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회사가 매출 독식···시장 집중화 심화
제2 뉴딜 꿈꾸는 바이든 인프라스트럭처 플랜
인플레이션 촉발 우려…빅딜보다 스몰딜이 시급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 밀레니엄을 전후한 시기에 한 닷컴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 인터뷰 날짜가 되어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한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인터뷰하러 나온 회사가 당초 지원한 곳이 아니었다.
회사 대표와 함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임원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당초 내가 지원한 회사의 인사 담당 임원이었다. 전 직장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후 전직을 했고 자신이 옮긴 새 회사로 스카우트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 전에 설립한 닷컴 기업의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이제 막 귀국한 듯이 보이는 젊은이들이 밤을 새워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굴은 누렇게 떠 있었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엉겨 붙어 있었다.
회사 대표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벤처기업의 하루는 굴뚝 산업의 한 달’과 같기 때문에 집에 가지 않고 일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테헤란로 양쪽에는 닷컴 붐에 편성하려는 신생 벤처기업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정부의 적극 지원 아래에 온 나라를 삼키듯 활활 타오르던 벤처 투자 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기술주의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던 벤처기업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최근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전개된다. 큰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가한 456명 가운데 살아남는 자는 오직 한 명이다. 한 명의 승자가 나머지의 목숨값에 해당하는 456억 원을 독차지하는 비정한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이 성공의 꿈을 안고 신제품 개발의 무한 경쟁에 뛰어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업체가 퇴출당하고 한두 개의 거대 기업만이 살아남아 산업 전체를 지배하는 현재의 글로벌 자본주의 생태계와 닮아 있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는 1920년대 이전에 나타났다가 대공황과 더불어 대폭 약해졌다. 1920년대 이전 자본주의의 폐해는 반독점법의 적용 그리고 대공황과 뉴딜 개혁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다. 1901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당시 세계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34개의 회사로 강제 분할시켰다.
그의 사촌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대공황으로 신음하던 미국 경제를 재생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개혁조치를 펼쳤다. 알루미늄 공룡 알코아(Alcoa)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예금보험공사(FDIC)를 설립해 증권·금융시장을 획기적으로 개혁했다.
또한, 연방주택청(FHA)을 설치해 저소득층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고 사회보험청(SSA)을 설치해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80년대 이후 각국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슬그머니 부활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에 기반하여 세계화와 기술 진보가 진전되면서 몇 개의 슈퍼스타 회사들이 매출을 독식하고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연독점이 강화되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산업에서 한두 개의 거대 기업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그에 흡수돼 버리는 시장 집중화가 심화됐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커피숍과 안경원까지 낯익은 브랜드가 전국을 지배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몇몇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기형적 자본주의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고 가격 경쟁을 왜곡시킨다. 시장 경제의 효율성은 저하되고 경제 내 불균형이 커져 생산성이 저하된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최근 ‘공동부유’를 앞세우고 홍색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는 자신들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중국의 시진핑 정권도 그중의 하나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21세기 자본주의가 맞닥뜨린 위기를 치유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이루기 위해 야심에 찬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우선 아마존 등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법학자 리나 칸(Lina Khan)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승자독식의 독점 체제를 완화하려 한다.
또한 4.5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해 도로·교량·항만 등 노후한 물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교체하거나 수리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육아·의료 지원을 강화하여 인적 사회기반을 강화하고자 한다. 어린이집에서 전문대학까지 학비를 국가가 책임지고 양육비와 의료보험에 대한 부담도 경감시켜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국가 경쟁력 저하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이든의 이러한 인프라스트럭처 플랜은 대공황 당시 각종 문제점을 해결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에 견줄만한 국가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략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시간은 바이든의 편이 아니다. 대공황 당시에는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문제였다. 따라서 재정으로 물가를 부양하는 뉴딜 정책에 대한 반대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는 서플라이 체인 붕괴로 인한 생산·공급 비용 상승과 코로나19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가계 소득·수요 증가로 물가 상승의 압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추가로 거액의 재정을 투입할 경우 현재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될 우려가 크다. 이로 인해 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 중도파 의원들도 인프라스트럭처 플랜의 규모를 크게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7월 말 종료된 연방정부 부채한도의 증액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정부가 문을 닫을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10월 중 미 국채가 부도날 수도 있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그 와중에 바이든에 대한 지지도도 급락하고 있다.
바이든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의 인프라스트럭처 플랜이라는 빅딜(big deal)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눈앞의 현안이다. 서민들은 물가 불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좌불안석이다. 노동자들은 자꾸만 그만두는 동료로 인해 근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스몰딜(small deal)을 통해 이런 현안을 먼저 해결하는 게 바이든에겐 더 시급하지 않을까.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