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밥을 먹고 커피 마시듯 발레 공연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아주머니
껌을 팔던 고아 소년의 클래식 만남

가끔씩 떠올려 본 의문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왜 어렵다고들 할까? 흔하게, 자주 못들어서는 아닐까? 거창하게 무게 잡고,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동네 노래방처럼 쉽게 갈 수 있는 고전음악 카페가 있다면, 주변에 쉽게 갈 수 있는 클래식 연주회가 있다면 어쩌면 다르지 않을까요? 

러시아 문화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 문화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문화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겨울 궁전, 카잔 대성당과 같은 뛰어난 건축물을 둘러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르미타시 박물관을 비롯해 풍요로운 예술과 문화적인 명소도 인상적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야채를 사려고 시장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날은 장이 파하기 전이었는데 아주머니가 유난히 일찍 자리를 정리하시더라네요. 왜 일찍 자리를 접으시냐 물었더니 아주머니께서는 '운 좋게 싸게 나온 티켓을 구해서 오늘은 발레 공연에 갈 거라'고 하시더랍니다.

비록 지금 러시아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이 발레공연에 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라는 사실에 놀라고 기분이 좋았어요. 마린스키 발레단이 있는 도시, 음악과 미술, 문화적 자극이 계속되는 도시에 살면 아마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자라면서 판소리를 듣고, 민요와 국악 연주를 들었던 사람들이 한국 음악을 계승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오래전 어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세 살에 버려진 고아로 자라면서 껌팔이, 핸드폰 팔이, 막노동을 하며 살아오던 청년이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세련된 팝과 모던록, 가창력 뽐내는 가요와 댄스를 뽐내는 오디션이었는데 그 사람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클래식 넘버,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습니다.

극단적일 만큼 어려운 환경, 밑바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생으로부터 노래와 음악으로 탈출한 그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아직 그 청년이 처음 클래식 음악을 만난 날의 경험을 소개한 대목을 잊지 못합니다.

그는 어느 날 심부름으로 나이트클럽에 갔다고 했어요. 업장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영업 전 시간이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가 부르는 성악곡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제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잊을 수 없었다’고 했지요.

저는 그의 말을 가끔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도 결정적인 만남의 순간을 가지지 못해서, 낯설어서, 잘 몰라서, 그래서 클래식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클래식과 멀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연주자의 호흡까지 즐길 수 있는 하우스 콘서트홀의 연주 /사진=박재희
연주자의 호흡까지 즐길 수 있는 하우스 콘서트홀의 연주 /사진=박재희

사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데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게 가능할까요? 모르는데 좋아하는 것,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감동하는 것, 전문적 지식이 없이도 무엇이 최고인지 반응하는 것 말입니다. 가능할까요? 저를 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음악 홀이 있습니다. 음악 하면 떠오르는 강남의 예술의 전당도 아니고 대대로 유서 깊은 아트홀이 아닙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걸어갈 수도 있을 만큼 가까이 있는 하우스 뮤직 콘서트홀입니다. 거기는 프랑스의 명문 음대 에콜 노르말의 피아노 교수이자 현역 피아니스트인 분이 운영하고 계십니다. 

서울 동쪽, 시장 골목의 하우스 콘서트홀이라니 너무 어색하지 않나요? 평범한 단독 양옥집을 개조한 지하에 음악당이 있는데 거기에서 무대가 필요한 좋은 연주자들이 실내악과 가곡, 때로는 민속음악과 춤을 공연합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려면 예술의 전당, 무슨 콘서트홀, 어떤 아트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평생을 음악가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은 음악이 가까이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해요. 자신이 사는 골목, 매일 밥 먹고 오가는 동네에서 즐기는 음악. 이것이 바로 제가 반하고 좋아하며 부라보를 외치는 부분이랍니다.

러시아 최초의 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홈페이지 제공
러시아 최초의 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홈페이지 제공

상상해 보세요. 동네에 가스를 배달하러 오는 사람, 옆집 세탁소와 병천순대집에서 서빙하는 종업원 분, 편의점 알바를 하는 친구들이 골목에 있는 음악 홀에 와서 클래식을 듣고 만나는 겁니다. 꿈같지 않나요?

몇 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연주회가 없어서 가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그 하우스 콘서트홀이 있는 골목에서는 관악기로 이루어진 콰르텟 연주가 있었어요. 가정집 2층의 발코니에서 연주되는 클래식 넘버, 낯설지만 아름다운,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려고 사람들은 집 앞 골목으로 나오고, 지나가던 사람들마저 편의점에 놓여 있던 의자를 당겨 앉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골목길에 서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꿈처럼···. 저는 왠지 그때 눈물이 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린 배우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구별하고, 학습하지 않고도 완전의 세계를 만나면 알아채게 됩니다. 수많은 세계적 명화가 걸려있는 곳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저를 포함해 많은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압도적일 만큼 수많은 미술품이 걸려있는 복도를 지나다가 공연히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 알 수 없는 이유로 끌리는 그림의 작품 설명을 보면 세상에··· 누구나 아는 거장의 작품일 때가 많으니까요. 보편적인 아름다움, 보편적인 궁극의 차원은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끼게 되는 것이니까요.

동네의 골목길, 2층 양옥 건물의 테라스에서 열린 주민을 위한 콘서트 /사진=박재희
동네의 골목길, 2층 양옥 건물의 테라스에서 열린 주민을 위한 콘서트 /사진=박재희

우리는 일하느라 평생을 바치고, 월급 통장을 가족에게 안기느라 취향 따위 무관심 했잖아요. 내가 뭘 보면 가슴이 콩닥거리는지, 어떤 음악을 들으면 아득할 정도로 코끝이 찡한지 알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자기 인생에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넣어보자고 말하고 싶어서 참 얘기가 길었습니다. 우리 이제 브라보를 외쳐보자고요.

당장 집에 가고 싶어지는 불편한 옷을 입고 찾아가야 듣고 만날 수 있는 클래식은 어쩌면 힘만 잔뜩 준 가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잠을 자고 깨는 동네, 봄나물을 찾아가는 시장 골목에서 흔하게 만나는 드뷔시, 모차르트, 브람스와 쇼스타코비치를 꿈꿔봅니다. 인생 뭐 있나요? 아름다움을 꼼꼼히 느끼며 향유하고 살아야죠. 우리 모두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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