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 골프 레시피 46회]
디오픈 우승 눈앞에서 날린 주인공
뼈 아픈 패배 긍정적 마인드로 극복

베리 번 밖으로 나온 장 방 드 벨드
베리 번 밖으로 나온 장 방 드 벨드

언제부터 우리는 승자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 걸까? 승자들의 영웅담 뒤에 숨겨진 수많은 패자들의 이야기는 과연 들어볼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메이저 토너먼트의 우승자 한 명이 나오기까지 그와의 대결에서 패한 수십 수백명 경쟁자들의 삶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오늘은 23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골프 역사상 가장 비참한 패배를 경험했던, 그것도 상대 선수의 실력에 의한 결과가 아닌, 마지막 순간 스스로 무너져버린 한 인간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한다.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디 오픈 챔피언십은 160년 전 스코틀랜드 서쪽 해안에 위치한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에서 시작되었다. 예측불가한 스코틀랜드의 날씨,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단단한 페어웨이, 한 번 빠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깊은 항아리 벙커 등 디 오픈이 열리는 링크스 코스는 선수들을 고난의 행군으로 몰아넣기로 악명 높다.

골프를 하다 보면 어느 날 마법처럼 모든 게 잘 되는 날이 있는데, 프로 선수에게도 이런 경우는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4일간 열리는 메이저 대회에서는 그런 마법이 하루가 아니라 매일 지속돼야 하기 때문에 실력 없이 행운에만 의지해서는 절대로 우승을 할 수 없다.

프랑스에도 이런 마법을 경험한 선수가 한 명 있었다. 무명 선수에서 하루아침에 디 오픈의 다크호스로 떠올라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장 방 드 벨드.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 그에게 닥친 불행에 의해 우승컵을 안아 보지 못하고 영국을 떠나야 했다.

장 방 드 벨드는 1966년 남 프랑스의 몽마르상에서 다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살 되던 여름 한 달간 아버지를 졸라 골프를 시작한 그는 골프만 치다가는 밥벌이도 못 할 거란 가족들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에 매달렸다. 아마도 골프장의 아름다운 환경, 작은 공 하나를 쫓아 골프장을 탐험하는 즐거움, 연습을 하며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골프만의 특색이 어린 장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유러피언 투어에서 활약하던 그는 1999년 스코틀랜드 카누스티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그 당시 장은 세계무대에선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골프에 큰 관심이 없던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그를 응원한 사람들은 고향 몽마르상의 골프장 회원들과 일가친척들 정도였다. 디 오픈에서 1907년 프랑스의 아흐누드 메시라는 선수가 우승을 한 일이 있었으나, 그 마저도 제대로 기억하는 프랑스인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바꿀 뻔했던 역사적인 사건의 조짐이 둘째 날 일어났다. 대회에 참가한 세계적인 선수들이 카누스티 골프장의 어려움에 쩔쩔매고 있을 때 장이 68타를 치며 선두에 오른 것이다.

‘도대체 장 방 드 벨드가 누구입니까?’ 미국 최고의 스포츠 전문가조차도 그의 존재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세계 순위 152위에 머무르고 있던 그가 3일 째에도 신들린 듯한 실력으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쳐 나가자 이 소식은 고국에 전해졌고, 프랑스에선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그의 고향은 우승을 하기도 전에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고 프랑스 언론은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을 도버 해협너머 스코틀랜드로 날려보냈다.

카누스티의 마지막 18번 홀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클로징 홀로 악명이 높다. 베리 번이라 불리는 깊은 도랑이 페어웨이를 좌우로 두번이나 가로지르기 때문에 티 샷과 세컨 샷 모두 정확해야 라운드를 잘 마무리할 수 있다.

대회 마지막 날 최종 홀 전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리던 방 드 벨드는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을 할 수 있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피칭 웨지로 세 번 만에 그린에 공을 올려 쓰리 퍼트로 보기를 기록해도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방 드 벨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과감하게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티샷을 하면서도 뭔가 잘못된 걸 알았던 걸까? TV 화면에 장의 걱정 가득한 표정이 순간 잡히더니 카메라는 페어웨이를 벗어나 오른쪽 옆 홀로 날아가는 공을 추적했다. 베리 번에 빠질 뻔한 공이 다행히 러프에 멈췄을 때 중계석에서는 ‘참 운이 좋은 선수네요’라는 코멘트를 던졌다.

현명한 골퍼라면 이렇게 긴장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장은 달랐다.  프랑스인의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다시금 롱 아이언을 잡아든 그는 러프에서 그린을 향해 공을 날렸다. 그 때 눈앞에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됐다. 다시금 오른쪽으로 빗나간 공이 갤러리가 가득한 스탠드의 난간을 맞고 튕겨 나와 도랑벽을 다시 한번 때린 후 뒤로 날아 깊은 러프에 빠진 것이다.

장 방 드 벨드의 고난의 행군 /출처=영국 데일리메일
장 방 드 벨드의 고난의 행군 /출처=영국 데일리메일

BBC의 스포츠 캐스터 피터 앨리스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라고 말하며 누가 그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줘야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수천 명의 갤러리들은 이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방 드 벨드의 뒤를 따랐고, 군중의 환호 속에 러프에 빠진 공을 찾은 그는 재차 무모한 시도를 했다. 전보다 더 깊은 러프에서 또 다시 그린을 직접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골프 뇌가 10분 전에 생각하길 멈춘 것 같네요.’ 피터 앨리스의 걱정 가득한 코멘트가 있은 후, 방 드 벨드는 깊은 러프 속 공을 쳐냈다. 그리고 결국 공은 물에 빠졌다.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웃기 시작했다. 심지어 장의 아내도 헛웃음을 짓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믿을 수가 없네요.  이건 너무 너무 슬픈 상황이에요. 이건 정말 불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순간 포기하지 않고 신발을 벗고 베리 번의 도랑 속에 들어가 샷을 하려는 그에게, 피터 앨리스는 ‘오 장, 장, 장. 도대체 세상에 뭘 하려는 거야. 누가 그를 좀 말려주세요’라고 탄식을 했다.

장 방 드 벨드는 도랑 속에서 한참의 고심 끝에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고, 벌타를 받고 다시 친 샷은 그린 오른쪽의 벙커에 빠졌다. 그리고 벙커에서 탈출시킨 공이 홀 컵에서 3미터가량 떨어진 그린 위에 멈춰 섰다. 연이은 실수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방 드 벨드는 만만치 않은 거리의 퍼트를 성공시켜야 연장전에 나갈 수 있었다.

‘제발 퍼트를 넣게 해주세요. 제발…’이라고 모두가 기도하던 순간 퍼트를 넣고 분노의 주먹을 굳게 쥐어 보이는 장… 그리고 잠시 후 벌어진 연장전에서 그는 스코틀랜드의 폴 로우리에게 패했다.

패배 직후 인터뷰에 응한 그는 ‘연장전에서 패한 후 분노와 슬픔이 뒤섞였고, 실망이 너무 커서 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번 패배가 얼마나 오래 당신을 괴롭힐 것 같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아마도 영원히? 하지만 누가 100년 후에도 이걸 기억하겠어요?’라고 답했다.

인생 최고의 기회, 프랑스 골프의 영웅이 되고 전 세계 골프사에 길이 남을 디 오픈의 우승을 눈 앞에서 날려버린 그는 과연 패배 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갔을까? 그의 우승을 기대하며 대서특필하던 미디어가 순식간에 돌변하여 패배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동안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를 놀라게 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매년 15명 남짓 적은 숫자의 지원자가 모였던 그의 골프학교에 대회 직후 백여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그를 보러 나타난 것이다. 어른들과 달리 이들의 눈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멋지게 클럽을 휘두르던 TV 속 방 드 벨드의 모습이 너무도 쿨해 보였던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장 방 드 벨드
가족과 함께하는 장 방 드 벨드

패배 후 자신을 자책하고, ‘만일 그 때 내가 드라이버를 잡지 않았다면, 세컨 샷을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보냈다면, 서드 샷을 좀 더 길게 쳤더라면…’ 등등의 후회 가득한 되뇌임으로 인생을 허비했다면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며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찾게 된 방 더 벨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일 이치에 맞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다.’ 스포츠나 인생이나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승자는 수면위로 떠올라 많은 이의 관심과 부러움을 받지만 패자는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된다.

패배의 원인이 능력이나 노력 부족이 아닌 경우도 많다. 잘못된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혹은 결정적인 그날의 운이 부족한 이유로 경쟁에서 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승자에게나 패자에게나 중요한 것은 결과를 대하는 태도와 그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있다.

장 방 드 벨드는 뼈아픈 패배 후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그만의 삶의 의미를 찾았다.
15년이 흐른 훗날 근황을 묻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07년 디 오픈에서 누가 우승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100년 후에도 있을 것이다.’

패배 직후 자신은 곧 잊혀질 존재라고 말했던 그는 무한 긍정의 힘을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패자도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역사 상 최악의 패배의 주인공 장 방 드 벨드는 그의 존재 의미를 경기장 밖 다른 곳에서 찾았다. 그건 메이저 대회 우승에 있지도 않았고 대중의 사랑 속에 있지도 않았다.  그건 그가 설계한 삶, 그가 만든 의미가 살아있는 그만의 삶 속에 지금도 살아있다.

다음 주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떠나는 싱가포르 신규 골프장 답사 후기를 소개할 예정이다.

싱가포르 센토사 GC /센토사골프닷컴
싱가포르 센토사 GC /센토사골프닷컴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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