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SF '애프터 양' 보편적 인간 문제 중점 부각
인종 문제 가족 범주에서 풀어···“역사 흐름 될 것”
틀에 박힌 인공지능 영화 ‘끝’···사람에게 안식처로

AI(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애프터 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AI(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애프터 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양이 이 가족을 몹시 사랑해요.”

인공지능(AI) 안드로이드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애프터 양’이다. 영화는 안드로이드 ‘양’이 한 가족과 남긴 기억들을 인간 본연에 대한 질문과 함께 풀어낸다. 미니멀 SF로 미래 사회를 그리면서도 ‘다름과 다양성’ ‘인간성’ 등 보편적인 문제를 부각하는 점이 특색이다.

영화는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와 AI 양을 슬하에 둔 제이크 가족이 고장나 움직이지 않는 양을 마주하면서 시작된다. 양은 아이 돌보미 AI다. 영화 속에선 중국계 아시안-아메리칸 모습의 ‘테크노 사피엔스’로 그려진다.

양이 고장나자 우울에 빠진 딸 미카는 양을 찾기 시작한다. 유독 그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 때문이다. 제이크가 딸의 우울을 해소하기 위해 수리를 수소문했지만 양을 고칠 방도는 없었다. 이때 한 과학기술 연구소에선 양에 대한 연구를 제안한다. 양이 AI임에도 기억하는 기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제이크 가족은 양이 기록한 시선들을 꺼내보기 시작한다.

양의 기억 속 이미지는 ‘다름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로 그려졌다. 인간과 다른 안드로이드였기에 이 주제를 나타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양은 인간을 동경했기에 스스로 인간과 다름을 체득하고 공부한다.

심지어 사람이 무심코 잊어버린 순간도 양은 기억한다. 인간으로선 깨달음을 얻는 부분이다. 일례로 인간 관계를 자연에 은유한 시퀀스가 눈길을 끈다. 영화 중반부 중 한 씬에서 양은 미카가 유색인종과 입양자녀란 이유로 교우관계를 고민하자 경험섞인 대답을 내놓는다.

이때 양은 ‘나뭇가지 접붙이기’를 예로 든다. 양은 나뭇가지를 떼어다 다른 나무에 붙여도 새 생명을 얻는 순리를 설명하면서 미카의 아픔을 치유한다. 이때 양은 “다른 가족 나무도 너에게 중요한 일부야”라고 말한다.

영화 속 제이크 가족은 백인 남편·흑인 아내·아시아인 모습의 미카와 양으로 구성됐다.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영화 속 제이크 가족은 백인 남편·흑인 아내·아시아인 모습의 미카와 양으로 구성됐다.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이같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숏도 있다. 양이 바라본 제이크 가족의 모습이다. 제이크 가족의 첫 등장 장면은 사진을 찍는 양이 바라본 시선이다. 양의 시선에서 제이크 가족은 다색 인종으로 구성된다. 백인 남편·흑인 아내·중국계 아시아인인 미카다. 짤막한 장면이 다른 가족 모습과 교차되면서 지나가는 VR 댄스 페스티벌 장면에서도 제이크 가족 구성이 유독 튀는 모습으로 비춰져 이질적인 느낌도 자아낸다.

이를 본 한국계 미국인 저스틴 민 배우는 본지에 “인종에 대한 복잡한 뉘앙스나 다양성에 대한 표상이 역사적 흐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작품에선 이를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드러내기보단 가족이라는 범주에서 던지고 있어 곧 희망과 사랑으로 승화되는 감정을 느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배우의 말처럼 최근 헐리웃 영화 중에선 인종을 대비시켜 ‘다름과 다양성’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경우가 잦다. 최근 사례로는 ‘겟아웃’과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두 작품이 대표적이다. 한 쪽은 스릴러로 한 쪽은 로맨스로 수단이 다를 뿐 모두 캐스팅과 스토리 전개까지 인종 색채 대비가 뚜렷하다.

평단에선 이 같은 헐리웃 영화계의 흐름을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함께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유색 인종들이 과거부터 마주했던 고민을 이미지로 표현한 영화들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플로이드는 2020년 5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이다.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선 흑인의 인권을 주장하는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도 벌어졌다. 해당 문제 의식이 영화를 통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셈이다.

‘애프터 양’에서 로봇 인간이라는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 저스틴 민은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신예 배우다.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애프터 양’에서 로봇 인간이라는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 저스틴 민은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신예 배우다.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

인간의 이기와 어리석음 간접 비판도
인간과 대비 이룬 로봇, AI 전형과 달라

영화 속엔 ‘인간성’을 간접 비판하는 메시지도 담겼다. 대개 인간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는 양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제이크 가족은 상처와 시련에서 고장난 AI처럼 서툰 반면, 양은 덤덤한 모습으로 정서적 안식처가 돼준다.

양의 기억 속에서 제이크 가족은 가까운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존재로 그려진다. △다도에 빠져 가족을 등한시한 제이크 △뒤늦게 양의 취미를 알게 된 키라 △삶 전체를 양에게 의존했던 미카 등의 모습이 그것이다.

또 양이 사라진 후 이들은 상념에 빠져 지내면서도 양의 기억을 조명하면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기도 한다. 특히 사랑을 몰랐던 제이크가 양의 기억을 체험하면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는 파격도 있다.

이는 보조 또는 대체 인력으로 묘사됐던 안드로이드가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다수 SF 영화에선 로봇이 인간의 유희를 뒷받침하거나 측은한 존재로 그려져 '애프터 양'에서 보여준 로봇의 모습은 새롭다.

이를테면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AI가 탑재된 인조인간을 부리며 살아간다. 이 배경에서 주인공 AI 데이비드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싶어 인간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몸부림친다. 이는 인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초연한 자세로 위로했던 양과 대비를 이루는 부분이다. 한편으론 로봇 SF 영화에 박힌 고정관념을 벗기겠다는 감독의 의도로도 짐작해볼 수 있겠다.

한편 영화 ‘애프터 양’은 △‘콜롬버스(2017)’ △‘파친코(2021)’를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이다. 코고나다 감독은 시공간을 세련된 무드로 조각해 뛰어난 미장센을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연출 거장이다. ‘애프터 양’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첫 선보인 작품으로 국내에선 최초 공개됐다. 영화는 조용한 전개로 96분 동안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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