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도 없는 규제에 발 묶여 투자 60% 급감
외부자금 40% 제한룰에 포기한 사례 多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사법제도는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대 흐름을 읽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긴즈버그
법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버린' 법은 사회와의 조화를 깨트린다. 여성경제신문은 기획 특집으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법령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지지부진한 국회의 입법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제는, 시대가 법을 바꿀 차례다. [편집자 주]

#국내 한 대기업은 ESG 경영 차원에서 외부 투자자와 50 대 50 지분을 투자해 공동 운용(Co-General Partner)하는 목적으로 하는 재간접펀드 구성안을 검토했다. 통상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벤처캐피탈(VC)에 출자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외부자금 출자가 40%까지만 허용되는 일반지주회사 CVC에 대한 규제에 걸려 검토 단계에서 무산됐다.
벤처·스타트업 투자 급감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펀드 조성 시 외부자금 비율을 최대 40%로 제한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벤처·스타트업 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60.3% 감소)났다. 2020년 말 공정거래법의 개정으로 일반 지주사의 CVC 설립이 허용됐지만, 일반지주회사 소속 CVC는 비 지주회사 그룹의 CVC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규제가 투자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이란 회사 법인이 대주주인 벤처 투자전문회사를 뜻한다. 통상 CVC는 동일 그룹 내 계열사, 그룹 외부 출자자의 펀딩을 받아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그런데 일반지주사에 대한 대표적 규제로 CVC가 조성하는 펀드에 외부자금 비중을 40%로 제한하는 제도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또 일반지주회사 CVC는 해외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비율도 최대 20%로 제한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지분 100% 의무 보유와 자기자본의 200% 이내의 외부 차입금 제한, 투자조합 자금조달 시 총수일가 및 계열 금융회사의 출자 금지 등의 규제로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지주회사가 주식을 소유한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및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가. 자신이 소속된 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아닌 자가 출자금 총액의 100분의 40 이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을 초과하여 출자한 투자조합
반면 해외의 경우 일반지주회사 CVC의 설립 방식과 펀드 조성상 특별한 규제가 없어 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조를 선택할 수 있다. 중국 레전드 홀딩스의 자회사인 레전드캐피탈(CVC)이 2011년에 결성한 ‘RMB Fund Ⅱ(펀드)’에는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와 함께 전국사회보장기금이사회(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 시안 샨구파워(에너지 회사) 등 다양한 외부 기관이 자금을 출자했다.
이른바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일반지주 CVC에 대한 차별적 정책은 금융권의 규제 완화 기조에도 배치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해 자산운용사가 창업투자회사 등과 함께 벤처투자법에 따른 벤처투자조합을 공동 운용할 수 있게 허용했다.
국내외 벤처투자 대기 자금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업종 분류가 상이한 2개 사가 벤처펀드를 공동으로 운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벤처기업에는 오히려 신규 자금 유치의 기회이기도 하다"며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금융권 규제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반지주회사 CVC는 혜택을 받기 어렵다. 벤처투자조합 공동 운용시 운용 주체가 50%씩 출자하는 것이 업계의 관례인데 외부 투자자가 40%까지만 출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정부가 앞서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CVC의 설립과 운영에 제한을 둬 제도의 실효성을 반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