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춘란배 中 탕웨이싱 9단 2-0으로 이기고 우승
"이창호·이세돌 사범 다음으로 우승 많이하고파"

“이창호 사범님이나 이세돌 사범님의 기록을 넘어서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다음으로 우승을 많이 한 기사가 됐으면 한다. 그게 목표다. 최소한 중국 커제 9단(8개)보다는 더 많이 우승하고 싶다”
신진서 9단이 그의 두 번째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신진서는 9월 15일 서울 한국기원과 중국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온라인 대국으로 진행된 제13회 춘란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 제2국에서 중국 탕웨이싱 9단에 173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2-0으로 정상에 올랐다. 신진서는 앞서 13일 열린 제1국에서도 백 불계승을 거뒀었다. 춘란배의 우승상금은 15만 달러(약 1억7500만원). 2000년생인 신진서의 세계 메이저 대회 우승은 2020년 제24회 LG배에 이어 두 번째다.
최근 신진서의 행보를 한국 바둑계는 물론 중국, 일본에서도 주시하는 것은 그가 이창호-이세돌을 잇는 슈퍼스타의 자질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호와 이세돌 사이, 그리고 이세돌과 신진서 사이에 스타급 기사들은 제법 존재하나 이창호나 이세돌의 계보를 이었다고 하기엔 모두 역부족이었다. 중국은 그간 마샤오춘 9단을 필두로 창하오 9단, 구리 9단, 커제 9단 등이 한국의 양이(兩李)에 대항해 왔으나, 커제를 제외하고는 대등하게 겨룬 기사도 없었다. 이세돌 이후 커제가 세계바둑 일인자로 불릴 때도 있었지만 한국의 박정환을 확실히 넘었다고 할 수 없었고, 세계대회 우승 횟수도 8회면 유창혁(6회) 정도여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시기에 신진서 9단이 등장한 것이니 신진서의 성적이나 인터뷰에 세계 바둑팬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춘란배 결승전이 끝난 후 신진서는 바둑 전문기자들과 제법 심도 있는 인터뷰를 가졌고, 탕웨이싱도 중국 현지 인터뷰를 통해 결승전을 치른 소회와 신진서에 대한 느낌을 솔직히 밝혀 눈길을 끌었다. 신진서와 탕웨이싱의 간추린 인터뷰를 소개한다.
신진서, AI에게 많이 배우지만 떠받들고 싶진 않다

—우승 소감은?
“기쁘지만 세계대회 첫 우승 때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LG배 우승 때는 처음이기도 하고 상대가 한국기사(박정환 9단)였다. 박정환 9단은 내가 평소 존경하고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한 기사에게 이겼기에 기분이 좋았다면, 이번 춘란배 우승은 상대가 중국기사여서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좀 다르다.
—탕웨이싱 9단은 까다롭고 끈적끈적한 기풍으로 유명하다. 상대한 느낌은?
“중국랭킹 25위로 최근 랭킹은 낮지만 중국에선 커제 9단 다음으로 세계대회에서 많이 우승한 기사이고, 큰 경기에 강해 방심할 수 없었다. 중국기사들은 대체로 다 까다롭다. 그렇기에 면역도 좀 됐다.”
—1국은 막판 역전했다. 탕웨이싱 9단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위험하지 않았을까?
“탕웨이싱 9단의 모습을 모니터로 보니 전혀 방심한 표정이 아니었다. 사실 상대의 1선 치중은 못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반집 나빠진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범하게 가선 안 된다고 보고 수순을 비튼 것이다. 피차 어려운 장면이었고 탕웨이싱 9단에게도 쉬운 끝내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 일인자라 생각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아니라고 답해왔다.
“커제 9단이 세계대회 8회 우승자인데, 한 번 밖에 우승 경험이 없는 내가 비교되는 자체가 좀 그랬다. 그냥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게 내가 평소에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커제 9단도 당연히 부담을 느낄 것이다. 도발적인 말도 그래서 하는 것일 게다.”
—신진서 9단은 최근 ‘인공지능을 좀 덜 보고 승부도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을 신처럼 떠받드는 것을 안 좋아한다. 배우는 게 많으니 스승 같은 존재지만 지금의 나는 추종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한다. 너무 높게만 보면 실력 향상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2점을 놓고도 포기하는 기사가 많은데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두 점 이내로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창호 9단은 전성기 시절, 한 판의 바둑에서 몇 번의 실수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세 번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나는 300번은 될 것 같다(웃음).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는 다섯 번 정도인 것 같다.”
—위협적인 중국기사 3명만 꼽는다면?
“커제, 양딩신, 구쯔하오다. 하지만 25위라는 탕웨이싱 9단도 이렇게 강하니 꼽는 게 별 의미 없을 것 같다.”
—세계대회에서 한 판도 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대회 11연승 중이다.
“상대가 다 일류기사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곧 있을 삼성화재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삼성화재배는 본선이 32강부터 시작되지만 지면 바로 탈락이라 모든 대국이 춘란배 결승만큼 중요하다.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세계대회에서 몇 번 정도 우승하고 싶은가?
“이세돌, 이창호 사범님 기록을 넘기는 어려울 거 같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내가 많이 우승했으면 한다. 그게 목표다. 커제 9단(8개)보다는 더 많이 우승하고 싶다.”
탕웨이싱, 정말 울고 싶은 결과였다

한편 준우승에 머문 탕웨이싱은 중국 현지 인터뷰에서 “승패를 떠나 이번 결승전은 정말 울고 싶은 결과였다. 승부에 져서 분하다는 것이 아니다. 졌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 과거에 비해 수읽기와 계산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라고 말하면서 “그동안 여섯 번이나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이번 결승전 같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결승전 두 판은 나이를 먹은 내 능력의 한계를 본 느낌이다. 수읽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상대보다 항상 먼저 시간에 쫓겼고, 형세 판단이 중요한 결정적인 장면에서 오판해 스스로 무너졌다”고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올해 초 열린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에 우승컵을 빼앗기고, LG배 결승에선 커제가 신민준 9단에 패해 준우승에 그치자 중국 국가대표팀 코치 위빈은 “한국이 일시적으로 좋은 성적을 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흐트러진 우리의 연구 체제를 정비하고 한국 기사들 연구에 힘을 기울인다면 세계바둑의 중심은 여전히 중국 안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하지만 춘란배에서도 중국은 신진서를 멈춰 세우지 못했고, 신진서는 다시 응씨배 우승컵을 놓고 연말 셰커와 일전을 벌인다. 중국이 이번엔 어떤 대책을 가지고 나올지 궁금하다.
유경춘 바둑평론가
대학졸업 후 첫 직장인 주간바둑신문 입사 이후 줄곧 바둑계에서 바둑전문기자로 활동해왔다. 월간 바둑세계 편집장, 넷마블바둑 컨텐츠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사)대한바둑협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