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인 기준연령 70세 상향 검토
제도 조정 시 수백만명 영향 가능성
해외는 연금·고용제도 함께 개편 대응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햇볕을 피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햇볕을 피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44년 만에 노인의 정의를 다시 쓰려 한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노인 기준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 또는 75세로 상향하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수백만명이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는 복지 공백의 그늘도 짙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세 차례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노인 기준연령 조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왔다. 다음 달에는 범부처 회의를 열어 향후 정책 방향을 모색할 방침이다.

현행법상 명확한 노인의 정의는 없다. 다만 노인복지법상 경로우대 조항에 따라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간주해 정책이 설계돼 왔다. 지하철 무임승차, 노인일자리, 통신비 감면, 기초연금 지급 등 다양한 복지 제도가 이 기준을 따른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복지부는 이에 따라 연령 기준 상향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그 여파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기준연령을 70세로 조정하면 약 365만명이, 75세로 조정할 경우 약 610만명이 기존 복지제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중앙정부 사회복지 예산 중 노령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115조8000억원)로 사상 처음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정부는 노인 기준연령 상향이 기초연금 등 의무지출을 줄이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는 기준연령이 70세였다면 2023년 기준 6조8000억원의 예산 절감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단순한 예산 논리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통계청의 ‘2024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64세) 취업 경험자들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을 그만둔 평균 나이는 52.8세였다. 법정 정년(60세)보다도 빠르게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년은 60세인데 연금은 65세부터 시작되고, 기준연령이 70세로 올라가면 그 사이의 소득 공백은 더 벌어진다.

박민석 노인복지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노인 기준연령 조정은 단순한 연령 조정이 아닌 연금 수급 연령, 정년 제도, 노동시장 구조 전반과 연동해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특히 “경제적 여건과 건강 상태가 계층별로 극심하게 차이나는 한국 현실에서는 연령만으로 선을 긋는 정책은 오히려 불평등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했다.

비슷한 딜레마를 겪은 일본과 독일은 제도적 정비를 통해 대안을 모색했다. 일본은 1971년 제정한 ‘중고령자 고용촉진 특별조치법’을 바탕으로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해 65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법적 정년을 유지한 채 정년 이후 재고용이나 계약직, 사회공헌형 일자리 등 다양한 방식의 고용을 유도하고 있다.

독일은 연금 수급 시작 연령을 2029년까지 67세로 늦추는 한편 ‘고용보험 연계형 점진적 퇴직제도’를 운영 중이다. 고령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줄이면 고용보험을 통해 임금 손실분을 보전받고 이 자리에 실업자나 훈련생을 투입해 세대 간 고용 이음도 도모한다.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연금 조정과 고용정책을 병행하며 단순히 ‘연령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40~60대 중장년층은 이미 부모 부양과 본인 노후 준비를 동시에 짊어진 세대다. 기준이 올라가면 이들은 기존 복지 사각에 끼어버리는 ‘끼인 세대’가 될 수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인 연령만 높아지면 다른 세대 기준과의 불균형으로 소외계층이 생겨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계적 상향과 세대 전체의 나이 재정립이 함께 이뤄져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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