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 출신 지휘자
예술을 일상으로 이끌다
"예술은 고통의 해방구"
예술은 어렵다. 특히 클래식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인공지능으로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며,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열리며 예술의 문턱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이제 예술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됐다.
분명 반가운 변화다. 하지만 동시에 무수히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작품'과 '상품'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예술은 무엇일까. 모두가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과 깊이는 여전히 중요하지 않을까.
여기,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이가 있다. '춤추는 지휘자'로 알려진 백윤학 영남대학교 교수다. 그는 지휘봉을 손에 쥔 채 어깨를 들썩이고, 팔을 휘두르며, 입으로 멜로디를 따라 부른다.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관객과 감정을 나누는 그의 무대는 유쾌하고 생동감 넘친다.
최근 그의 지휘 숏폼 영상은 유튜브에서 130만 뷰를 넘기기도 했다. 인기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직캠 영상이 클래식 지휘자를 대상으로 있다니. 그의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최근 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더 많은 대중과 만나기도 했다.
백 교수의 지휘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기술을 넘어선다. 영화 인어공주의 삽입곡 'Under the Sea'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무대 위를 누비고, 영화 알라딘 OST의 장엄한 선율에는 자신의 감정을 실어 올린다. 그의 무대에서 관객은 웃고 박수치며 감정으로 연결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연주 중 지휘자와 눈을 맞추며 웃고 즐긴다. 지휘자의 에너지가 단원에게, 다시 관객에게 전해지는 이 흐름은 기존의 엄숙한 클래식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그는 공연 스타일 뿐 아니라 이력도 색다르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던 백 교수는, 대학 시절 교내 아마추어 합창 동아리에서 지휘를 맡게 되며 음악과 운명처럼 만났다. 합창단과의 깊은 교감은 그의 진로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결국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뒤, 다시 서울대 작곡과에 편입해 지휘를 전공했다. 이어 미국 커티스대학, 템플대학에서 유학까지 마친 그는 비전공자 출신이라는 한계를 넘어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3년에는 정명훈 당시 서울시향 음악감독의 지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현재 그는 영남대 음대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한편, 다양한 곳에서 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지난해에는 픽사의 대표 애니메이션 장면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연주를 펼친 '픽사 인 콘서트'를 지휘해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현재는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브리 & 디즈니 OST FESTA 2025 전국투어'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백윤학 교수는 클래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 음악을 무대 위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로 선보이며, 예술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것이란 가치관을 무대 위에서 증명한다. 그의 무대를 본 관객들은 클래식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대중 문화와 결합한 클래식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과거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인용했다. "인생 그 자체는 지옥과 같은 고통인데 이런 고통을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어요. 모든 예술은 음악의 형태를 동경한다고 하면서 음악이야말로 예술의 꽃이며 일상의 고통과 권태로움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했죠."
여성경제신문 서은정 기자 sej@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