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샤오미 찾아 반도체 승부수 띄운다
주가 반등·HBM 반격 예고, 삼성 ‘겨울’ 끝낸다

1993년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 회의실에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선언은 충격이었고 삼성은 품질·혁신·글로벌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삼성전자가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출발점이 된 그날을 경영사(經營史)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 부른다.
31년 뒤 그의 아들 이재용 회장이 사즉생을 외치며 중국 베이징에 섰다. 반도체 부진, 글로벌 공급망 변화,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삼성의 생존과 반격을 걸고 나선 자리다. 위기를 돌파할 결단은 다시 국경을 넘는 길에서 시작됐다.
위기의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임원 세미나 영상 메시지를 통해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질타했다.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대목에선 경영진 전체를 향한 경고장이 담겨 있었다.
삼성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틀 뒤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선 경영진 전원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은 "올해 반드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실적을 회복하겠다"며 "유의미한 M&A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도 "HBM3E 12단 제품이 빠르면 2분기부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HBM4 등 차세대 제품 개발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사회 구성에도 변화가 있었다. 반도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전영현 부회장, 송재혁 DS부문 CTO가 신규 이사로 선임됐다.

시장 반응은 빠르다. 5만원대에서 횡보하던 삼성전자 주가는 3월 20일 종가 기준 6만원 선을 넘었고, 21일에는 6만1700원으로 마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지난 17일부터 5거래일 연속 순매수세를 보였다.
이런 흐름엔 대외적인 호재도 한몫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19일(현지 시간) 연례 개발자 회의(GTC)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HBM3E의 탑재 가능성을 언급하며 "삼성은 베이스다이에서 ASIC와 메모리를 결합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황 CEO는 이후 부스 투어에서도 삼성전자의 GDDR7 그래픽 메모리에 사인하며 ‘GDDR7 Rocks!’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비관적 시각에서 선회한 증권가 분위기도 삼성전자엔 긍정적이다. 지난해 반도체 겨울론을 주도했던 모건스탠리는 3월 18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6만5000원에서 7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같은 날 발표된 마이크론의 실적도 고무적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38% 증가했고, HBM 매출만 10억 달러를 넘겼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분기 HBM 가격이 최대 8%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며 기존보다 낙관적으로 돌아섰다. 낸드 부문도 미국 샌디스크가 4월부터 가격을 10% 인상한다고 통보하는 등 분위기 반전 조짐이 감지된다.
이 회장은 반도체의 해법을 외부에서도 찾고 있다. 그는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한 중국 고위급 발전포럼(CDF)에 참석한다. 2023년 이후 2년 만의 참석이다. 팀 쿡 애플 CEO, 퀄컴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 등 글로벌 기업 수장들이 함께했다. 한국에선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도 참석한다.
이 회장은 포럼 전날 샤오미의 전기차 공장을 찾아 레이쥔 CEO와 면담했다. 샤오미는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사다. 이 회장의 이번 방중은 중국 내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와 공급망 안정화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그는 지난해 중국발전포럼에서도 천민얼 톈진시 당 서기와 면담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등 가능성을 반신반의하고 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렌드포스 전망치 기준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올해 영업이익이 14% 상향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LS증권 차용호 연구원은 “컨벤셔널 D램 가격 하락 폭이 줄어드는 흐름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추세적인 반등이라 보기엔 이르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초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 6곳의 실적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삼성전자의 1분기 매출은 77조1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1%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4조7316억원으로 28.37%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