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피카소·’검은 피카소’ 바스키야, 작품이 ‘스승’이었다
‘뮤지엄’, 과감히 재구성하자…‘교실’처럼 드나들 수 있도록

20세기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 미쉘 바스키야(1960~1988)는 성장 배경부터 활동한 시대와 무대 등이 대부분 다르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도 미세한 공통점은 있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5세에 부모를 따라 마드리드로 이사해 왕립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학교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피카소는 자주 수업을 빼먹고 프라도미술관을 찾아 엘 그레코 등 대가의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바스키야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야의 손을 잡고 맨해튼의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는 한편, 브루클린에 있는 미술관에 어린이 회원으로 등록시켜 틈날 때마다 찾게 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피카소와 바스키야 둘 다 학교에서 미술을 배운 시간은 짧았던 반면,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예술적 영감을 키웠다. 피카소와 바스키야에게 미술관은 ‘교실’이었고, 작품들이 ‘스승’이었다.
 
우리 곁으로 눈을 돌려보자. 화가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 대다수는 교실과 학원을 맴돈다.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 갈만한 곳이 있을까?
 
얼마 전, 2020년 세계에서 관람객이 많은 미술관들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다. 상위 10개 미술관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이 1위 루브르박물관과 5위 대영박물관이다. 8개는 명칭이 미술관인데 1, 5위는 박물관이란 점이 특이하다. 

‘museum(뮤지엄)’이란 영어 단어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박물관과 미술관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감에는 차이가 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보더라도 박물관이 상대적으로 넓고, 미술관은 좁은 개념이다.

한국에서 피카소나 바스키야를 꿈꾸는 아이들은 박물관과 미술관 중 어디로 가야 할까? 김홍도나 안견의 그림을 보려면 박물관에 가야 되고, 박수근이나 이중섭은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유물과 문화재, 현대 미술 작품들을 망라한 루브르 같은 박물관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산수화는 근현대 미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유물 또는 문화재로 보는 고정관념이 이렇게 벽을 쌓게 된 배경이 된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 산수화가 일제강점기와 6.25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맥이 끊어졌는지, 아니면 현대 미술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고 싶은 학생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코로나19 이후에 다가올 큰 사회 변화와 4차 산업혁명 등에 대비해 교육 혁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존의 학교와 수업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은 이미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현실의 교육 개혁은 대개 입시 제도를 손보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 미술관을 화가나 역사학도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교육장으로 바꾸는 것을 교육 개혁의 주요 과제로 삼으면 어떨까? 박물관과 미술관의 벽을 허물어 김홍도, 장승업부터 박수근, 백남준, 김창열 그리고 외국 작가들의 작품까지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뮤지엄’을 과감하게 재구성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지 않은가.
 
법률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이 ‘교육시설’이라고 언급돼 있다. 피카소나 바스키야를 꿈꾸는 아이들이 박물관, 미술관을 교실처럼 드나들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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