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 인터뷰
기술 진화로 싼 천연석이 최고급으로 둔갑
새로운 물질로 된 유색 보석도 계속 등장해
국내 최초 4대 국제학술지 논문 모두 실어
"감별 힘든 유색 보석은 국내서 구입 안전"

보석 감정 중인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 /민은미
보석 감정 중인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 /민은미

『Diamonds Are Forever(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1972년에 개봉한 영화. 남아프리카에서 밀수된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사라지자 영국 정보부는 제임스 본드에게 추적을 지시한다. 007은 5만 캐럿으로 무장한 다이아몬드 위성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의 음모를 막는다.

2018년 영화『오션스8』는 8인조 여성 보석 사기단이 화끈하게 보석을 훔치는 이야기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행사에 참석하는 톱스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는 내용이다. 목걸이 가격은 무려 1500억원.

보석의 몸값은 엄청나다. 그러다 보니 현실 세계에서도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에 걸쳐 인공적인 고온고압 처리로 컬러가 향상된 다이아몬드가 은밀히 거래되는 일이 일어났다. 2001년 가을에는 갑자기 새로운 타입의 수상한 파파라차(Padparadscha, 오렌지색과 핑크색 톤) 사파이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온고압 처리한 다이아몬드와 새로운 타입의 파파라차 사파이어가 마치 처리되지 않은 양 천연석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당시 보석 감정 기술이나 기존 장비로는 판별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림없다. 보석을 감별하는 기술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진위를 판별하는 보석감정사들은 그런 점에서 주얼리 업계의 ‘파수꾼’이라 할 수 있다. 41년째 주얼리 업계를 지켜온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68)을 1월 17일 종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41년째 주얼리 업계 파수꾼 역할을 해 온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민은미
41년째 주얼리 업계 파수꾼 역할을 해 온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민은미

—올해로 한미보석감정원 개원 41년차입니다. 불혹(不惑)을 넘긴 소감은.

“지나고 보니 행복합니다. 한 기업체가 설립해서 10년 가기가 어렵다고들 얘기하는데 30년을 넘어 40년을 넘겼으니 감회가 남다르죠. 더구나 보석을 사치품으로 인식하고 있어 국내 보석 산업에 대한 규제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현장에서 일하면서 끌어왔습니다.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감정 기준인 4C(Color/색상, Clarity/투명도, Cut/연마, Carat/중량)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기인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정착되기 시작했죠. 그나마 유색 보석인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비취, 진주에 대한 감정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 불모지에 유색 보석 감별의 역사를 정착시키고 체계화시켰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영출 원장은 한미보석감정원이 불혹(不惑)을 넘겨 행복하다고 말한다. /민은미
김영출 원장은 한미보석감정원이 불혹(不惑)을 넘겨 행복하다고 말한다. /민은미

—유색 보석 중 우리나라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보석은 무엇인가요.

“다이아몬드가 가장 많이 팔리고 다음에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진주, 이렇게 5대 보석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주로 유통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선호하는 유색 보석이라면 루비를 들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색 보석 시장은 증가하는 추세인가요.

“코로나 19를 계기로 국내 유색 보석 시장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 유색 보석은 산지에서 양질의 원석이 고갈되고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사상 최고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크기가 큰 것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MZ 세대들은 색상이 짙은 전통적인 보석보다는 밝은 파스텔 톤 색상의 다양한 보석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추구하고 있어요. 투어멀린, 루벨라이트, 탄자나이트, 페리도트, 토파즈, 아이올라이트 등으로 유색 보석 시장이 폭넓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최상질을 원하는 경향이 짙었는데, 최근에는 크기는 작아도 가격대가 낮은 천연 보석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감정 의뢰도 예전에는 약 20종류였는데, 지금은 50여 가지로 다양해졌습니다.”

1981년 GIA 홍콩에서 수료증을 받을 당시 김영출 원장(중앙 왼쪽 흰색 상의). /한미보석감정원
1981년 GIA 홍콩에서 수료증을 받을 당시 김영출 원장(중앙 왼쪽 흰색 상의).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은 1974년에 연옥(軟玉, Nephrite) 가공사로 업계에 입문했다. 미술대학에서 금속 공예를 전공했던 김 원장은 손재주가 있어 보석 가공사로 사회에 첫발을 뗐다. 1년 차 정도 지나고 나니 "요놈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놈들이 여럿 있었다"며 옥처럼 보여도 옥이 아닌 비취, 사문석 등 다른 보석들이 보였다고 한다.

이런 보석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감정 교육을 받게 되었다. 김영출 원장은 영국 FGA(Fellows of the Gemological Association) 국내 1호, 미국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보석 감정사 국내 3호다. 

다이아몬드 감정 제도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를, 동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1982년 한미보석감정원을 열었다. 현존하는 국내 보석감정원 중 두 번째 감정기관이다.)

—이름을 한미(韓美)로 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韓國)의 아름다움(美)’이란 뜻입니다. 보석이 지닌 아름다움을 감정으로 더욱 빛나게 해서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40년간 보석에 얽힌 사건 사고가 있었나요.

“미국 GE사에서 1999년에 다이아몬드 고온고압 처리를 개발했습니다. 호주 아가일 광산(세계 최대 규모의 다이아몬드 산출지로 보석용 다이아몬드의 80% 이상이 갈색과 황색으로 채광되어 ‘샴페인 다이아몬드’, ‘코냑 다이아몬드’로 불림)에서 나온 다이아몬드에 고온 고압 처리를 하니까 색이 브라운에서 컬러리스(Colorless, 무색)가 되는 거예요. 무색일수록 가치가 높죠.

GE사에서 GIA에 감정 의뢰를 했는데, 당시 기술로는 탈색한 다이아몬드와 원래 무색이었던 다이아몬드를 구분해낼 방법이 없었어요. 이때 한미가 발빠르게 일진 다이아몬드, 서강대학교와 공동 연구를 통해서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후 국내에 탈색한 다이아몬드는 유통될 수가 없었죠.

파파라차 사파이어는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전세계 유통량의 70~80%를 소비했어요.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물량이 폭증한 거죠. 그때도 한미가 진보한 검사 장비를 활용하고 신속하게 대응해 베릴륨 처리(베릴륨(Be)을 이용한 색상 개선 방법)된 루비, 사파이어의 명확한 감별법을 고안했습니다.”

—유색 보석에 얽힌 사연이 많군요.

“예. 2003년 스위스, 2004년 일본에서는 함침 루비가 발견돼요. 함침 처리는 천연석에 납 유리 물질을 주입해서 루비의 색상과 투명도를 개선하는 처리 방법입니다. 칙칙한 색이 선명하고 맑고 고운 색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엄연히 천연 그대로의 상태는 아니죠.

국내에서도 TV홈쇼핑을 통해 함침 처리 루비가 대유행하게 되는데, 2004년 2월에 한미에서 국내 최초로 10캐럿 함침 처리 루비를 발견했습니다. 업계 소식지를 통해 함침 처리 루비의 출현을 공개했죠. 또한 TV홈쇼핑 판매 시, 안정성에 대한 유의사항을 고지하도록 했습니다.

2011년 3월에는 홍콩 주얼리 박람회의 일본 부스에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방사선 조사된 남양 진주가 방사선 처리에 대한 고지 없이 판매된 거죠. 한국인이 선호하는 바로 그 ‘은갈치’ 색상이었습니다. 당시 방사선 조사된 남양 진주는 전 세계적으로 감별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미에서 세계 최초로 감별에 성공했습니다. 국내 진주 시장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했죠. 해외에서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건 진주 종주국인 일본 감정 기관과 매체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김영출 원장이 보석의 투명도 등급을 보고 있다. /민은미
김영출 원장이 보석의 투명도 등급을 보고 있다. /민은미

—이런 처리석이 유통되는 이유는?

“천연 보석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희소성‘입니다. 희소성이 높을수록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금전적인 가치가 높아집니다. 천연 보석의 산출에 한계가 있으므로 색과 투명도, 안정성 등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한미보석감정원의 누적 연구논문 발표는 총 200편이 넘는다. SCI급(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 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가 과학기술분야 학술지 중 엄격한 선정 기준에 의해 선별한 논문)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는 외국의 유수한 감정기관에서도 흔치 않은 실적이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미국보석학술지(GIA), 영국보석학술지(FGA), 홍콩보석학술지(GAHK), 세계보석협회(ICA)가 발간하는 메이저 국제 학술지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일관된 감정을 위해선 원칙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이아몬드 감정은 의뢰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 즉 익명성을 원칙으로 합니다. 편견이 있어선 안되니까요. 등급 감정을 하는 자동화된 기구들이 많이 개발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최종 등급 결정은 사람이 합니다. 개원할 때부터 지금까지 접수실과 감정실을 분리해서 누가 의뢰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감정을 진행합니다.

또한 트리플 체킹 시스템도 일관성을 지니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숙련된 감정사가 감정 등급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3인이 관여합니다. 2인 이상이 해당 등급에 동의할 경우에만 최종 등급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한미보석감정원은 이러한 원칙을 40년 동안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보석학이 내일은 틀릴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해외서 구입해 온 보석 감정 의뢰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석이 거의 산출되지 않다 보니 많은 소비자들이 외국에서 구매하면 저렴할 뿐 아니라 보다 좋은 품질의 보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오히려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비싸게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천연이 아닌 합성석이거나 모조품인데 천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사 오시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국내든 외국이든 믿을만한 구매처인지를 꼼꼼히 살피고 구매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석을 구매하실 경우에는 공신력 있는 감정원의 감정서나 감별서가 있는지 꼭 확인하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GIA 감정서와 비교한다면, 한미보석감정원의 수준은 어떤가요.

“GIA와 동일한 국제적인 기준이 적용됩니다. GIA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는 감정실 내부. 흰색 셔츠를 입은 김영출 원장과 정영수 선임 보석감정사(오른쪽) 뒤로 책과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찬 책장이 보인다. /민은미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는 감정실 내부. 흰색 셔츠를 입은 김영출 원장과 정영수 선임 보석감정사(오른쪽) 뒤로 책과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찬 책장이 보인다. /민은미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는 감정실 내부를 방문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감정실 내부 벽면을 가득 채운 책이었다. 마치 대학교 도서관 같았다. 다른 하나는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프린터실. 보석 감정 시, 방해 요소인 먼지가 날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유리창으로 밀폐된 감정원 내 프린터실. /민은미
유리창으로 밀폐된 감정원 내 프린터실. /민은미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이 보석감정사들의 흰색 셔츠였다. 김 원장은 물론 감정실 내부의 모든 직원들이 백지 같이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감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노란색을 본 후 다이아몬드 컬러 등급을 매기면 잠시 동안 보색 관계 때문에 파란색이 보여 더 하얗게 보인다고 한다. 그런 잔색 현상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평일에는 직업상 직원들의 술, 담배도 금한다고 한다. 몸의 컨디션이 감정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단히 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품이 있을텐데요.

“1990년대였는데, 노 부부가 오셨어요. 비단에 싸고 싸고 또 싼, 귀한 옥비녀를 접수했습니다. 심상찮은 물건임을 단번에 알았죠. 점잖고 단정한 노 부부셨는데, 선대부터 가보로 내려온 것이었답니다. 아들 사업이 여의치 않아 그것을 처분하려고 한다잖아요. 연두색보다 조금 짙은 색상이었는데 이게 인조 유리로 나왔어요. 왠지 너무 미안했어요.”

에메랄드의 내부를 60배 확대한 사진. 콜롬비아산 에메랄드에서 주로 관찰되는 삼상(三相) 내포물. 액체, 기체, 고체가 함께 보인다. 김영출 원장은 보석 안에 천태만상의 자연이 있다고 말한다. /한미보석감정원
에메랄드의 내부를 60배 확대한 사진. 콜롬비아산 에메랄드에서 주로 관찰되는 삼상(三相) 내포물. 액체, 기체, 고체가 함께 보인다. 김영출 원장은 보석 안에 천태만상의 자연이 있다고 말한다. /한미보석감정원
자수정을 60배 확대한 사진. 액체와 기체로 구성된 이상(二相) 내포물이 보인다. 보석 안에 또 다른 자연 세계가 펼쳐진다. /한미보석감정원
자수정을 보석용 현미경으로 60배 확대한 사진. 액체와 기체로 구성된 이상(二相) 내포물이 보인다. 보석 안에 또 다른 자연 세계가 펼쳐진다. /한미보석감정원

—40년 넘게 직업적으로 보석을 보면, 보석이 질리지 않나요.

“사진 작가들이 사진 찍을 때, 보는 각도에 따라 같은 사물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호기심도 가잖아요? 보석은 기본적으로 현미경 10배율부터 확대를 시작하죠. 20배율, 30배율까지 검사를 해내요.

그 속을 보다 보면 설악산의 사계가 다 다르듯이 보석 내부에 천태만상의 자연이 있습니다. 너무 너무 다양한 산천이 보여요. 이런 건 진짜 보석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죠. 지루할 수가 없어요. 한미보석감정원이 불혹을 넘겼는데, 앞으로도 주얼리 산업의 ‘파수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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