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우, 2019년 프로 입단 1월말 9승1패···“실리형 기풍 이창호 연상”
문민종, 영재입단대회 출신···2020년 글로비스배에서 중국 강호 연파
이창석, ‘중고 신예’지만 올해 전적 18승 6패···“AI이후 가장 기량 발전”
심재익, 프로 입단 후 부진하다 최근 두각···작년 10월 이후 24승 1패 

최근 국내 바둑계에 신진서, 신민준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신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관계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두터운 실리형 기풍은 과거 이창호 9단을 연상하게 한다는 금지우 2단. /사진=한게임바둑
최근 국내 바둑계에 신진서, 신민준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신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관계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두터운 실리형 기풍은 과거 이창호 9단을 연상하게 한다는 금지우 2단. /사진=한게임바둑

지난 2월 25일. 서울 왕십리 한국기원에는 모처럼 훈풍이 넘쳐났다. 3층의 직원들 얼굴에는 하루 종일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2층과 4층의 대국장을 드나들던 프로기사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미소가 어렸다.
이날은 신진서가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 커제를 꺾고 대회를 마무리지은 날, 한국은 3년 만에 중국으로부터 농심배를 탈환했다. 

이에 앞서 2월 4일에는 신민준이 커제를 꺾고 LG배 타이틀홀더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신민준의 승리는 한국 바둑이 역대 LG배 대회 결승서 무려 22년 만에 중국 기사를 상대로 얻은 승리였다. 한국은 1999년 제3회 LG배 결승서 이창호가 마샤오춘을 3대0으로 제압, 딱 한 번 이겼을 뿐 이후 한중 결승서 5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최근 신진서, 신민준 ‘양신(兩申)’을 앞세운 한국 바둑이 다시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이세돌의 전성기 이후 세계무대에서 중국에 밀렸던 한국바둑이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정상급 2~3명의 전력은 중국 정상에 비해 약하지 않았는데 기사 층이 엷다보니 중국의 인해전술을 당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젠 신진서, 신민준 투톱에 기존강자 박정환 그리고 신흥강자 변상일까지 더하면 중국과 비교해 수적으로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소리가 높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진서, 신민준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신예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관계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진서, 신민준의 뒤를 이을만한 ‘떠오르는 샛별’은 누구일까.

 

바둑계가 ‘이세돌급’ 대형신예의 깜짝 등장이라며 한껏 기대하고 있는 특급 유망주 문민종 3단. /사진=한게임바둑
바둑계가 ‘이세돌급’ 대형신예의 깜짝 등장이라며 한껏 기대하고 있는 특급 유망주 문민종 3단. /사진=한게임바둑

◇초특급 유망주 금지우, 문민종    

2021 KB바둑리그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셀트리온. 랭킹1위 신진서가 1지명 자리를 지키고 있고, 2지명 원성진은 정규리그 14전 전승을 기록하며 바둑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때문에 챔피언결정전에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통합우승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는 팀이다. 그런데 이 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1지명도 2지명도 아닌 후보선수 금지우 2단이다. 바둑리그의 2부 리그 격인 퓨쳐스리그 소속인 금지우는 1부 리그 선수의 부진을 틈타 1부 리그에 올라왔고, 6번의 출장에서 5승 1패를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신진서보다 한 살 어린 2001년생 금지우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재목이다. 바둑리그가 한창이던 올해 1월 말 공식대국 성적은 9승 1패다. 8승의 신진서가 그 뒤를 쫓고 있는 형편이다. 2019년 12월 프로에 입단했으니 성장속도가 엄청나다. 이미 프로가 되기 전 제3회 참저축은행배 프로아마오픈전 본선 64강전에서 당시 프로랭킹 4위였던 이동훈 9단에게 승리해 이름을 떨쳤다.  

백대현 셀트리온 감독은 “기풍과 성격이 똑같다. 굉장히 차분하면서 침착하다. 바둑리그 선발전에서 처음 보고 뽑을 결심을 했다. 감각이 날카로우면서도 기본 실력이 갖춰져 있다. 그야말로 대성이 기대되는 기사다. 두터운 실리형의 기풍은 과거 이창호 9단을 연상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바둑돌을 잡았다는 문민종 3단은 국내 바둑계가 ‘이세돌급’ 대형신예의 깜짝 등장이라며 한껏 기대하고 있는 특급 유망주다. ‘한 살이라도 어리면 무조건 선(善)’이라고 하는 바둑계에서 2003년생이라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다. 나이만 어린 게 아니다. 성적으로도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신진서, 신민준처럼 2017년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한 문민종은 2019년 제7기 하찬석 국수배 영재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에는 국제 신예대회인 글로비스배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8강전에서 셰커, 준결승 랴오위안허, 결승에서 리웨이칭을 차례로 꺾으며 우승하는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셰커는 바둑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응씨배 결승에 올라 신진서와의 승부를 앞두고 있는 초특급 기사이고, 랴오위안허와 리웨이칭도 상당한 실력파들이어서 문민종의 우승 소식에 오히려 한국에서 얼떨떨해 할 정도였다. 이후 국내에서도 활약은 이어져 바둑리그에서는 랭킹2위 박정환을 꺾는 등 될성부른 떡잎임을 실력으로 입증하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 등장 이후 가장 성적이 상승한 두 기사 이창석(왼쪽)-최정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게임바둑
인공지능 등장 이후 가장 성적이 상승한 두 기사 이창석(왼쪽)-최정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게임바둑

◇요즘 핫한 중고 신예…이창석, 심재익

요즘 바둑계에서 핫한 이창석 7단은 ‘중고 신예’다. 96년생이니까 앞선 두 기사에 비해 연식(?)은 좀 있다고 해야 할까. 2015년 나이 스물에 겨우 입단한 이창석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작년 11월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년 전 40위에 머물던 랭킹은 11위까지 치솟았고 이 시기, GS칼텍스배, 쏘팔코사놀, 명인전, 용성전 예선을 차례로 통과해 본선에 진출했다. 연말연시 줄지어 열린 이 4개 기전의 예선을 모두 돌파한 기사는 이창석이 유일하다. 올해 전적은 18승 6패. 그중에는 10연승도 들어있다. 동료 기사들은 그런 그를 ‘대세남’이라 부른다.

이창석은 특히 요즘 화제인 인공지능(AI) 이후 가장 기량이 발전된 기사로 꼽힌다. 

“프로가 된 이후로도 내 감각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걸 어디 가서 확인할 수는 없었죠. 그런데 인공지능에 제 바둑을 넣어보니까 제 감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후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현재 랭킹 11위인 이창석은 지금도 꾸준히 랭킹을 올리고 있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컴퓨터 게임을 끊으면서 성적이 급상승했다는 심재익 4단. 16연승의 기록이 있다. /사진=한게임바둑
컴퓨터 게임을 끊으면서 성적이 급상승했다는 심재익 4단. 16연승의 기록이 있다. /사진=한게임바둑

98년생 심재익 4단도 최근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기사다. 특히 작년 연말 기세가 폭발적이었다. 작년 10월 이후 성적은 무려 24승 1패. 특히 하반기에 벌어진 KB바둑리그, GS칼텍스배 예선, 한국프로기사협회리그 등에서 16연승으로 전승 질주했다. 프로 입단 후 부진하다가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왕십리 충암도장으로 출퇴근하며 공부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완전히 리듬을 잃었어요. 거기에 컴퓨터 게임에 빠지면서 성적이 완전히 추락했죠. 그러다가 지난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전을 치르면서 각성해서 게임을 끊고, 바둑에만 다시 집중했습니다”라고 상승세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밖에 군(軍)에서 제대한 박민규 6단의 활약도 놀랍다. 지난해 12월 군 복무를 마친 박민규는 올해 2월 말까지 23승1패를 기록 중이다. 1승 1패 후 22연승을 달렸다. 

한국바둑은 중국에 비해 층이 엷다는 지적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과거 한국은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 특출한 기사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세계 정상으로 올라섰지만, 당시에도 정상급 기사들의 수는 중국이 더 많았다. 하지만 위의 신예 기사들이 기대대로 성장해 줄 경우 한국바둑의 르네상스는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유경춘 바둑평론가

대학졸업 후 첫 직장인 주간바둑신문 입사 이후 줄곧 바둑계에서 바둑전문기자로 활동해왔다. 월간 바둑세계 편집장, 넷마블바둑 컨텐츠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사)대한바둑협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