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희 엔비전스 대표 인터뷰
100% 시각이 차단된 어둠 속
로드마스터와 함께하는 100분
"어둠=얻음···경험을 경험하다"

빛이 전혀 없는 어둠 속에서 100분을 보낸다면 어떤 기분일까. 처음에는 불안함이 밀려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감각이 깨어난다. 주변 소리, 촉감,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유일한 길잡이가 된다. 시각이 사라진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얻을 수 있을까.
서울 북촌과 화성 동탄에서 운영되는 '어둠 속의 대화' 전시는 100%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다양한 테마를 체험하는 공간이다. 단순한 장애 체험이 아닌 소통 방식 자체를 바꾸는 문화 체험을 목표로 한다. 이 특별한 전시는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체험하는 동안 로드 마스터가 관람객을 안내한다.
송영희 엔비전스 대표는 "어둠 속의 대화는 경험을 경험하는 전시"라며 "어둠 속에서 용기를 얻어가고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깨우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 또한 이 전시의 매력에 빠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2007년, 시각장애인인 그는 처음 관람객으로 어둠 속의 대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2년 뒤 전시 운영을 맡게 됐다.
여성경제신문이 송 대표와 만나 어둠 속의 대화가 주는 메시지와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ㅡ'어둠 속의 대화'가 한국에서 시작된 과정과 대표님의 참여 계기가 궁금하다.
"국내 어둠 속의 대화는 2007년 처음 시작됐다. 처음부터 내가 운영한 전시는 아니었다. 당시 속기사로 일하고 있었고 단기 전시로 진행된 어둠 속의 대화를 관람객으로 체험했다. 그런데 전시를 마친 후에도 그 경험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전시장에 다시 찾아가 오전만이라도 일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고 점점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전시가 연장될 때마다 함께했지만 운영을 맡았던 회사가 도산하면서 전시도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전시 운영을 맡게 됐고 2009년 네이버의 투자를 받아 재개됐다. 이듬해 엔비전스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아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2010년 신촌에서 상설 전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2014년 북촌으로 이전했다. 2021년에는 두 번째 전시장인 동탄점이 문을 열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전시를 처음 체험했을 때 답답함과 두려움이 컸지만 나를 안내해 준 사람이 마치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던 기억이 깊이 남았다. 그 경험이 이 전시가 단순한 장애 체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과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줬다."
ㅡ해외 전시와 차별화된 부분 그리고 단순한 '시각장애 체험'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스토리텔링을 강화한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문화적 경험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해외 전시장에서는 테마별로 개별적인 체험이 진행되지만 우리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A 테마를 경험한 후 B 테마로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A에서 B로 가는 과정 자체를 이야기로 풀어간다.
북촌점은 독일 전시의 기본적인 테마 순서를 유지하면서 스토리를 추가해 변형했다. 반면 동탄점은 처음에 시각적으로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한 뒤 그림 속으로 들어가 여행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이후 또 다른 공간에서 손으로 직접 그림을 만져보고 공간을 상상한 뒤 실제 체험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처럼 기존 전시 방식과 달리 관객이 단순한 감각적 체험을 넘어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경험을 확장하도록 설계했다."

ㅡ해외에서는 어둠이 인종, 계급과 같은 차별적 요소를 없애는 방식으로 해석된다고 들었다. 국내 전시가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이 전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용기'다. 다른 나라처럼 어둠이 차별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공통적이지만 우리는 특히 이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을 얻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어둠 속에 들어온 관람객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깜깜한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하다가 체험 후에는 '살 만한데'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시각이 사라지는 경험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도 시각을 바꾸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관람객뿐 아니라 전시를 운영하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깨닫고 전시를 진행하면서 용기를 얻는다."
ㅡ기자는 처음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맨 뒤에 서게 돼 불안감을 더 크게 느꼈다. 어둠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목소리뿐인데 로드 마스터의 소리는 멀고 뒤에는 아무도 없어 뒤처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고 앞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불안감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관객들이 이러한 감각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겪도록 의도된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 테마다. 전 세계 '어둠 속의 대화' 전시가 공통적으로 첫 번째 테마로 자연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과 막막함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어둠 속에서 조금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물론 나라별로 자연의 모습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 외의 감정 변화는 운영진이 모든 단계를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 경험하면서 만들어지는 부분이 크다. 진행 방식은 큰 골격만 정해져 있고 로드 마스터마다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도 어떤 로드 마스터와 체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복 방문하는 관객들이 많다."

ㅡ실제로 관람객들이 전시 후 어떤 변화를 경험했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으시는지 궁금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전시 초창기 한 남성이 혼자 전시장을 찾았다. 당시엔 관람객이 많지 않아 로드 마스터와 1 대 1로 체험을 진행했는데 100분 동안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 체험이 끝나고 전시장에서 나간 후 로비에 있던 스태프가 "아까 그 초등학생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로드 마스터는 성인이라고 생각했던 관객이 사실은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이었던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그가 어린 학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과연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상대를 바라보는 선입견이 얼마나 쉽게 작용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사례였다. 이 외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체험 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는 후기를 남긴다. 전시를 체험한 후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ㅡ이 전시는 로드 마스터와 관람객이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만나고 어둠 속에서 헤어지는 룰이 있다고 들었다. 이 룰을 처음 정할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획하셨는지 궁금하다. 해외도 같은가.
"각자의 상상을 지키기 위해서 고수하는 원칙이다. 모든 국가가 같은 방식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어둠 속의 대화는 전시장과 로드 마스터 모두 비공개로 운영된다.
운영진은 "100만명이 다녀갔다면 100만 개의 전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객마다 어둠 속에서 경험하고 상상하는 공간이 다 다른 것이다. 만약 전시장을 시각적으로 공개하거나 로드 마스터의 모습을 보여주면 각자가 만들어낸 고유한 상상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의 경험은 어둠 속에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같은 이유로 로드 마스터도 본명이 아닌 '투어 네임'으로 불린다. 이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경험하는 순간에 가장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ㅡ앞으로 이 전시를 더 확장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킬 계획이 있다면.
"어둠 속의 대화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감각 체험을 시도하며 확장해 나가고 있다. 현재 '다이얼로그 시리즈' 도입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이 시리즈는 특정 감각을 제한한 상태에서 새로운 방식의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다. △다이얼로그 인 사일런스: 소리를 차단한 채 청각장애인이 가이드가 되어 진행하는 전시 △다이얼로그 위드 타임: 나이가 들어감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니어 가이드와 함께 경험하는 전시다.
현재 한국에서는 어둠 속의 대화만 운영 중이며 '다이얼로그 인 사일런스' 도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는 5월에는 '플라워 인 더 다크'라는 특별 이벤트도 진행한다. 관람객이 어둠 속에서 꽃의 향기와 촉감을 느끼며 직접 꽃바구니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ㅡ마지막으로 이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 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둠 속의 대화란 결국 어떤 경험"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경험을 경험하는 전시', '어둠=얻음' 이 두 가지로 표현하고 싶다. 이 전시는 영화처럼 눈으로 보고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손으로 만지고 소리를 듣고 상상하며 느끼는 공간이다.
한 관람객이 '어둠=얻음'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우리가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느껴준 표현이었다. 어둠 속에서의 경험이 불편함을 동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깊이 생각하고 상상하며 기존의 감각과 사고방식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어가는 전시이자 경험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