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은행 배상액 상반기만 2조원
50억 이상 자산가 주로 겨냥한 상품
고위험 상품 은행 판매 금지 제안도

서동요는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과 결혼하기 위해 만든 노래로 알려진다. 동네 아이들로부터 불리게 해 진평왕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소원을 성취했다. [용산 동요]는 그 옛날 아이들의 노래와는 다르지만 서동요와 닮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궁궐 안으로 전달하는 노래와 같다. [편집자 주]

# 10만원짜리 펀드 하나도 PB 마음대로 판매할 수가 없어요. 대부분 고객이 고학력 전문직입니다. 투자 경험도 저보다 많으세요. 당연히 목표 수익률이 높으면 리스크가 높다는 걸 아시죠. 투자 상품에 큰 손실로 이슈화됐던 경험들이 있잖아요. 예전처럼 누가 권유해서 고위험 상품을 산다? 말도 안 됩니다.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투자 적합 적정 설명 교부 의무가 내부통제 안에 이미 다 녹아있습니다. 고객이 손실 바운더리를 지정하고 감내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후, 계좌를 오픈하는 단계에서 이미 수없이 확인 작업이 들어갑니다. VIP 고객과의 오랜 교감과 소통으로 PB의 책임감은 말할 것도 없고요. - 서울 강남구 소재 시중은행 PB A씨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자율 배상하라 지시내린 홍콩 H지수(항센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은 50억 이상 자산가나 접근할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금융업 전문가들은 손실 피해자들이 위험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국회에 놓인 홍콩 ELS 탄원서. /연합뉴스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자율 배상하라 지시내린 홍콩 H지수(항센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은 50억 이상 자산가나 접근할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금융업 전문가들은 손실 피해자들이 위험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국회에 놓인 홍콩 ELS 탄원서. /연합뉴스

2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자율 배상하라 지시내린 홍콩 H지수(항센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은 대개 50억 이상 자산가가 접근할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부유층 고객을 위한 웰스매니지먼트(WM,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는 고객에게 프라이빗뱅커(PB)가 판매한 상품인데 일부 은행 창구에선 일반 고객에게도 판매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로 20번 재투자한 사례도 나오는 가운데 초고위험 상품임을 모르고 구매했다는 소비자가 늘면서 지리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금융업 전문가들은 손실 피해자들이 위험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업 관계자 B씨는 “기자님은 그거 안 사셨나? 나한테도 오퍼 안 왔다. 왜냐하면 그만한 자산가가 아니라는 거다”라면서 “피해자 중 상당수는 홍콩 ELS가 초고위험 상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은 불완전판매의 소지도 클 수밖에 없다. 판매 입장에서 ‘사지마세요’가 아닌 ‘사세요’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해당 상품이 큰 수익을 얻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홍콩 ELS 사태처럼 반타작 손실이 날 때 가입 시점에서 ‘사세요’는 불완전판매의 단초가 된다.

금융업계는 소비자 보호 절차 100개가 있어도 한 개만 놓쳐도 불완전판매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 관계자 C씨는 ‘은행 판매 금지’라는 불완전판매 해결책을 제안하고 근거를 댔다.

“2년 후 리스크(홍콩H지수 폭락)를 예측하지 못한 판매원이 판매 당시 ‘안전합니다’ 내지는 ‘과거에 손실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파는 게 목적이니까.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요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거다. 그렇지만 서류상 구매자는 ‘위험 고지 받았다’고 사인했을 것이다.”

레드 출입구 ‘고위험’ 그린 출입구는 ‘안전’
투자일임법 제도화할 때 불완전판매 제거

그는 불완전판매 이슈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애초에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위험 상품에 관심 있는 고객은 증권사로 안내한다.

 불완전판매 이슈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애초에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도 제기된다. /픽사베이
불완전판매 이슈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애초에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도 제기된다. /픽사베이

“증권사는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을 취급한다. 하지만 은행은 예·적금과 같은 매우 안전한 상품도 판매하는 곳이니 만큼 사실은 이런 고위험 상품이 자기 콘셉트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고위험 상품 판매로 수익이 많지도 않다. 어차피 은행으로 돈 버나 증권으로 돈 버나 지주 입장에선 같다. 이자 장사한다고 비난하니까 비이자이익 섹션을 늘리다가 이 사달이 났다. 은행 아닌 증권사로 고객을 안내하면 고객 스스로가 위험 상품임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은행에서 정 팔아야겠다면 출입구를 다르게 하는 방법도 있다. 출입구를 빨간 문을 만들어 경고를 하든지 레드 카펫을 깔든지 ‘여기는 위험합니다’라는 시그널을 확실히 주는 거다. 예금 창구는 그린 카펫을 깔고 ‘여기는 안전합니다’라고 인지시킨다.”

은행과 증권사가 웰스매니지먼트 사업을 활성화하는 상황에서 ‘투자일임업’을 제도화해 불완전판매에 대한 싹을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객이 자금 불리기를 기관에 일임하는 것이다. 핵심은 고객에게 상품 선택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고객이 개별 주식이나 위험 상품을 고르는 게 아니라 금융기관이 투자일임업이라는 걸 해서 알아서 투자하는 거다. 고객은 목표 수익률만 지정한다. 예를 들어 ‘지금 예금 이자가 3%인데 최소 5% 이상 수익이 났으면 좋겠다’ 정도. 은행은 자산운용사나 증권사에 운용을 하게 넘긴다. 운이 안 좋아서 마이너스가 났다고 쳐보자. 그런데 이건 불완전 판매가 아니다. 왜냐하면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거를 100% 공지를 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해달라고 일임해서 맡긴 거 아닌가. 그런데 손실이 났다? 운용사를 비난할 수는 있지만 배상할 책임은 없다. 이건 웰스매니지먼트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자산가 본인이 투자 상품을 선택해놓고 지금처럼 판매사가 잘못했다 얘기하기보단 애초에 전문지식이 없으면 보편적으로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판매 채널과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들에 스스로 자율 배상하라며 배상 기준안을 내려 보냈다. 이로써 원금의 100%를 보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다만 금감원은 대다수 사례가 20~60% 구간에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으며 업계는 40% 안팎 수준을 기준으로 삼았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들에 스스로 자율 배상하라며 배상 기준안을 내려 보냈다. 이로써 원금의 100%를 보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다만 금감원은 대다수 사례가 20~60% 구간에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으며 업계는 40% 안팎 수준을 기준으로 삼았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 ELS를 판매한 은행들에 스스로 자율 배상하라며 배상 기준안을 내려 보냈다. 이로써 원금의 100%를 보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다만 금감원은 대다수 사례가 20~60% 구간에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으며 업계는 40% 안팎 수준을 기준으로 삼았다. (관련 기사 : ‘맞을 매 스스로 정하라’ 부릅뜬 이복현···홍콩ELS, 자율배상 후 과징금)

홍콩 ELS는 올해 상반기만 5조, 하반기까지 총 8조 대규모 손실을 앞두고 있다. 만약 업계 기준 배상 비율인 40%로만 추산하더라도 은행은 총 2조, 하반기까지 3조2000만원 규모를 배상해야한다.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이 9545억원 △NH농협은행 2967억원 △신한은행 2753억원 △하나은행 1505억원 △SC제일은행 1160억원 △우리은행 50억원으로 추산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기 도래하는 상품은 더 많아지기 때문에 추산 시점에 따라 배상 규모는 점점 늘고 있다.

홍콩 ELS는 올해 상반기만 5조, 하반기까지 총 8조 대규모 손실을 앞두고 있다. 만약 업계 기준 배상 비율인 40%로만 추산하더라도 은행은 총 2조, 하반기까지 3조2000만원 규모를 배상해야한다. /최주연 기자
홍콩 ELS는 올해 상반기만 5조, 하반기까지 총 8조 대규모 손실을 앞두고 있다. 만약 업계 기준 배상 비율인 40%로만 추산하더라도 은행은 총 2조, 하반기까지 3조2000만원 규모를 배상해야한다. /최주연 기자

한편 DLF와 라임 펀드 사태 이후 고위험 상품에 대한 소비자보호 정책은 이미 강화됐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초고위험상품은 이전 같으면 상품 가입이 10분도 안 걸렸지만 현재는 30분이 넘게 걸린다. 녹취와 사인은 기본이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 D씨는 “은행들은 불완전판매 안 되게 하려고 조치를 꼼꼼하게 하더라도 감독당국이나 소비자가 볼 때는 그 조치의 완성도가 많이 다를 수 있겠다”라면서 “결과적으로 ELS 관련해서 손실이 많이 났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PB E씨는 “구매자 뿐 아니라 판매인도 내가 팔았다고 녹음도 하고 사인도 하는 게 기본이다. 고객이 신뢰하는 만큼 PB도 책임감 있게 임한다”라면서 “무위험인 상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상품을) 만들지 손실 보게 하려는 상품은 없다. 가입 시기에는 상황이 좋아도 결과는 한참 뒤에 나오지 않나.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대안도 드린다”라고 설명했다. (총 5인이 용산 동요 ① 취재에 도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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