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사이 부활한 ‘역할 대행 서비스’
감정의 상업화, 외로움 경제의 명과 암

한때 사회적 논란으로 주춤했던 역할 대행 서비스는 최근 몇 년 새 청년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애인, 친구, 하객 등 특정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이 서비스는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연합뉴스
한때 사회적 논란으로 주춤했던 역할 대행 서비스는 최근 몇 년 새 청년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애인, 친구, 하객 등 특정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이 서비스는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연합뉴스

"연애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1박 2일에 약 150만원, 1시간에 6만원 정도면 돼요. 하루를 보내고 결제를 끝내고 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마치 꿈을 샀던 것 같았어요."

돈으로 감정을 거래하는 시대다. ‘애인 대행’, ‘친구 대행’, ‘하객 대행’ 등으로 불리는 ‘역할 대행 서비스’가 인기다. 외로움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와 1인 가구가 주 수요층이다.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가 마주한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라는 거대한 흐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때 사회적 논란으로 주춤했던 역할 대행 서비스는 최근 몇 년 새 청년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애인, 친구, 하객 등 특정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이 서비스는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A 역할 대행 서비스 업체를 창업한 김모 씨는 여성경제신문에 "서비스 수요는 초기 대비 30배 가까이 늘었고 프리랜서 채용 인력도 약 100명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시간당 비용은 약 6만~10만원. 서울에 사는 대학생 박모 씨(25)는 "또래 여성과 단순히 대화하고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줄었다"고 했다.

여성 고객도 증가 추세다. 결혼식 하객 동행이나 부모님에게 소개할 애인 역할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를 ‘외로움 경제’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김석진 심리상담연구소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외로움 경제란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소비 패턴을 기반으로 형성된 산업 생태계를 뜻한다"면서 "영국과 미국에서는 포옹 전문가 서비스 ‘커들리스트’, 친구 대여 플랫폼 ‘렌트어프렌드’ 등 관련 시장이 이미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디지털 멘탈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급성장하고 오프라인 커뮤니티와 로봇 반려 서비스까지 다양화하고 있다"며 "사회적 고립,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젊은 세대와 고령층 모두가 외로움 경제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역할 대행 서비스가 긍정적 평가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사기와 개인정보 유출 등 소비자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비스 자체가 인간관계의 상업화를 부추기며 진정성 없는 감정 거래로 사회적 고립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엔 한 유튜버가 애인 대행 서비스를 체험한 후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영상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유튜버와 애인 대행 서비스를 통해 만난 애인 대행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여성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해 유튜버와 만난 뒤, 이름 대신 닉네임을 사용하는 등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1박 2일 데이트 기간 파주 헤이리 마을 방문, 커플링 제작, 놀이동산 교복 데이트 등 일상을 보냈다. 데이트 첫날 잠은 각자의 숙소에서 잤다.

영상 속 여성은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손님 중 이상한 사람은 없고 나 또한 이상한 사람도 아니다", "(손님 중엔)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다", "악플은 자제 부탁드린다. 건전한 데이트니, 이상한 생각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 등이다.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건전한 서비스일 수 있다"는 의견과 "감정 없는 소비가 인간관계의 진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으로 나뉘었다.

외로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되면서 정부와 기업도 대응에 나섰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 장관’을 임명하고 민관 협력으로 외로움 문제 해결에 나섰다. 한국 역시 서울시가 ‘외로움 없는 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 강화와 고립 가구 발굴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업과 협력해 외로움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이를 브랜딩 기회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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