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62)
평민 출신 여인을 사랑한 루이 15세
공식 정부로 입궁시켜 ‘마퀴즈’란 직위 하사
그녀의 입술 모양에서 탄생한 ‘마퀴즈 컷’
양 끝이 뽀족한 긴 타원형의 보석 연마법

“그녀의 입술과 닮은 다이아몬드를 만들라.”
다이아몬드를 좋아했던 왕이 왕실 보석상에게 명했다. ‘그녀’는 바로 퐁파두르 부인(본명, 잔앙투아네트 푸아송, Jeanne-Antoinette Poisson, Marquise de Pompadour, 1721년~1764년). 왕은 루이 15세다. 퐁파두르 부인의 미모에 매료되었던 루이15세는 그녀의 입술이 그가 본 가장 완벽한 입술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퐁파두르 부인의 이름을 딴 ‘마퀴즈 컷(Marquise Cut)’ 다이아몬드다.
루이 15세(1710년~1774년)의 재위 기간은 1715년에서 1774년으로 다섯 살에 왕위에 올라 무려 59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애첩 중 한 명으로 왕이 35~55세 중·장년의 20년을 함께 보낸 애첩이었다. 사냥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동안 내연의 관계를 맺다가 1745년에 루이 15세가 그녀를 공식 정부(情婦)로 삼기 위해 베르사유궁에 입성시킨다.
루이 15세의 애첩들 대부분은 귀족 출신이었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첫 평민 출신이었다. 공식 정부가 되고 나서도 내부적으론 무시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그녀는 왕의 마음을 독차지했다. 왕은 입성과 동시에 그녀에게 마퀴즈(Marquise, 후작 부인)라는 귀족 직위를 하사했다. 평민이던 그녀는 후작 부인이 되었고, 왕이 그녀를 부르던 호칭이 바로 ‘마퀴즈’(후작, Marquise)였다. ‘마퀴즈 컷’이라는 이름의 뿌리인 셈이다.

초상화에서 보듯 퐁파두르 부인은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녀는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적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베르사유궁에 들어온 후 그녀는 정치와 외교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 당대의 실세로 꼽혔다. 권력의 실세이면서도 예술적인 안목이 뛰어나 문화, 예술, 학문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한편으로 그녀가 입는 드레스, 주얼리, 신발과 헤어 스타일은 유럽 여성 모두가 따라 했을 정도로 18세기의 로코코 패션을 주도했다. ‘원조 트렌드 세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퐁파두르 부인의 이름에서 오늘날 공식적인 보석 용어인 '마퀴즈 컷'까지 탄생했다. 마퀴즈 컷은 다이아몬드 연마(鍊磨-보석을 깎고 갈아 모양을 만드는 것)의 한 형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다이아몬드의 연마 형태는 원형으로 57~58면으로 깎아 빛의 반짝임을 극대화한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Round Brilliant Cut)’.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을 제외한 나머지를 ‘팬시 컷(Fancy Cut)’이라고 부른다. 오벌 컷, 하트 컷, 마퀴즈 컷, 페어 컷, 에메랄드 컷, 쿠션 컷 등이 팬시 컷에 속한다. 마퀴즈 컷은 긴 타원형에 양쪽 끝이 뾰족한 모양이다. 마치 퐁파두르 부인의 입술처럼…

국내 주얼리 시장에서는 마퀴즈 컷 모양이 작은 배를 닮아 ‘보트(Boat) 다이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로로 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인해 착용시 손가락이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마퀴즈 컷’은 가장 우아한 다이아몬드 컷 중 하나로 꼽힌다. 마퀴즈 컷의 우아한 실루엣이 가장 돋보이기 위해서는 대칭성(Symmetry)과 가로와 세로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톤의 모양이 너무 길거나 짧을 경우, 빛이 새어 나가 스톤의 일부분이 어두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퐁파두르 부인의 로맨스가 탄생시킨 마퀴즈 컷이야말로 다이아몬드에 숨어 있는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랑은 새로운 다이아몬드를 탄생시키고, 다이아몬드는 새로운 연마방식으로 진화해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랑을 이어주고 있다. 로맨스와 다이아몬드. 그것은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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