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이들』
유현정┃책과이음┃ 2022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책에서 읽은 것을 잃지 않고자 필사를 합니다. 이 기자코너의 목표는 제가 느낀 감정(feel)과 생각(思)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나의 종이들』필사. /최영은 
『나의 종이들』필사. /최영은 

 

인간은 기록의 동물이다. 공공의 역사에서부터 한 인물의 일대기에 이르기까지 기록의 종류는 다양하다. 여기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기록한 ‘사적인 연대기’가 있다. 유현정의 『나의 종이들』이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도 기록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종이가 주는 느낌을 거부할 수 없다. 종이가 주는 질감과 향을 누가 마다할 수 있으랴.  

작가의 곁에는 언제나 종이가 함께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우울의 늪에 빠질 무렵 종이에 감정을 표현한다. 아니 분출해낸다. 자신의 감정을 종이에 쓰고 그리며 치유한다. 작가에게 종이란 치유다.

또 작가에게 종이란 추억이다. 유년 시절 모았던 우표첩은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린 시절 친구 그리고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편지는 타인에게 그녀가 어떻게 기억됐을지 반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드라마 대본. 6년간 드라마 작가를 꿈꿨던 그녀에게 드라마 대본은 어쩌면 실패의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는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포기한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걸까.’ 어쩌면 실패의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또 다른 현재진행형은 바로 인쇄업이다. 작가는 인쇄소집 딸로 태어났다. 타향살이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인쇄소를 창업한다. 그렇다. 작가에게 종이란 업이다.

작가에게 종이란 치유이자 추억, 업이다. 그리고 나·너·우리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그녀는 종이에 내면을 토해내며 내적 성찰을 한다. 주고받았던 편지에서 나를 보며 기억 속의 누군가와의 추억을 그린다. 인쇄업 동료를 통해 사람을 본다.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발견하고, 삶을 이해해가는 과정. 작가의 내밀한 역사를 통해 독자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작가의 유년 시절 왼손잡이에서 오른손잡이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녀만의 개인적인 역사인데 이 부분에서 특히 공감했다. 공감한 이유에 대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나 역시 타고난 왼손잡이였다. 왼손으로 글씨를 거꾸로 쓰다가 아버지께 제대로 혼이 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무난하게 지내기 위해 아버지는 나를 가르쳤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사실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공감했던 부분은 ‘수집된 종이들’이다. 학창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는 빛바랜 종이 박스 안에 모아 놓았다. 가끔 꺼내 보곤 하는데 그때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작가 역시 수집된 종이들에서 그 시절의 자신을 발견한다. 아마 작가와 내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책 속의 작가와 교감하는 일은 꽤 흥미로운 경험이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짐작해보자면 사람들은 그녀만의 개인적인 역사에서 보편성을 읽는게 아닐까. 삶의 패턴에서 보편성을 읽는 것이다. 작가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꿈을 향해 목표를 추구하며 가다가 멈추어선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 달려간다.

치열하게 살다가 어느 시점에 한 템포 쉬고 다시금 탐색하며 자신만의 길을 추구해가는 인생의 루틴에 우리 모두가 공감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련의 과정들은 있기에. 어떠한 상담가의 카운슬링보다도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해준다.

오늘도 마땅한 할 일도 갈 곳도 모른 채로 그렇게 서 있는 우리 청춘들에게 진중한 카운슬러가 필요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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