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자 간 연애와 동거
가족 분쟁·재산 다툼까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

"둘이 밤에 자주 같이 속삭이시더라고요"
70대 중반의 이 씨는 인근 병원에서 만난 같은 단지 여성 입소자 A 씨와 몇 달째 연애 중이다. 함께 산책 하고 병원도 예약도 같은 날로 잡는다. 한달에 한 번은 외출 외박도 함께 한다. 문제는 A 씨의 자녀들이 최근 실버타운 측에 이들의 ‘접촉 제한’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엄마가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자꾸 감정에 흔들려요. 저 남자 믿을 수가 없어요. 부동산 정리 얘기도 하고 엄마 통장에 뭐가 빠져나간 것 같기도 하고…” A 씨의 장남은 실버타운에 ‘치매 초기 증상 진단서’를 제출하며 “보호자 동의 없는 외박 제한”을 요청했다. A 씨는 “사랑하면 안 되냐”고 했다.
16일 여성경제신문 기획 '실버타운 2.0'은 입소자 간 황혼기의 사랑에 대해 취재했다. 익명의 전국 노인복지주택 5곳을 취재한 결과 입소자 간 ‘교제’, ‘동거’, ‘결혼 의사 표현’은 빈번하게 관찰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설은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두지 않고 있었다.

한 실버타운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입소자 간 사적 관계는 사생활 영역이라 개입하기 어렵다”고 했고 또 다른 시설은 “가족 민원이 들어오면 일단 제한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생활 존중과 보호자 요청 사이에서 시설 운영자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법무법인 다랑 소속 이다희 변호사는 실버타운 내 황혼 연애가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봤다. 이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동거 상대가 치매 초기라는 진단이 있거나 가족이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재산 이동이 발생할 경우 형사 민원이나 민사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유언, 상속 문제와 얽힐 경우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수도권의 한 실버타운에서는 한 여성 입소자가 연인 관계였던 남성에게 수차례 현금을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 보호자 측이 ‘기망에 의한 편취’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사례도 있다.
반대로 실버타운의 경우 일명 '돈 있는 노인'이 대부분 입소해, 금전적 거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만 자녀 간 분쟁으로는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현행 장기요양보험제도나 노인복지법에는 실버타운 내 입소자의 사적 연애나 동거에 대한 규정이 없다. 요양시설이 아닌 자립형 실버타운의 경우 ‘주거의 자유’가 존중된다는 원칙 아래 개입할 수단이 부족하다.
실버타운 관계자는 “입소자의 인권과 자유는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보호자와의 갈등이나 법적 분쟁이 예상되는 경우 시설의 대응 매뉴얼 마련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은 일부 실버타운에서 ‘고령자 동거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두고 있다. 연애와 동거 자체는 허용하되, 치매나 사전의사 확인이 필요한 경우 반드시 후견인 혹은 법정 대리인의 확인을 받도록 한다. 독일, 덴마크 등에서는 고령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명확히 규정한 판례도 존재한다.
이다희 변호사는 “고령자 연애를 도덕이나 감정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의 언어로 설명할 준비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입소자와 가족, 시설 간 갈등을 예방할 최소한의 ‘고령자 동거 가이드라인’이 도움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보완책을 제안했다. △사전 연애·동거 동의서 제도화: 입소 초기에 본인의 연애·동거 의사 및 금전 사용 권한 범위 등을 명시한 문서를 작성 △가족 협의제 도입: 고령자의 연애가 지속되면 시설 측이 보호자와 공식 협의를 거치는 중재절차 마련 △치매 여부 판단 기준 마련: 치매나 인지장애가 의심되는 경우 전문가 소견을 통해 ‘의사결정능력’ 판단 △입소자 프라이버시 보호 매뉴얼: 가족 민원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설별 매뉴얼 표준화 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전체 이혼 건수는 9만 1151건으로 1년 전보다 1243건(1.4%) 줄었지만 결혼 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1만5128건으로 2.3% 증가했다. 10년 전인 2014년(1만319건)과 비교하면 46.6%나 급증한 수치다. 전체 이혼 중 30년 이상 부부의 비중은 16.6%로 2014년 대비 7.7%포인트 상승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30년 차 이상 부부의 황혼 이혼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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