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 백일장 출품작 김인구 님 작품
여성경제신문은 9월 28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말 못할 응어리를 가슴 속에 안고 있는 치매 환자 돌봄 가족의 사연을 받았습니다. '해미'는 순우리말입니다. '바다에 낀 아주 짙은 안개'란 뜻으로 나이가 들면서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끼는 병 '치매'의 대체어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치매'란 병명은 어리석을 치와 매라는 부정적인 한자 뜻을 품고 있어 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또한 이 질병에 대한 국민의 의식 전환을 위해서 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해미 백일장은 해미라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가족이 사연을 공유하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해미 백일장에 출품한 김인구 님의 사연입니다.

오전 6시 30분. 내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리면 엄마도 눈을 배시시 뜨고 몸을 일으킨다. 50살이 넘은 이 나이에 엄마랑 같은 방에서 잘 줄은 몰랐다. 전쟁이 시작된다.
잠은 깼어도 엄마는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한다. 일단 기저귀 확인. 불행히도 오늘은 2000ml 용량을 초과해 바지는 물론 상의까지 오줌 범벅이다. 심한 날은 머리카락까지 오줌에 적셔져 있는데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랄까.
8시 10분에 오는 주간보호센터 차량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홀딱 벗겨서 후다닥 샤워시키고 옷 입히고, 아침밥을 먹인다. 아침밥 먹는 동안도 안심은 금물. 밥을 먹다가 졸고, 중간에 숟가락 놓고 자리 이탈, 밥 먹을 때마다 나오는 콧물이 행여 음식에 떨어지지 않는지 감시해야 한다. 식사 후에는 양치질 및 틀니 세척, 외출복으로 환복을 한 후 아침 약 복용. 차량 도착 전화 받고 대기 장소로 데려가서 차량 탑승. 5년째 반복되는 아침 일상이다.
주간보호센터가 있어서 6년을 모실 수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힘은 가족이 주었다. 특히 나의 아내. 치매에 걸려 본인을 밥해 주는 아줌마로 알고 있는 시어머니와 만성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는 남편, 거기에다 둘째 아이는 고삼. 수능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저 멀리 제주에 있는 나의 장모도 고령에 치매인데 시어머니 때문에 자주 찾아뵙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을 돌보는 아내가 고맙다. 생전에 아내에게 효행상이라도 줘야 하는데 언제 가능할는지. 아빠와 치매 할머니와의 육탄전을 방불케 하는 전장 속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면서도 큰 불평 없이 인내해준 두 아이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식들이 엄마를 방치했구만." 8년 전, 날로 이상해지는 엄마의 증세를 얘기하자 신경정신과 의사분이 한 말이다. 너무 정곡을 찔려서 가슴이 아팠다.
오랫동안 병치레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만의 여유 있는 노년을 계획했던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점점 심해지는 망상, 의심, 폭언, 불안증상 등이 치매의 전조증상이었음에도 자식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며 병을 키웠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치매약 먹으며 장기요양등급을 받고 함께 살자고 했는데, 본인은 남의 집 전세살이는 못 한다는 똥고집으로 1년을 허비하다가 낙상으로 손목 골절이 되고서야 합가하였다. 그리고 만 6년이 다 되어간다.

친척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엄마와 함께 사는 나보고 효자라고 한다. 가슴이 찔린다. 나는 효자는커녕 엄마에게 막말하고 어떤 때는 때린다. 궁디 팡팡 정도가 아니라 아프라고 때린다. 너무 답답하니까. 망가져 가는 엄마와 일상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한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답답하고 그래서 막말도 하고 때린다.
치매 보호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 치매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데려가기, 요양보호사 도움받기, 주간보호센터 다니기. 치매 보호자의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움인데 정작 치매 환자 본인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도 이 과정에서 엄마와 수많은 전쟁을 벌였고 전쟁을 목격한 아내와 아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효자가 아니라 패륜아다.
치매 엄마와의 동행에서 가장 힘든 점은 하루하루 악화되는 과정을 계속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완치는 바라지도 않고 상태가 유지가 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바램일 뿐이다. 이제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고 하면 잔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단다. 식탐 많고 예쁜 옷 좋아하던 엄마가 어찌 저리 되었는지. 그 와중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망상으로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치매는 환자 본인보다 보호자들이 힘든 병인 듯하다. 물론 엄마가 정신이 있다면 본인이 더 힘들다고 할 것 같지만.
치매 보호자 모임 카페에 가입했다. 나와 비슷한 치매 환자를 모시고 사는 보호자들뿐만 아니라 요양시설에 부모님을 모신 회원들의 사연이 구구절절해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나마 6년 째인데 초기를 경험하는 보호자들은 안쓰럽다. 치매를 완치시켜 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보호자들 사연을 보면 슬프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치매 보호자들은 휴일을 싫어한다. 특히 명절 등 긴 연휴는 더 싫다. 주간보호센터가 쉬면 24시간 독박 돌봄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엄마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일주일 집에서 격리되었을 때는 엄청난 망상 및 반복 행동 때문에 온 가족이 정신병에 걸릴 뻔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치매 보호자들은 부모가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대부분의 치매보호자들이 그럴 수도 있다. 불효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전에 무언가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치매치료제가 개발되든가 아니면 마음 놓고 모실 수 있는 요양시설이 충분히 늘어나든지 간에.
잠든 엄마 옆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밤. 어디선가 지릿한 냄새가 난다. 내일 아침도 바쁜 하루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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