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양종희·진옥동 직접 나서
AI 전략 내재화 속도 내는 금융권
'수장 주도 디지털 리더십' 부상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19일 우리금융 본사에서 직접 ChatGPT 업무 활용 실습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19일 우리금융 본사에서 직접 ChatGPT 업무 활용 실습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 

AI 전환은 더 이상 특정 부서나 전담 조직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 산업의 생존과 직결된 경영 아젠다가 된 지금 회장들의 책상 위에도 AI가 올라왔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양종희 KB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등 주요 금융지주 수장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AI 전략을 주도하면서 ‘수장 주도의 디지털 리더십’이 새 경영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는 직접 학습에 나서고 일부는 조직적 확산을 유도하는 가운데 경영 전략의 중심에 기술을 끌어들이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지난달 23일부터 그룹 CEO와 임원, 본부장 등 237명을 대상으로 AI 주제의 온·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한다. 이번 교육은 이달 27일까지 이어지며 다음 달 1일 열릴 하반기 경영포럼의 사전 준비 과정이라는 게 신한 측의 설명이다.

포럼의 주제는 ‘AX(인공지능 전환) 신한-이그니션(점화), 신한의 미래’로 당일에는 경영진이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담당 업무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디어톤(아이디어+마라톤)’도 열린다. AI 에이전트는 목표를 이해하고 필요한 작업을 스스로 계획·실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과 기술 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진 회장이 금융을 넘어 산업 전환을 선도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포럼 주제를 제시하고 경영진의 교육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KB금융은 지난 11일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지주 및 주요 계열사의 데이터·AI 분야 임직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룹 데이터 혁신 세미나’를 열고 고객 맞춤형 금융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전략과 사례를 공유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지주 및 계열사들이 금융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개발 전략, 데이터 공동 분석과 모델링을 통한 그룹 시너지 창출 사례, 마케팅 예측 모델 적용 방안 등을 공유했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데이터는 단순한 수집 그 자체보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알고자 하는 바가 명확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며 “비즈니스 현장과 고객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은 디지털 금융 리더십 강화를 위해 그룹 본사와 은행 연수원에서 챗(Chat)GPT 활용 실습 연수를 지난 19일 실시했다. 이번 연수에는 임종룡 회장을 비롯해 지주와 그룹사 임원들이 참여해 AI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전략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수는 실제 업무에 적용 가능한 실습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임원들은 직접 프롬프트를 설계하고 업무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임종룡 회장은 이번 연수를 계기로 AI 대전환 추진에 더 속도를 낸다는 포부다. 임 회장은 “AI 기술은 리더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설계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며 “AI는 더 이상 특정 부서의 전유물이 아닌 전 임직원이 모두의 AI로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할 새로운 언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AI가 반복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금융권 일자리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일부 직무는 축소되거나 사라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AI 전환 과정에서의 고용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AI가 금융권의 인력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직무 재편과 노동력 전환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금융연구원 브리프 ‘디지털 전환 시대의 금융권 인력 재편: AI 도입과 새로운 기회’에서는 AI의 도입으로 기존 직무의 많은 부분이 인력의 직접적인 투입 없이도 수행 가능할 것으로 봤다. 다른 한편으로는 AI 도입에 따라 새로운 역할과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상당수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영민 연구원은 “금융권의 경우에는 AI가 기존의 인력들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노동력의 변화와 직무 재편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AI가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인간은 보다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 그룹 모두 AI를 단순 기술이 아닌 전략적 의사결정과 고객 경험 설계의 핵심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AI 전략이 특정 부서 중심이 아니라 최고경영자에서부터 시작되는 ‘탑다운형 리더십’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AI를 경영 전략의 본류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감지된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요즘은 기술을 단순히 효율 개선에 쓰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경영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앞으로 경쟁력을 지키려면 지금부터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경영진 사이에서도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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