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업자 이끄는 미국 패션 주얼리 시장
한국에선 제도에 발목 잡혀 성장 동력 하락
브랜드에 밀려 기회 놓치는 국내판 주얼리

GOLD - BROCKHAMPTON. /유튜브

"A-yo! Keep a gold chain on my neck! (금목걸이를 내 목에 두르고 있지)"

미국 힙합 가수 'BROCKHAMPTON(브록햄튼)'의 노래 'GOLD(골드)'의 가사 중 일부다. 브록햄튼은 매번 무거운 금목걸이를 두르고, 손가락엔 자동차 한 대 값 다이아몬드를 끼고 무대를 휘젓는다. 미국에서 주얼리는 힙합과 뗄 수 없는 존재다. 힙합이 주얼리 시장의 '매출 효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 중심엔 '벤 볼러'라는 주얼리 아티스트가 있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계 미국인 벤 볼러(본명 벤 양·46)는 스눕독', '50센트' 등 인기 힙합 가수들의 주얼리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다.   

그의 연 수입은 약 3000만 달러(한화 약 400억원)로 알려졌다. 벤 볼러는 세계적인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래퍼 에이셉 라키와 믹 밀, DJ 머스타드 등 힙합계 거장들은 물론 저스틴 비버, 톰 크루즈, 머라이어 캐리 등 수많은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주얼리도 제작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볼러는 LA에서 태어나 베벌리힐스 고등학교를 거쳐 UC버클리를 졸업했다. 현재 주얼리 브랜드 'IF&CO'를 포함해 3개의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주얼리 디자이너, 음악 프로듀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벤 볼러(왼쪽) /SNS
벤 볼러(왼쪽) /SNS

자료조사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주얼리 시장은 76억 달러 규모다. 2026년까지 매년 0.95%의 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22년 보석 부문 매출의 대부분이 패션 주얼리에서 발생했다. 금과 은, 플래티넘으로 만든 귀금속 주얼리와 액세서리가 높은 산업 점유율을 기록했다.

의상 주얼리는 미국에서 지난 5년 동안 중요한 제품 부문으로 부상했다. 패션 주얼리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소비자들의 의상 주얼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북미 의상 주얼리 시장은 2027년까지 7.10%의 연평균성장률(CAGR)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같은 성장세를 대형 브랜드가 아닌 개인 주얼리 사업자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보석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곳은 뉴욕주로 보석 산업 시설의 22%, 개인 주얼리 사업체의 33%가 자리 잡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 지역이 20.3%, 18.8%로 뒤를 잇고 있다. 대부분의 보석 산업체가 뉴욕 카운티에 집중됐고 이곳 제조업체의 약 69.1%가 개인 사업자다.

벤 볼러가 제작한 주얼리 /SNS
벤 볼러가 제작한 주얼리 /SNS

익명을 요구한 주얼리 업계 한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힙합 문화 특성상 금목걸이, 다이아반지 등 주얼리 착용이 필수"라며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를 이루었다는 걸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래퍼들의 특징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래퍼들 혹은 젊은 세대는 옷이나 신발 등 패션은 대형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주얼리는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 혹은 이니셜을 담아 주문 제작하는 방식을 좋아한다"면서 "힙합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특히 개인 주문 제작 시스템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형 브랜드보단 벤 볼러와 같은 전문 주얼리 디자이너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주얼리 업계 개인 사업체 89.7%
노후화된 산업 구조에 경쟁력 '흔들'

유튜브 채널 '괴릴라 데이트'를 보면 국내 인기 래퍼 '수퍼비'가 종로에서 금을 쇼핑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4년 전 조회수 488만 회를 기록했다. 영상에서 수퍼비는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제작된 목걸이를 두르고 나왔다. 그는 "이런 게 플렉스(Flex)"라며 자화자찬하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 '괴릴라 데이트'에 출연한 래퍼 '수퍼비' /유튜브
유튜브 채널 '괴릴라 데이트'에 출연한 래퍼 '수퍼비' /유튜브

국내 주얼리 시장은 브랜드 사업체보다 개인 사업체로 구성된 비 브랜드 비중이 큰 점이 특징이다.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주얼리 시장 내 비 브랜드인 개인 사업체 비율은 소매업 기준 89.7%로 회사법인 비율 10.3% 대비 약 8배다. 종사자 수 또한 1만4638개 업체가 최소 1명에서 최대 4명까지 근무 중이다. 

국내 주얼리 시장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다. 하지만 해외 주얼리 유명브랜드의 인지도와 노후화된 산업 구조 등 현안에 밀려 국산 주얼리 브랜드로서의 경쟁력을 잃고 있다. 주얼리 업계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국내 주얼리 시장은 1990년까지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정돼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등 기형적으로 발전했다"면서 "특히 주얼리 제품에 높은 세율의 개별소비세가 부과되는 등 규제 위주의 정책이 지속되면서 성장 동력을 잃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한국판 '벤 볼러'가 나오려면 정책적 기반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얼리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기반 조성을 위해서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와 관련 통계자료 조사 및 분석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업계에서 나온다. 

종로 귀금속 거리 /연합뉴스
종로 귀금속 거리 /연합뉴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 사업자 중심으로 이뤄진 국내 주얼리 업계 특성상, 소규모 사업체로 이루어진 주얼리 업계 종사자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통계 수집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주얼리 산업 진흥을 위해 '주얼리의 유통관리 및 산업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5년마다 주얼리산업기반조성계획을 수립·시행하고,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함'을 골자로 한다. 

또한 주얼리산업 기반조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보석·귀금속 및 주얼리산업 관련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위원으로 구성하는 주얼리산업기반조성위원회를 설치 및 운영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법안은 현재까지 국회 계류 상태다. 국회 관계자는 본지에 "행정조사의 경우 국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불편 사례로서 생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면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조사 대상인 소매업자는 소규모의 인적·물적 요건을 갖추고 영업을 하는 자인 만큼 이러한 조사가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포괄·추상적으로 규정된 조사의 목적·대상 및 그 요건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해 불필요한 조사가 남용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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