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동화, 오너 3·4세 체제 본격화
한미, 전문경영인 중심 거버넌스 전환
지배구조 재편·책임경영 강화 가속화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경영 체제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오너 3세·4세 체제를 본격화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전문경영인 중심의 거버넌스를 선언한 곳도 있다. 업계 전반에 걸친 공통된 흐름은 ‘지배구조의 안정’과 ‘책임경영 강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일약품이다. 한상철 사장이 공동대표에 오르며 창업주 고(故) 한원석 회장의 손자이자 한승수 회장의 장남인 ‘오너 3세’ 체제가 공식화됐다. 한 사장은 2006년 입사 후 마케팅, 경영기획 등 핵심 보직을 거쳐 경영 수업을 밟아왔다. 특히 2020년 신약개발 자회사 온코닉 테라퓨틱스를 설립하며 R&D 중심의 체질개선을 주도했다.
한 대표의 경영 복심에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가 있다. 제일약품은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을 2019년 3.46%에서 2022년 6.78%로 끌어올렸다. 지난해에는 자체개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정’이 국내 허가를 받으면서 성과도 가시화됐다.
다만 승계 과제가 깔끔히 풀린 건 아니다. 지주사인 제일파마홀딩스 지분율을 보면 한승수 회장이 57.8%를 보유한 반면, 한상철 대표는 9.7%에 그친다. 상속세·증여세 부담으로 지분 승계가 더딘 탓이다. 한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는 714억 원에 달하며, 이를 증여할 경우 최대 60% 가까운 세금이 부과된다. 한 대표가 받는 연봉 수준으로는 수백억 원대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날 동화약품도 윤도준 회장의 장남 윤인호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윤 대표는 2013년 입사 이후 전략기획실과 OTC사업부 등을 거치며 경영 실무를 익혔고 최근에는 COO와 계열사 대표를 겸임하며 ‘오너 4세’ 체제를 자연스럽게 준비해왔다. 동화약품은 활명수, 후시딘, 판콜 등 국민 의약품 브랜드를 보유한 장수 제약사다. 윤 대표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한미약품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와 주요 계열사 한미약품은 26일 정기 주총 이후 이사진을 재편하고 창업가 가족인 송영숙 회장은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신임 대표이사로는 김재교 부회장이 선임됐고, 재무책임자인 심병화 부사장과 외부 전문가 3인이 이사진에 합류했다.
한미는 글로벌 제약사 머크처럼 오너 일가는 ‘감독’에 집중하고 전문경영인이 독립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미의 창조·혁신 정신을 계승해 ‘R&D 한미’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했다.
종근당은 올해 매출 1조 5864억 원, 영업이익 995억 원을 기록했다고 보고하며 주당 110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자회사 종근당홀딩스도 주당 1400원을 배당하기로 했다.
보령은 오너 3세 김정균 대표 단독체제로 전환했다. 기존 각자대표 체제에서 전략적 결단을 빠르게 집행할 수 있는 구조로 변경한 것이다. 보령은 우주산업 및 필수의약품 생산 능력 확대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전문경영인의 전면 배치를 추진하는 기업도 있다. JW중외제약은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고 있는 함은경 총괄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셀트리온은 25일 주총에서 서정진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를 결정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서 경영 참여를 2년 더 이어간다. 서 회장은 2021년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2023년 복귀해 3사 통합 추진을 이끌고 있다. 올해도 110만 주의 자사주를 소각하며 주주환원에 나섰다.
유한양행은 배당 확대와 함께 2025년부터 3년간 주주환원율을 평균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자사주 1%를 소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오너 경영의 세대교체, 전문경영인 체제의 정착,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 이 흐름의 끝에는 ‘지속가능한 경쟁력’이라는 키워드가 자리하고 있다.
복지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의 주주총회 흐름은 세대교체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양대 축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오너 3세의 경영 전면화가 본격화되는 기업과, 한미약품처럼 전문경영인 체제를 명문화하며 글로벌 거버넌스를 지향하는 기업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 제약 산업의 지배구조가 일률적인 오너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과 진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했다.
이어 "이 같은 전환은 R&D 투자 확대와 사업 다각화, 주주환원 정책 등과 맞물려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