리 업계에서만 40년 정도 일하셨나요.
“최고의 주얼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덧 업계에 입문한 지 40년이 흘러버렸네요. 1986년 대구에 있는 회사에서 세공 기술을 배우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얼리를 만드는 여러 과정이 있는데 세공·주물·보석 세팅·광·원본 등을 각 부서를 거치며 익혔고, 디자인도 담당했습니다.
서울로 옮겨 티르리르(Tirr Lirr)라는 브랜드를 포함하여 여러 주얼리 회사에서 기획, 마케팅, 주얼리 디자인, 무역 등의 업무를 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시절인 2021년 반지 공방을 시작하게 되었죠. ”
—반지 공방 ‘반지야 놀자’가 지금은 각지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반지야 놀자’ 종로 본점을 2021년 8월에 오픈했습니다. 체인점으로 확장하여 현재 종로본점, 명동점, 홍대점을 두고 있고 홍대점은 2023년 3월부터 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지 제작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뭔가요.
“‘반지야 놀자’는 고객의 상상을 반지로 제작해 드리는 디자인 자유 공방입니다. 형태를 깎고 때우는 세공 기술과 조형감각, 그리고 섬세한 조각 세팅 기술, 마지막 화룡점정 격인 광 작업이 매우 핵심적인 기술입니다.
그러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지를 대하는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지는 사랑을 담는 장신구입니다. 그래서 고객님이 디자인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충분히 의논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어떤 의미를 반지에 담을 것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디자인 시간은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맛집은 한 번 가서 좋으면 자주 가면서 단골도 되지만, 반지 만들기는 사귀는 기간에 단 한 번뿐인 데이트 코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한분 한분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반지야 놀자’에 방문한 모든 고객의 반지는 이석호 대표와 전문 제작팀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다. 그의 일과는 아침 6시에 시작하여 10시경에 마무리된다. 반지로 시작해 반지로 끝난다. 작업량을 소화하기 위해 점심 식사는 안 하는 것이 10년 넘게 습관으로 굳어졌다.
지금까지 만든 반지가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10만 개는 족히 넘는다고 한다. 2024년에는 월평균 300~350개 정도의 반지를 제작했으니 하루 10개 이상, 일주일에 대략 80개 내외, 1년에 4000개 안팎의 반지를 제작한 셈이다. 매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해도, 40년 외길이었으니 커플링 10만 개 이상이라는 숫자가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다.
—1년 중 가장 바쁠 때는 언제입니까.
“여름 휴가철과 크리스마스입니다. 2024년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는 115쌍의 커플링을 230개 제작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특별한 데이트 코스로 반지 만들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플링이 있다면.
“산악인 커플의 커플링입니다. 2023년 9월, 클라이밍으로 만나 사랑을 키운 30대 초반 커플이 찾아왔습니다. 여름에 등정 예정인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을 반지에 담고 싶다고 했죠. 남자분은 오랜 클라이밍으로 손가락 마디가 굵어 반지 맞추기가 어려웠습니다. 마디를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사이즈를 잡고, 안쪽을 최대한 둥글게 깎아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개인 맞춤으로 제작했습니다.
사진 속 산 능선을 반지에 옮기고 입체감을 살린 후, 햇살에 빛나는 설산의 광채까지 표현해 완성했어요. 생애 처음 손에 맞는 반지를 낀 남자분의 기쁨과,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분의 따듯한 눈빛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반지를 찾으러 온 날, 감격해 90도 배꼽인사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억에 남는 다른 반지가 있다면.
“나이 차이가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자매의 레터링 반지입니다. 동생이 꼭 갖고 싶은 반지가 있는데 그동안 여러 공방에 문의해 봤지만 만들 수 없다고 했답니다. 간절히 반지를 원하는 동생을 위해 언니가 저희 공방을 찾아 방문하셨습니다. 필기체로 연결된 ‘Serendipity’라는 글자와 초승달 모양을 넣어서 반지를 만들어 줄 수 있냐는 것이었어요. 가느다란 선으로 꼬아서 글씨의 모양을 하나의 선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최고의 고난도 반지였습니다.
3주가 소요되어 반지를 만들어 드렸고, 자매는 뛸 듯이 기뻐하셨습니다. 동생분이 저를 ‘드림 메이커’라고 부르셨어요(웃음). 자신의 꿈을 실현해 준 반지라며… 누군가의 꿈과 소망을 이루어 주는 행복. 이것이야말로 '반지야 놀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석호 대표의 고객은 아버지 손을 잡고 온 동네 소녀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손님까지 다양하다. KTX를 타고 서울을 찾는 지방 고객도 많고, 그들의 반지가 또 다른 고객으로 연결된다. 인근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외국인 고객도 흔하다.
가장 먼 곳에서 온 고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한국에 가면 꼭 들르라’는 친구의 추천으로 입국하자마자 반지를 주문하고 출국 직전 찾아갔다. 최근에는 K-문화의 영향으로 한글을 각인해 달라는 요청까지 있다고 한다.

—손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작업하시는데, 손은 무사한가요.
“세밀한 힘 조절을 스치는 줄의 감각으로 하다 보니 작업을 많이 하는 날에는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닳아서 피가 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순간접착제를 손가락에 여러 겹 덧발라서 인조 피부처럼 만들어서 계속 작업을 합니다. 반지를 받아 기뻐할 고객님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평균 16시간 작업을 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조금 힘든 날이 있네요(웃음).
세공하는 사람이라 손에 작은 상처는 늘 달고 지냅니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데 오래 줄질을 하다 보니 손목이 가끔 결리는 날이 있긴 합니다. 요즘은 가벼운 운동을 아침 시간에 하고 조금씩 작업시간을 줄여가며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반지를 만들어왔는데, 직접 끼시는지.
“저는 반지를 끼지 않습니다. 작업할 때 손의 감각을 무디게 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식 같은 마음으로 반지를 대하는데, 그중 어느 하나를 제가 착용한다면 다른 반지들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웃음)”

—만약 자기 반지에 한 마디를 새긴다면, 그 문구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
—대표님께 '반지’란 무엇인가요.
“사랑과 행복, 그리고 언약과 축복을 담는 매개체입니다.”
—앞으로 목표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반지 만들기 체험은 지금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반지 공방 문화의 종주국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진로를 정하는 직업 체험을 위해 시작한 반지 체험이었는데, 18년을 이어오는 동안 디자인 종류가 늘어났고 제작 기법 또한 다양화되었습니다. 반지 공방 문화가 세계에 더 많이 소개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반지야 놀자’는 전국 체인으로 키워가고 싶습니다. 반지 만들기를 하러 서울까지 올라오기 어려운 지방 고객들을 위해 온라인 반지 만들기 사이트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주얼리 제작 기법 그리고 노하우가 적잖게 축적되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반지 브랜드가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여성경제신문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