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언박싱]
최측근 2명 모두 구속···우울증 호소
당 대응 전략 오락가락···“기대 이하”
‘야당 탄압’ 프레임 만드는 데 실패
‘개인 일’ 인식 버리고 사과·책임져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의 최측근인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9일 구속됐다. 이 대표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에 이어 자신의 양팔을 모두 잃은 셈이 됐다. 이제 그들의 ‘입’에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의 최측근인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9일 구속됐다. 이 대표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에 이어 자신의 양팔을 모두 잃은 셈이 됐다. 이제 그들의 ‘입’에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9일 구속됐습니다. 이 대표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에 이어 자신의 양팔을 모두 잃은 셈이 됐습니다. 이제 그들의 ‘입’에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사법 리스크’ 정국은 어느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소환과 구속영장 청구가 기정사실로 되는 형국으로까지 치닫고 있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은 검찰의 칼날을 주춤주춤 피하며 뒤로 물러서고만 있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위기 상황에서 개인적 감정에만 치우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여주며 169석의 제1야당 존재감을 제대로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8일 저녁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북스’의 전태일 평전 소개 편에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자기소개를 하라”는 유 전 이사장의 말에 다소 의아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이 대표는 “특별히 자기소개를 드릴 건 없고, 요즘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할까, 그런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시청자들은 ‘이 대표가 이태원 참사와 최측근들의 구속 등으로 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인 것 같다’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제1야당의 대표가 공적 의식 없이 너무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것 같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나왔습니다. 

이런 부정적 기류 때문이었는지 민주당은 다음날 이에 관한 짧은 해명 글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냈습니다. 민주당은 문자메시지에서 “전날(18일) 방영된 ‘알릴레오’ 방송 중 이 대표 발언의 취지에 대해 알려드린다. 상상할 수 없는 참사로 인해 사회 전반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상황이라는 뜻”이라고 전했습니다. 해당 방송의 녹화가 이뤄진 시점이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이었던 지난 3일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 대표는 인사말을 대신해 (발언)한 것이며, 개인적 신상 발언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해명은 그리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이재명 대표 본인의 ‘우울증’을 말한 것인데 사회 전반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해명은 이 대표의 ‘실언’을 더 부각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우울증’ 언급 배경에 대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는 해석과 ‘사법 리스크에 대한 이 대표의 정치적 부담과 스트레스 표출’이라는 해석이 엇갈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영상이 공개된 시각, 이 대표 측근인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법원에서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오비이락’ 격으로 심적 ‘우울감’을 토로했을 수도 있습니다. 경위야 어쨌든 이재명 대표가 ‘우울증’까지 언급한 배경에는 자신의 두 최측근이 모두 구속되면서 자신이 그다음 차례라는 것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법률가로서 본능적으로 알고 그 답답한 심경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 도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1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 도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연합뉴스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당에서 굳이 기자들에게 해명 메시지까지 보내야만 했던 바로 이 지점에 민주당과 이 대표의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의 발언은 국민들과 지지층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경솔한 말이었습니다. 사실 윤석열 정권 6개월간의 실정과 이태원 참사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로 국민들입니다. 그래서 제1야당 대표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이 똑바로 정신을 차리도록, 다시는 이태원 참사 같은 불행한 ‘인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대안을 세워주도록, 제1야당 대표에게 그 책임을 똑같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국민들의 바람과 기대를 잊고 공개적으로 ‘우울하다’고 털어놓는 것은 작금의 시국 상황을 너무 개인적인 스트레스 차원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대표가 대장동 사건을 개인적 차원으로 생각하며 감정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당의 대응 전략도 오락가락 기대 이하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민주당의 초반 대응이 전략적으로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그냥 앉아서 계속 당하고만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이 김용 부원장 전격 체포 작전을 감행할 때부터 민주당도 ‘죽기 살기 식’의 초강경 대응으로 맞섰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이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이재명 엮기’ 작업을 시작했을 때 민주당은 애초부터 그 프레임 자체에 말려들지 않도록 당력을 총결집시켜 강경하게 대응해야 했었다. 최악의 경우 당 의원들이 국회의원직을 거는 등의 초강경 대응으로 검찰의 다음 타깃이 정진상 실장으로 향하지 않도록, 향하더라도 그것을 정치적 사안(야당 탄압)으로 받아들여 당 전체가 총력대응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냥 검찰의 프레임 각본대로 순순히 따라주다가 정 실장이 구속되고 이제 이재명 대표 소환과 구속마저 당연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그냥 앉아서 ‘나 죽여 주세요’ 하는 야당은 처음 본다. 이 대표에 대한 신뢰가 깨져 당의 결집력이 약화한 측면도 있지만 이 대표의 전략도 민생과 투쟁을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자신의 인신구속이라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어정쩡한 대응 방식 때문에 대장동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김용 부원장 체포 작전 때 민주당은 당사를 사수하며 한때 대오를 한 곳으로 모으고 투쟁 의지를 불태웠지만, 그 후로는 다시 민생을 외치며 투쟁 모드를 접는 듯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민생과 투쟁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보니 민주당은 ‘야당 탄압’이라는 선명하고 간결한 정국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한 측면이 있습니다. 

 

소위 '대장동 일당'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입이 열리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왼쪽부터) 김만배-남욱-유동규 /연합뉴스
소위 '대장동 일당'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입이 열리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왼쪽부터) 김만배-남욱-유동규 /연합뉴스

김용 부원장에 이어 최측근인 정진상 실장마저 구속되었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이재명 사단’에 대한 유죄가 내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거나 회기 내 불체포특권 등을 악용해 저항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치적으로는 대선을 치른 야당 대표에 대한 ‘보복 차원’의 기획 사정 수사라는 인식도 있는데 이를 알리기 위한 여론전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대장동 사태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고리로 정국을 ‘강대강’ 대치국면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행정부의 책임 있는 수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진상규명 등의 시간벌기로 위기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지지부진하는 지지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핵심 지지층 중심의 우경화 노선을 노골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밀리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목숨 걸고 초강경 대응으로 정국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169석의 민주당은 덩치만 컸지 일사불란한 거대 야당의 결집력과 전투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장동 사태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책임론 제기와 발을 빼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대장동 사태는 이재명 대표 본인만의 ‘사법 리스크’가 아닙니다. 국민의힘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윤석열’로 돌파구를 마련해 기사회생했다면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문재인’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새로운 권력 창출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질적이고 장기적인 진보 진영의 침체와 지속적인 위기 국면에서 대장동 사태까지 터져 제1야당 대표의 안위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사태를 단순히 자신의 대권 도전에 대한 심대한 위기라는 ‘개인적인 인식’을 이제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양팔’ 구속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1야당 대표직을 걸고 대장동 사태 돌파에 ‘올인’해야 합니다. 이재명의 실패는 단순히 자신의 ‘우울증’으로 그치지 않고 진보 진영의 궤멸을 앞당기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어떤 ‘플랜B’를 가졌는지 국민들은 묻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민심을 외면하지 않고 소통과 통합의 길을 가고 있었다면 묻지도 않았을 문제입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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