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50bp 내리면서도 '침체설' 일축해
연내 인하 폭 100bp vs 75bp 의견 분분
'키' 쥔 일본은 기준금리 0.25%로 동결
부동산 안 잡혔지만···한은은 '일단 웃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년 6개월 만의 피벗 시작부터 50bp(1bp=0.01%) 인하로 출발하자 시장에는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 침체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 추가 금리 인하 기대를 경계했다.
20일 일본은행에 따르면 지난 이틀간 진행된 금융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종전 0.25%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로써 시장은 미-일 금리차가 적어질 때 발생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현상에 대한 우려를 한시름 놓게 됐다.
앞서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50bp 내린 5.00%로 결정했다. 발표 전 시장에서는 ‘25bp 인하설’과 ‘50bp 인하설’이 팽팽히 맞섰지만 12명의 금리 결정 위원 중 11명이나 50bp 인하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양호한 수준으로 발표되면서 연준의 빅컷 가능성과 베이비컷 가능성은 비슷하게 점쳐졌었다.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2.5%로 집계되면서 3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했다. 연준이 통화 정책을 결정할 때 중요시하는 근원 CPI 상승률은 3.2%로 전문가 예상(3.0%)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준금리 발표 직후 시장은 잠시 강세를 띠었으나 빅컷을 단행한 데 이어 대부분의 금리 결정 위원이 이에 투표한 것으로 드러나자 경기 침체 우려가 퍼지며 약세 마감했다. 기준금리 발표 직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은 전장보다 0.25%포인트 내렸고 S&P500과 나스닥 지수도 각각 0.29%포인트, 0.31%포인트 떨어졌다.
통상 기준금리가 떨어지면 기업은 비교적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되고 가계는 저축보다 소비할 유인이 커지기 때문에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신호로 통한다. 하지만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 둔화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 제기되면서 시장에 호재로 작용하지 못했다. 실제로 같은 날 발표된 경제전망(SEP)을 보면 올해 실업률은 6.0%(6월 전망)에서 6.6%로 상향 조정된 반면 경제성장률은 2.1%에서 2.0%로 하향 조정됐다.
빅컷이 침체에 들어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을 일축하기 위해서 파월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시장을 진정시켰다. 파월 의장은 "FOMC는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빅컷 결정 이유를 설명하고 "이를 앞으로의 금리인하 속도로 간주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예상을 소폭 하회해 시장의 우려를 초래했던 고용지표에 관해서도 "노동시장 여건이 분명히 냉각되었음에도 여전히 완전고용에 꽤 근접한 수준에 있다"면서 "경제지표(소매판매, GDP 등)를 보면 경제가 여전히 견조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설을 일축했다.
연준에서 향후 비슷한 속도로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에 경계심을 드러내자 25bp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던 대다수의 투자은행 역시 이번 빅컷을 '매파적 빅컷'이었다고 해석하며 시장에 충격을 줄 요인은 아니었다고 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매파적 요소가 가미된 혼합적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했으며 모건스탠리는 점도표상 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린 것을 지적하며 "매우 분열된 회의였으며 일부는 매우 매파적인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연준 위원 중 연내 100bp의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한 것은 19명의 연준 위원 중 1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명은 연내 100bp의 인하가 과도하다고 평가했으며 그중 2명은 50bp 인하에서 멈출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곧 이날의 금리 인하를 제외한 추가 인하는 없다는 뜻이 된다.
앞으로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속단하기는 쉽지 않은 만큼 시장의 향방을 좌우할 '키'는 일본 중앙은행(BOJ)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BOJ는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한 것이다.
미-일간 금리 차가 줄어들면 저렴했던 엔화로 전 세계에 투자됐던 자산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나타나는데 이는 국내 증시에도 타격을 미친다. 하지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로 결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7월의 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을 파악할 시간이 좀 더 필요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3월 일본은 17년 만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내고 이어 7월 31일에는 기준금리를 0.25%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8월 5일에는 전 세계 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일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아시아 국가의 증시가 폭락하기도 했다.

앞서 전문가 사이에선 BOJ의 베이비스텝 가능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닛케이신문의 자회사인 금융정보업체 퀵(QUICK)이 17일 발표한 외환시장 월차 조사 결과 BOJ가 9월에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응답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96%에 달했다.
반면 BOJ 총재는 지속적으로 매파적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4일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월 금리 인상에도 실질 금리는 큰 폭의 마이너스가 지속되고 완화적 금융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며 "현재의 금리 수준이 경제활동을 계속해서 뒷받침할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가 지난달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은 BOJ가 연말까지 금리를 다시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이 피벗 시작부터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하향 조정한 만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한은이 당초 목표로 했던 2% 중반대로 수렴하는 추세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한은의 차기 통화정책방향 회의는 다음 달 11일로 예정돼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와 관련해 한은 내부 의견도 온도차를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현재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할 위험이 더 크다"고 언급한 반면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외환시장의 변동성 완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향후 국내 경기와 물가 및 금융 안정 여건에 집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