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회장에 산재 사고 책임 묻는 움직임 거세
안전사고 반복에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 청문회 회피에 쏟아진 국회 질타
노동자 목숨 희생양 삼아 포철 신화 쌓는 악습 작별해야

오는 12일 예정된 포스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정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인터콘티넨탈서울코엑스호텔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철강상생협력펀드' 협약식에서 최정우 한국철강협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오는 12일 예정된 포스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정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인터콘티넨탈서울코엑스호텔에서 열린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철강상생협력펀드' 협약식에서 최정우 한국철강협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포스코그룹은 공정자산 80조원으로 10년째 재계 순위 6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오너가 없는 ‘국민기업’으로 유일하게 6위 안에 드는 우량 거대기업이다. 포스코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6.1% 감소한 1조1352억원이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업계 2위인 현대제철을 비롯한 국내 철강업계가 80% 수준의 영업이익 감소를 피하지 못한 것에 비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렇게 잘 나가는 포스코그룹이지만 오는 12일 예정된 포스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정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적으로만 본다면 나무랄 데가 없지만, 최근 불붙고 있는 기업의 산업재해 책임론의 최대 문제기업으로 포스코가 지목되면서 최정우 회장이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산업재해(산재)만 따져볼 때 최악의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1월 21일 자 지면을 오로지 사람의 이름으로만 채워 화제를 모았다. 1면 전체를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문구와 함께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이름으로 채웠던 것이다.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중대 재해 가운데 주요 5대 사고(떨어짐, 끼임, 깔림·뒤집힘, 부딪힘, 물체에 맞음)로 숨진 노동자들이었다.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이름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산재에 대한 위기의식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산재는 후진빈곤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09년 발간한 ‘OECD 국가의 산업재해 및 사회·경제활동 지표 변화에 관한 비교연구’ 보고서를 보면, 1975년부터 2006년까지 OECD 3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2006년 한국의 ‘노동자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수’는 20.99명으로 가장 적은 영국(0.7명)과 약 30배 차이가 나고, 두 번째로 많은 멕시코(10명)와 비교해도 2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8년 뒤인 2014년에도 한국이 최악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의 ‘노동자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수’는 10.8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였다. 그 당시 유럽연합(EU) 평균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은 1994년 이후 통계가 제공되는 2016년까지 23년간 두 차례(2011·2016년)만 터키에 1위를 내줬을 뿐 ‘OECD 산재 사망률 1위국’의 불명예를 벗은 적이 없었을 만큼 산재 사망률에 관한 한 절망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산재 통계가 ‘업무상 질병, 통근재해, 근로자 범위, 조사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국가 간 상대비교가 불가능하다며 한국의 산재 사망자 수 통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1월 31일 ILO가 업데이트한 ‘10만명당 치명률’(Fatal occupational injuries per 100,000 workers)을 보면 1위는 한국이 아니라 콜롬비아(2015년 기준, 18명)다. 뒤를 이어 멕시코(8.2명, 2015년), 터키(7.5명, 2016년), 미국(5.3명, 2018년), 한국(4.6명, 2019년 기준) 순이다. 37개 OECD 회원국이 보고한 가장 최근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5위라는 얘기다. 시민단체인 건강노동연대측은 이에 대해 “ILO의 치명율 기준과 우리 고용노동부의 사망률 기준이 달라 일률적으로 순위가 어떻다고 할 수는 없지만, 치명율과 사망률은 비슷한 개념으로 노동계는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율이 OECD 내에서 1~3위권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좀 안쓰러운 ‘변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산재 사망률이나 치명률이 경제수준에 비해 ‘정상’이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산재 사망사고자는 2019년까지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지난해 27명 늘어 다시 소폭 반등해 경보음을 울린 것은 사실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2020년 산재사고 사망자는 882명(산재 사고 사망자만)으로, 전년보다 27명 늘어 다시 증가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산재사고 사망자는 2017년 964명, 2018년 971명, 2019년 855명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1년에 약 2000명, 하루 평균 5~6명씩은 일하다가 죽는 최악의 산업 환경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십년만에 압축으로 초고속성장을 이룬 우리는 ‘산재’를 마치 ‘경제 금메달’의 피나는 훈련의 후유증 정도로만 여기는 묘한 사회 분위기와 맞닥뜨린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 1월 초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기업에 산업재해의 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묻겠다는 것이 법률의 취지였지만 기업의 반발로 본래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논의 과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했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시기를 3년 유예하는 등 입법 취지가 후퇴했다. 우리나라 기준 5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98%에 달하고, 전체 산재사고의 8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실효성을 가질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안과 달리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에 대한 벌금형 하한선도 삭제돼 법원에서 반복된 솜방망이 처벌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 것이 기업주의 주된 책무임에도 중대재해법으로 마치 기업주가 큰 피해라도 보는 것처럼 호도되고 그 결과 법안의 실질적인 ‘안전선 확보’ 취지도 많이 퇴색했다는 것이다. 이런 법률 제정의 ‘후퇴’는 바로 우리 사회에 아직도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노동자 경시 풍조 때문이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산재의 대부분이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안전수칙 준수를 게을리 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노동자에게 산재의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산업안전에 대한 촘촘한 거물망을 확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가 안전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서 정치권의 질책이 이어지자 지난 2월 16일 현장을 찾아 머리 숙였지만 그 다음날 국회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큰 비판을 받았다. 국회 환노위가 허리 지병은 불출석 사유로 인정하지 않아 결국 최 회장은 청문회에 출석하게 됐다. 사진은 최 회장이 2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가 안전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서 정치권의 질책이 이어지자 지난 2월 16일 현장을 찾아 머리 숙였지만 그 다음날 국회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큰 비판을 받았다. 국회 환노위가 허리 지병은 불출석 사유로 인정하지 않아 결국 최 회장은 청문회에 출석하게 됐다. 사진은 최 회장이 2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실 한국 기업들 중 일부는 산업재해를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이 주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끔’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불운’으로 돌리려는 풍조가 있고, 산업안전대책을 ‘가욋돈’이 들어가는 불필요한 지출로 여기고 그 ‘돈’을 아까워한다. 최근 그런 기업가의 안일한 풍조를 대변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의 국회 청문회 출석 논란이다. 최 회장은 포스코가 안전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면서 정치권의 질책이 이어지자 지난 2월 16일 현장을 찾아 머리 숙였지만 그 다음날 국회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큰 비판을 받았다. 불출석사유서에는 서울 강남구의 한 정형외과에서 받은 진단서가 첨부됐고 병명은 ‘요추의 염좌 및 긴장’이었다. 하지만 일하다 재해로 병원에 누워 치료를 받거나 심지어 숨진 근로자도 있는데 포스코를 책임지고 있는 회장이 2주 정도의 진단서로 청문회를 회피하려한 것은 일단 소나기는 피해가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5년 동안 포항제철, 광양제철, 포스코건설 세 곳에서 산재로 숨진 근로자만 40명이 넘는 악명 높은 산재 기업으로 통했기에 최정우 회장의 불출석을 두고 비난이 쏟아졌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요추부 염좌상이나 경추부 염좌상 같은 경우에는 주로 보험 사기꾼들이 내는 건데 주식회사 포스코 대표이사께서 내실만한 그런 진단서는 아니라고 보인다”라고 일갈했다. 이에 최 회장은 “최근 연이은 사고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대단히 죄송하고 이 자리에서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정치권에서는 그와 포스코그룹의 안일한 노동자 산재 대책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최 회장 취임 이후에도 중대한 산업재해가 이어진 사실이 언급됐고 이번 사과가 대국민 ‘생쇼’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포스코의 하청업체, 협력업체 직원들의 산재 피해가 큰데 그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실 포스코의 산재 발생 빈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포스코는 2018년부터 최근까지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 14명이 협착·추락·폭발 등의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14명 중 하청 소속 노동자만 10명에 달한다. 최정우 회장이 취임한 2018년 7월 이후만 따졌을 때도 9명의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산재 판정자다. 이에 최 회장은 최근 잇따라 관련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월남참전전우회 고엽제 적폐청산위원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의 혐의로 최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위원회 측은 “잇단 산재 사망 사고 발생은 경영진이 구조적인 문제로 비용절감을 위해 안전관리자 제도를 없애면서 생긴 일”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산업재해가 빈번한 이유로 최 회장이 포스코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라는 점을 연관시킨다.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을 늘리는 것을 최대 과제로 생각하는 재무통 속성이 반영돼 안전에 소홀했다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오는 12일로 예정된 포스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정우 회장의 연임 여부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정치권과 노동권을 중심으로 최 회장에게 산재 사고 책임을 묻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전임 회장들도 관례상 연임을 했기 때문에 최 회장도 연임이 확실시 되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 이에 따른 기업들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산재 최악 기업으로 불리는 포스코도 최 회장 연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포스코 지분 11%를 가진 국민연금공단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지난달 중순 “포스코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투자 책임 원칙)를 제대로 시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압’ 공방에 시달려 왔다. 이번에도 민주당 노웅래 의원 등이 지나친 개인감정으로 포스코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문제의 핵심은 포스코의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변화에 있다. 

사실 제조업 가운데 철강업은 건설 다음으로 사고사망자 수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으로 꼽히는 산업안전의 ‘사고다발지역’이다. 특히 포스코의 사고 유형을 보면 총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전시에서나 볼 법한 치명적인 사고들이다. 지난해 7월 광양제철소 직원이 코크스 공정 설비 점검 중 숨진 데 이어 11월 광양제철소 배관 폭발로 직원 1명과 협력사 직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2월에도 협력업체 직원이 집진기 배관 공사 중 5m 아래로 추락한 후 숨졌다. 25톤 덤프트럭에 깔려 직원이 숨지는 사고도 같은 달 발생했다.

포스코에 유독 산재가 많이 나는 까닭은 철강제조업이라는 업종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 자체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만들어져 ‘군사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은 박정희 대통령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중 기초산업으로 철강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처음 그 설립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경제상황은 형편이 없었다. 그럼에도 1965년부터 종합제철소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 전 회장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사업의 밑그림을 짰다. 

1969년 박태준 전 회장은 종합제철소 건설에 쓸 자금 조달을 위해 미국 워싱턴까지 날아갔지만 국제제철차관단(KISA)으로부터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지금 같아선 도저히 방법이 없어 포기해야할 상황이었지만 박태준 전 회장은 이때 특유의 ‘군인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박 전 회장은 육사 6기 출신으로 1961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돼 5.16 혁명을 이끌었던 장본인이었다. 박 전 회장은 미국에서 투자유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하자는 꾀를 생각해 냈다. 이것이 오늘날의 포철신화를 낳게 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 뒤 박태준 전 회장은 일본의 철강산업의 주역들을 만나 일일이 설득해 일본정부는 제철기술을 제공하기로 했고, 신일본제철의 기술로 지어지게 합의를 보게 되었다. 1968년 4월 1일 회사를 설립하고 1970년부터 건설에 들어갔다. 예정보다 일정을 1개월 앞당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원의 자금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이후 포철은 1992년 광양제철소 4기를 준공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자산 80조원의 재계 6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포철은 노동자들의 몸을 그 성공의 제단에 바친 꼴이 됐다. 포철은 창립멤버의 핵심들이 ‘군인’들이다 보니 기업문화도 군대의 축소판이었다. 박태준 전 회장이 처음에 포철에서 같이 일하던 ‘부하’들은 자신이 연대장 할 때 그 밑에서 대대장 중대장 하던 사람들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포철 전체가 군대 시스템화 되었다. 여기에다  제조업 중에서도 건설업과 더불어 현장이 가장 위험한 철강산업이기 때문에 수직적이고 일사불란한 문화가 강한 편이었다. 이런 기업에서 노동자는 기계의 한 부속품에 불과했고, 군대에서 군인들의 목숨이 ‘국가에 대한 명예’로 여기듯 포철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포철 신화의 ‘희생양’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당연히 이런 과정에서 산업재해 사망자에 대한 예방이나 처우는 미미했고, 그 불행한 악습은 중대재해법이 제정된 2021년 1월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국회 불출석 논란인 것이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산재 사망사고를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보험 사기꾼들이나 쓸 법한 수법으로 국회 청문회에 불출석하려는 꼼수를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스코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이지만 산재 대책만 보면 후진국의 기업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재계에서는 포스코도 이제 기업 규모에 걸맞은 선진국 수준의 정밀한 산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스코는 회장이 국회에 불려가 혼이 나고서야 부랴부랴 대책들을 꺼내놓고 있다. 포스코측은 “지난 18년부터 3년간 노후설비 교체, 밀폐공간 시설물 보완 등 제철소 설비 개선과 안전전담 조직 신설·전문가 영입, 협력사 안전작업 수행 지원, 위험설비 검사 강화 등에 1조3157억원을 투자했고 향후 3년간 1조원을 추가 투자키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현장에선 “큰 변화는 없었다”고 토로한다.

포스코 현장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CCTV 추가 설치’라고 한다.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광양·포항제철소에 약 6202대의 CCTV가 추가 설치됐다”며 “금액을 단순 계산해보니 25억원 상당이었다. 작업장 내 조명 등 기본 안전장치 개선도 시급한데 사고 발생 시 책임 규명을 하기 위해 카메라 설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가 윤미향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에게 제출한 ‘2018~2020년 포스코 현장 안전 작업환경 개선 예산 집행 내역서’에 따르면 ▲포항제철 제강부 4연주 운전실 내 휴게공간 마련에 20억원 ▲수작업 공정의 자동화 설비 설치에 8억원 ▲후판부 1후판 냉각대 냉풍기 설치에 2억원 등을 사용했다고 돼 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포스코는 작업환경 개선에 1조원, 안전시설 개선에 1조원을 각각 투자하기로 했지만 안전시설 개선 관련 투자 내역은 포스코 측에서 공개하고 있지 않다. 작업환경개선 투자도 기존에 지급했던 마스크와 귀 덮개 구매 등을 비용으로 넣어 산출한 것이라고 노조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다. 일제 강점기 보상금으로 노동자들의 몸을 갈아 넣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에게는 애증이 교차하는 ‘국민기업’이다. ‘포철’이 한국 경제에 끼친 공로 또한 지대하다. 하지만 그 발전의 그늘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을 자랑하지만, 산업안전에 있어서는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올해 창립 53주년을 맞이하는 포스코도 세계적인 철강회사의 명성에 걸맞은 노동자 생명존중의 문화를 기업에 녹여내야 그 미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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