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면표시 훼손 알아보기 어려워
지도상 안내하는 건물 명칭 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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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이마트24에서부터 이가주방까지 이어지는 안심 귀갓길. ‘여성 안심 귀갓길’이라는 노면표시는 페인트가 벗겨져 주의 깊게 살펴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 230m의 거리에서 5개의 노면표시를 발견했는데, 하나같이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워져 있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대원칼국수에서부터 노웅빌딩까지 이어지는 안심 귀갓길도 ‘여성 안심 귀갓길’이라는 노면표시는 훼손된 데다 주차된 차량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노면표시는 밤이 되면 전혀 보이지 않아 더더욱 유명무실했다. 고등학생 채자인 씨(16)는 “스터디카페에서 늦도록 공부하고 이 길로 자주 집에 가는데, 여성 안심 귀갓길인지 몰랐으며 바닥에 쓰인 글씨는 눈치채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안심 귀갓길’ 제도는 밤길 여성의 안전한 귀가를 위한 종합 대책으로 2013년 처음 시행됐다. 서울시의 안심 귀갓길은 362개이며 길마다 CCTV, 보안등, 비상벨 등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정작 시민들은 자기가 다니는 길이 ‘여성 안심 귀갓길’인지 모른다.
‘우리 집 주변이 안심 귀갓길일까?’ 궁금하다면 지역구 경찰서 홈페이지에서 여성 안심 귀갓길 표준 노선 파일을 다운받아 지도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북경찰서는 ‘안심 귀갓길[4]’를 원양빌라에서 아마스빈까지의 거리로 안내하고 있지만, 건물의 실제 명칭은 ‘원양빌라’가 아니라 ‘원앙빌라’다.

기자는 성북경찰서 홈페이지에 공개된 표준 노선을 따라 ‘안심 귀갓길[3]’을 살펴보러 갔는데, 주변에서 10분가량 헤매야 했다. 공개된 자료에 표시된 안심 귀갓길 시작점인 이마트24 편의점이 폐업했기 때문이다.
CCTV는 철제 박스에 들어 있어서 CCTV라는 것을 잘 알아볼 수 없었고, 전봇대 비상벨은 주위에 잔뜩 붙어있는 전단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2년가량 살았다는 양지훈 씨(24)는 “1년쯤 지나서야 겨우 안심 귀갓길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민원 빅데이터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10일까지 10건의 ‘귀갓길’ 관련 민원이 있었다. ‘보안등 또는 가로등이 고장 났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여성 안심 귀갓길’은 2013년 시행될 때부터 운영, 관리에 여러 의문점이 있었다. 이를 지적하는 기사도 여러 매체에서 연례행사처럼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양지훈 씨는 “안심 귀갓길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위험에 처했을 때 경찰에 전화를 걸어 위치 번호까지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성 안심 귀갓길 곳곳에 있는 112신고 안내표지판에 대한 이야기였다. 표지판에는 ‘긴급신고 시 위치 번호를 알려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190-02-마’와 같은 위치 번호가 쓰여있다.
‘여성 안심 귀갓길’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덕분에 안심이 된다는 시민들도 안심 귀갓길의 선정 기준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 성북구 보문로 카페 구월에서부터 포도까지 이어지는 안심 귀갓길은 자동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다. 근처에서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주변에 맛집이 많아서 늦은 시간까지 사람이 많이 다니는데, 왜 여기를 안심 귀갓길로 지정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길을 자주 걸어 다니는 김옥경 씨(72)는 “여기 안심 귀갓길은 원래 안전한 편인데 비해, 정작 인근의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는 아무런 조치가 없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심 귀갓길에서 70m가량 떨어진 김옥경 씨의 집 앞 골목은 성인 세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만큼 좁았고 가로등도 없었다.
유승하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