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
종사자 절반 이상 '폭행·부당행위 경험'
요양보호사 실태조사도 '전무후무'

노인 요양원에서 근무 중이던 한 20대 요양보호사가 업무과다 및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대부분인 요양보호사 직군에서 텃세가 만연한 게 현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요양원 내 부당행위를 당해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1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지난해 11월 국내 A 요양원에서 근무한 3년 차 요양보호사 김민지 씨(가명·28)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는 지방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이다. 졸업 후 지역 복지관 취업을 준비하다 여의치 않자 미리 취득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활용해 노인 요양원에 지난 2019년 취업했다.
김씨의 측근 이모 씨(친구·여·28)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평소 복지관에 취업하는 게 민지의 목표였다"면서 "그런데 취업이 잘 되지 않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일단 복지 현장을 둘러보고 경력을 쌓기 위해 요양보호사로 취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빨리 취업했다. 아버지가 실직해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데 이마저도 잘 풀리지 않아서 많이 어려워했다"고 덧붙였다.
민지 씨는 평소 소심한 성격 탓에 힘든 일이나 속마음을 주변 사람에게 잘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민지 씨의 극단적 선택 이후 발생했다. 자택에 남겨놓은 유서에는 민지 씨가 직접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문의 글이 담겼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입소자의 자세를 바꿔주는 일과 성적 비정상 행동이 심각한 남성 치매 노인을 담당하는 업무 등을 모두 나에게 맡겼다"며 "선배 요양보호사는 '젊은 만큼 경험이 없으니, 다양한 환자를 경험해 봐야 한다. 노인 환자는 돌볼 때 요령이 필요하다. 그러니 초반에 아주 힘들어야 현장 경험을 빨리 쌓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가스라이팅 하면서 나를 굴렸다"고 언급했다.
이어 "입소자 노인에게 성추행당해도 '치매 환자를 돌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보면 얼마나 이쁘겠나. 손녀 보는 것 같아서 그러시는 거다. 이 정도는 성추행도 아니다'면서 흘려 넘겼다"고 적었다.
김씨 유족은 김씨가 요양보호사 직군과 관련되지 않은 업무도 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박모 씨(여·58)는 본지를 만나 "폐기저귀 처리 담당, 식자재 운반, 요양원 청소, 박스 정리 등 잡무도 모두 떠넘겼다"면서 "심지어 운전할 줄 안다고 해서 노인 이동 업무도 종종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법원 "망자 배척해 극단 선택 놓이게 했다"
김씨의 부모는 법정에 요양원을 제소했다.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스트레스에 의한 자해가 사망 원인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난달 25일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업무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 악화가 인식 능력을 저하했고 망자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까지 했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2019년 망인이 자신의 상황과 관련 원장과 동료 요양보호사로부터 관심과 배려를 받았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고, 오히려 망자를 배척해 극단적 선택에까지 놓이게 했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이외의 업무를 맡게 됐을 때 받은 스트레스도 일반인보다 높았을 것으로 봤다. 실제 A씨는 설날과 연휴 기간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판사는 "기존 동료들의 텃세가 사회초년생에게 극심한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A씨는 설날과 연휴 기간에 근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당행위 신고시스템조차 없는 노동 '사각지대' 요양보호사
현재 가능한 요양보호사 원내 부당행위 관련 신고 절차는 소속 기관에 알려 이용자를 바꾸는 정도다. 정부 지침 신고 절차 가이드라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요양원·기관별로 대응하다 보니 요양원 원장과 대표자 성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는 원내에서 개인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요양보호사 등 지역 장기 요양 요원에 대한 근무 환경 실태조사는 아직 이뤄진 적이 없다. 도 단위 요양보호사 지원센터가 마련된 것도 지난해가 처음이다. 전국적 센터 설립 기조 아래 강원도 장기 요양 요원 지원센터가 2021년 12월 설립돼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 중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한 유일한 설문조사인 '서산시 요양보호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내 요양보호사 중 64.3%는 돌봄 대상자 가족이나 대상자 혹은 동료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고용 형태를 보면 전체 조사 응답자 중 정규직 18.7%, 계약직 81.3%로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불안에 놓여있다.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소속의 한 법인 요양원장은 "각 요양원 시설장이 따로 요양보호사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내려온 지침도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에게 물어 환자 교육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