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인플레이션의 장기화···바이든, 깊은 고민
민주 좌파 진영 "파월보다 더욱 진보적인 인물로" 압력

1994년 봄은 아름다웠다. 나는 국제금융 전문가의 꿈을 품고 영풍빌딩에 있는 한 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업무를 한창 배워 나가고 있었다. 주말이면 북한산에 가 무예 수련도 하고, 벚꽃이 흩날리는 선린상고 운동장에서 직장인 야구를 구경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 순간 국민들은 알지 못했지만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격랑에 휩싸여 있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거부하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동해에 항공모함 5척을 급파했고 작전계획에 따라 북한에 대한 공습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누군가 북미 간 충돌을 조율하지 않으면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때 협상 역을 자임한 사람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다. 클린턴은 카터에게 북한에 최후통첩을 전달하도록 했다. 물론 그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카터는 대동강 변에서 김일성과 낚시를 즐기면서 협상을 풀어나갔다. 두 사람은 핵사찰 재개에 대한 합의를 이뤘고, 한반도는 비로소 전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카터 대통령은 알게 모르게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에 출마할 때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재임 중 박정희 정부와 미 의회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군 철수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당연히 한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위 차원에서 핵 개발에 착수했다.
1979년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혁명을 일으켰다. 친 서방적인 팔레비 왕정을 붕괴시키고 미 대사관을 점거했다. 70여 명에 이르는 미 외교관을 인질로 억류했다. 카터 행정부는 신속하게 대 이란 경제 제재에 나섰다. 그 여파로 제2차 오일쇼크가 발발해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국내외로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진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는 재선에 실패한다. 역대 대통령 업적 평가에서도 상위권에 든 적이 없다. 그럼에도 카터를 재평가하게 하는 치적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으로 폴 볼커(Paul Volcker)를 선임한 일이다.
1979년 유가가 급등하고 경기가 얼어붙자 카터는 개각을 단행하고 재무장관이던 마이클 블루멘털(Michael Blumenthal)이 사임한다. 카터는 그 자리에 당시 연준 의장인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를 임명한다. 공석이 된 연준 의장 자리를 누구로 채울 것인가가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른다.
워싱턴 정가와 금융시장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적임자로 연준 내 매파(hawkish)로서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볼커를 선임할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터를 둘러싼 민주당 내 진보그룹은 보수적인 그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만약 볼커가 연준 의장이 돼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크게 위축될 것이고 그것은 카터의 재선 가도에 엄청난 악재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카터는 고심 끝에 결국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낙점 찍는다. 자신의 재선보다 침몰하는 미국 경제의 구출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볼커는 대선이 치러지고 있던 1980년 연방기금금리를 20% 가까이까지 인상한다. 실업률은 급등하고 경제는 급격히 나빠졌다. 카터는 마침내 레이건에게 489대 49라는 최악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금리 인상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인플레이션이 잡혔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자 경기는 크게 호전되었다. 물론 이 모든 공을 카터의 후임인 레이건이 차지했다.
현재 미국 경제가 맞닥뜨린 현실도 1970년대의 상황과 유사하다. 당시에는 베트남전 수행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시행을 위해 정부가 빚을 내 재정을 확대했다. 작년과 올해에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고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의 재정이 투입됐다.
1970년대 재정지출의 확대로 총수요가 증가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중에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고 고착화됐다. 현재에도 팬데믹 충격으로 인해 초래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시장에 병목(bottleneck)현상을 일으키면서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연준 내 비둘기파(dovish) 인사들이 일시적일 것이라 누누이 강조해 온 인플레이션이 몇 달째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시적이라 여겨졌던 것이 장기간 지속하면 고질화 됐다고 말해야 한다. 이대로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경기마저 나빠지면 미국 경제는 1970년대에 이어 또 한 번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빠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공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내년 2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후임을 정해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파월의 연임을 예상하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파월이 재임 중 몇 차례에 걸쳐 증권 거래를 했음이 드러나면서 도덕성에 상처가 났다.
1979년과 같이 현재에도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내 좌파 진영은 파월보다 더욱 진보적인 인물을 후임으로 정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부가 돈을 찍어서 갚으면 되므로 재정적자든 나라빚이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통화이론(MMT) 신봉자를 파월 후임에 앉히도록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다.
만약 이들의 뜻대로 진보적인 연준 의장이 들어선다면 경제 내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그 결과는 거침없는 임금과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달러 가치는 위협받고 물가가 통제 불능에 이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의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과연 바이든은 존 테일러(John Taylor) 스탠퍼드대 교수 등 볼커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선임할 수 있을까? 카터는 그 다음 해에 대선을 앞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볼커를 임명하는 용단을 내렸다.
바이든은 금년 초 임기를 시작했으므로 다음 대선이 있는 2024년 이전에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경제성장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관건은 바이든 자신의 혜안과 결단이다. 젊은 상원의원으로서 지근거리에서 카터를 지켜봤던 바이든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초미의 관심이 백악관에 집중되고 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