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프리미어리그 16개팀 연 15라운드
한국 1~7위, 일본 1~3위 선수도 출전
2000년 이세돌 ‘올오어낫씽’ 전통 만들어

한국에 한국바둑리그가 있다면 중국에는 중국갑조리그가 있다. 1999년 출범한 중국바둑리그는 중국 바둑기사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둑 기전으로 평가받는다. 한국바둑리그도 실은 먼저 출발한 중국갑조리그의 영향을 받아 창설됐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한국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에게 밀려 국제무대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중국은 중국갑조리그를 기점으로 신예 강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을 밀어내고 세계바둑 최강국이 됐다.
땅이 넓은 중국에서 중국리그는 지역연고제를 바탕으로 팀들이 구성됐고, 영국의 프로 축구리그 프리미어 리그를 벤치마킹했다. 즉 1부리그 격인 갑조리그와 2부리그인 을조리그, 거기에 병조리그까지 더해 구색을 갖췄다.
갑조리그는 16개 팀으로 구성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바둑리그다.
중국갑조리그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각 팀은 연간 15라운드를 치러 하위 2개 팀이 을조로 강등된다. 대신 을조 1, 2위 팀이 갑조로 올라온다. 이는 영국 축구 프리미어의 운영방식과 똑같다. 선수 선발은 연고지를 중심으로 하고 한번 선발하면 웬만해선 바뀌는 법이 없다.
각 팀들은 매 라운드 4경기를 치르는데 주장전, 장고대국 2국, 속기전 대결을 벌여 승리팀이 승점 3점을 갖게 된다. 만일 2-2 동점이 나올 경우에는 주장전 승리팀이 2점, 패배팀에게 1점이 주어진다. 속기는 각자 30초에 1분 초읽기 10회로 치러지며, 장고대국은 각자 2시간 25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무승부가 나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장전에 팀의 에이스가 출전하는 경우가 많다.

시즌이 끝나면 매년 다시 헤쳐모여를 거듭하는 한국리그와과 달리 중국리그는 태동 이래 지금까지 철저한 구단제를 통해 유지된다. 따라서 선수들의 계약조건도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또 각 구단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외국 선수들과 계약할 수 있다. 야구나 축구의 스토브리그처럼 리그가 끝나면 좋은 용병을 구하기에 바쁘다. 출전은 4명이 하지만 팀 당 5~6명을 보유할 수 있고 이 중 2명까지는 용병이 가능하다. 용병 중 1명은 외국인도 가능한데 이것이 한국 기사들이 대거 중국리그에 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2021년 중국갑조리그에 한국은 7명의 기사들이 초청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으로 건너가 대국할 수는 없지만 한국, 일본 등 외국 기사들은 특별히 온라인을 통해 대국이 가능하도록 한 것.
초청받은 7명은 지난 4월 국내랭킹 1~7위와 순위가 겹친다. 랭킹 순으로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신민준, 강동윤, 이동훈, 김지석 9단이다. 모두 2년 연속해서 출전인데 그 중 박정환과 김지석은 10년을 쉬지 않고 참가 중이다. 변상일을 제외한 6명은 전년도 소속팀과 재계약했다. 지난해 소속팀 장시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변상일은 실력을 인정받아 올해 민생베이징으로 이적했다.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이 속한 팀이다.
국내랭킹 1위이자 세계랭킹 1위인 신진서는 쑤보얼 항저우 소속이다. 지난해 준우승팀으로 매년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강팀이다. 렌샤오, 셰커, 리친청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강자들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신진서는 6라운드까지 5승 1패로 순항했지만 이후 2연패를 아쉬움을 남겼다. 팀은 5위에 머물고 있다.

청두 소속의 박정환은 7승 2패로 팀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팀은 현재 3위. 당이페이, 랴오위안허, 투샤오위 등 동료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LG배 우승의 신민준은 선전 팀 소속으로 역시 7승 2패로 용병다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팀 동료 스웨, 타오신란 등을 제치고 주로 주장전에 출전한 신민준은 주장전 성적도 5승 2패로 나쁘지 않아, 팀이 중간순위 2위를 유지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6위 민생베이징 소속의 변상일은 6승 2패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용원항저우 소속의 이동훈은 5승 4패, 취저우 소속의 김지석은 6승 3패로 제몫을 하는 중이다. 다만 시짱 소속의 강동윤만이 3승 6패로 유일하게 5할 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도 랭킹 1~3위가 올해부터 모두 중국바둑리그에 참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시바노 도라마루 9단(왕좌, 십단 보유자)에 이어 일본랭킹 1위 이야마 유타 9단이 올 시즌 처음 참가한다. 이야마는 기성(棋聖), 명인, 본인방 보유자. 또 천원, 기성(碁聖) 타이틀 홀더 이치리키 료 9단이 올 시즌에 가세했다. 그러나 셋 모두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 아직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손색이 있다.
중국갑조리그 첫 진출자는 은퇴한 이세돌 9단이었다. 2000년 초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이 9단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한국 기사로는 처음으로 중국에서 러브콜을 받았는데 그 계약 조건이 파격적이어서 한동안 화제가 됐었다.

당시 이세돌은 ‘올오어낫씽’ 그러니까 전부 아니면 제로 방식의 대국료를 구단 측에 제안했었다. 이기면 10만 위안, 지면 한 푼의 대국료도 받지 않겠다는 것으로 일명 ‘10만빵’이라고 불리웠다. 당시 환율이 높아 100위안에 우리 돈 1만 9000원이었으니까 이기면 1900만원, 지면 1원도 받지 않는 조건이었다. 1900만원이면 소규모 기전의 우승상금이다. 중국 구단이 이를 수용했는데 계약을 성사시킨 이세돌은 그해 갑조리그에서 11전 전승을 거둔다. 중국 관계자들이 깜짝 놀란 것은 물론. 그해 이세돌은 중국에서 2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이세돌 9단 이후 한국 기사들은 대부분 ‘이세돌 대국료’ 방식을 따르고 있다. 현재 기사들의 정확한 대국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연차가 오래되고 실력이 검증된 박정환 9단의 경우 대국당 12만 위안(약 21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기사들은 5만~10만 위안 수준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한국기사들의 이 같은 대국료는 용병인 한국기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중국 내에서 역차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중국기사 중 가장 많은 대국료를 받고 있는 기사는 랭킹1위 커제 9단으로 5만 위안 정도. 그 뒤를 4만 위안의 양딩신과 구쯔하오가 따르고 있는데 중국기사들은 “최근 세계대회 성적은 우리가 한국보다 훨씬 좋은데 대국료는 오히려 한국기사들이 많게는 3배나 많이 받아가고 있다”면서 자신들도 한국기사들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며 나선 것. 하지만 한국기사들의 경우 패하면 한 푼의 대국료도 받지 못하지만 중국기사들은 지엽적인 승패에 관계없이 연봉제로 대국료를 받고 있어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기각됐다.
7명의 한국 선수들은 올해 중국갑조리그에서 10라운드까지 총 40승 27패를 거두고 있다. 용병들은 맞대결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전부 중국 기사들과 대결한 전적이다. 4월 개막된 1차전 5라운드까지는 70%가 넘는 승률을 보이기도 했으나, 2차전 6~10R 중 마지막 9~10 라운드는 연일 계속되는 대국의 피로 탓인지 성적이 좋지 못했다. 2021 중국갑조리그는 8월 30일부터 11~15라운드로 정규시즌을 마치게 되며, 11월 12일부터 포스트시즌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경춘 바둑평론가
대학졸업 후 첫 직장인 주간바둑신문 입사 이후 줄곧 바둑계에서 바둑전문기자로 활동해왔다. 월간 바둑세계 편집장, 넷마블바둑 컨텐츠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사)대한바둑협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