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보이차를 마시는 첫 다기는 표일배
자기 차호와 자사호는 쓰임새가 달라
찻주전자 외에 꼭 필요한 것은 저울
지인이 중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 왔다는 보이차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선물로 받은 보이차를 한번 마셔보고 싶지만 덩어리로 된 차가 생소하기만 하다. 보이차는 선물로 가성비가 높아 보여서 그런지 차를 마시지 않는 데도 한두 편은 가지고 있는 집이 많다. 보이차는 유통 기한이 없는 차이니 혹시 집에 있으면 오래되었다고 버리지 말고 우려서 마셔보자.
보이차를 선물로 받았으면 아마도 생차보다 숙차일 확률이 높다. 포장지를 벗겨 보아서 검은색에 가까우면 숙차, 녹색을 띠고 있으면 생차라고 보면 되겠다. 보이차는 생차나 숙차를 가릴 필요 없이 뜨거운 물을 바로 붓고 내려 마시면 된다. 그런데 보이차를 어떤 다구로 우려 마셔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보이차를 우려 마시는 데 필요한 다구에 대해 알아보자.
보이차를 마시는 첫 다기는 표일배
표일배는 상품명이지만 딱히 다른 이름을 알아낼 수 없다. 찻주전자, 거름망, 숙우가 하나로 된 삼위일체 다기라고 할 수 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히 여기는 중국 사람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찻그릇이 아닐까 싶다. 표일배는 히트작이었던 게 분명한 건 개량을 거듭해서 이제는 품격을 갖춘 고급 제품이 나오고 있다.
표일배는 차를 우리는 기능의 내배와 우린 찻물을 담는 외배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을 열고 찻잎을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붓고 나서 뚜껑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찻물이 거름망을 거쳐 내려간다. 표일배의 내배는 찻주전자(茶壺)와 거름망, 외배는 숙우의 역할을 한다. 세 가지 다구를 하나로 만들었으니 차 생활에 이보다 편리하게 쓸 다기는 없을 것이다.

표일배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사무실에는 정수기가 있으니 따로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된다. 여행길에도 숙소에 대부분 전기포트가 있으니 몇 가지 차를 표일배와 함께 가져가면 차 마시는 건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누구하고 여행하더라도 숙소에서 차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되새겨볼 추억이 될 것이다.
보이차 생활은 차 마시는 일이 습관이 되는 게 우선이다. 다구를 갖추어야 차를 마실 수 있다면 다반사가 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매일 차 마시기가 일상의 일이 되고 나면 절로 필요한 다구를 갖추게 될 것이다. 보이차에 관심을 가진다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편리한 다구인 표일배를 추천한다.
자기 차호와 자사호는 쓰임새가 다르다
표일배를 써서 차 마시는 게 익숙해지면 폼나게 다기를 갖춰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사실 표일배를 써서 차를 우려 마시는 건 음료수를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 차를 마신다고 하면 찻그릇을 써야 제대로 향미를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다기 전문점이 가까이 보이지 않으니 구입할 기회가 마땅치 않다.
보이차의 종류가 수없이 많은 것처럼 다구(茶具)도 갖추려면 종류나 가격대가 혼자 결정하는 게 무리이다. 표일배로 차 마시기를 습관으로 삼았으니 찻그릇도 기본만 갖춰서 손에 익히는 게 순서이다. 찻주전자(茶壺)는 재질로 보면 두 종류인데 자기와 자사호이다. 자기로 된 차호는 익숙하지만 자사호를 선택하려면 차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차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자사호보다 자기로 된 차호를 쓰는 게 좋다. 용량은 120cc 정도를 쓰면 혼자 마셔도 좋고 세 사람 정도까지 차를 우려도 괜찮다. 차호를 구입하려면 차 도구 전문점을 찾아서 직접 보고 구입하는 게 좋지만 온라인으로 부담이 적은 가격으로 선택해도 좋다. 제값을 주고 구입할 다구는 차 생활이 깊어지면 저절로 선택하게 된다.
차 생활에 내공이 들어가면 필요한 다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차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차호보다 개완을 즐겨 쓰는 편이다. 개완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기 전에는 자기 차호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기는 저렴한 걸 여러 개 갖추는 것보다 제값을 주고 평생 쓸 수 있는 하나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서너 개 값으로 한 개를 산다고 보고 구입하면 실망하지 않을 다구를 갖추게 될 것이다.
찻주전자(茶壺) 이외에 꼭 필요한 다구는 차 저울
차를 우리는 찻주전자 외에 갖추어야 할 다구는 한둘이 아니다. 차판, 숙우, 찻잔, 거름망 등등 종류가 많지만 차호를 준비하면서 눈에 띄는 대로 준비하면 된다. 보이차는 뜨거운 물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한 가지씩 갖추면 된다. 녹차나 홍차를 본격적으로 마시자면 소위 ‘장비빨’이 부담이 되지만 보이차는 우려 마시는 데 초점을 두면 그만이라 본다.
우선 차판은 크기를 작은 것으로 구입하는 게 좋다. 보이차는 일상에서 매일 마시게 되므로 식탁 한쪽에 둘 수 있도록 작은 크기로 준비한다. 찻잔도 용량이 적은 걸로 쓰는 게 좋은데 찻잎 4g 정도를 넣고 열 번 이상 우려 마시는데 큰 잔으로 마시면 얼마나 배가 부를까? 차를 우려서 담아 나누는 숙우는 유리 재질로 200cc 전후로 준비하면 된다.

차판에 차호와 찻잔, 유리 숙우가 놓이면 차를 우려 마시는 준비는 끝난 셈이다. 여기에 꼭 필요한 다구가 더 있는데 주방용 저울이다. 보이차는 덩어리져 있는 긴압차라서 무게를 가늠하는 게 쉽지 않다. 차를 우릴 때마다 일정한 양을 넣어야 하는데 눈대중으로 맞추는 건 어렵다. 차호 용량 120cc 기준에 3~5g 정도를 넣으면 되는데 저울로 양을 맞춰 넣는 게 좋다.
덩어리 차에서 덜어내려면 보이차칼이라는 해괴 전용 송곳이 필요하다. 보이차는 긴압도가 단단한 건 돌덩어리 같은데 송곳질을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보이차칼은 짧게 쥐고 송곳질할 때 보이차를 잡은 손과 반대 방향으로 해야 한다. 차 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송곳질에 마음을 쓰지 않아 상처를 입기도 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보이차 생활은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다. 차 생활에 익숙해지면 밥보다, 물보다 더 자주 많이 마시게 된다. 물그릇이 따로 필요하지 않듯, 밥그릇을 신경 쓰지 않고 담아 먹듯이 보이차는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아도 좋다. 그렇지만 밥도 좋은 그릇에 담아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듯 찻그릇도 갖추어 마시면 더 맛있게 다가올 것이다.
차를 일상에서 물보다 더 자주 마시는 중국에서는 녹차를 유리잔에 넣어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신다. 차 마시기가 습관이 되면 좋은 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차만 준비되면 우선 표일배로 우려 마시면서 차 생활을 시작하고 차차 다구를 장만하면 될 것이다. 배가 고프면 그릇을 따지지 않고 밥을 먹듯이 차는 마음의 갈증까지 해소해 주니 차가 고파지면 찻그릇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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