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연동형, 표의 가치가 왜곡
‘명분’이 ‘위선’으로 전락
두 석 제외하고 폐지해야

비례정당 · 위성정당 창당 (PG) /연합뉴스
비례정당 · 위성정당 창당 (PG) /연합뉴스

비례대표 리스트를 두고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개혁 신당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었다. 국민의힘의 경우 호남 인사와 당직자 배려가 적었다는 ‘표면적’ 이유를 들며 당내 일부가 반발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진보당 인사들이 당선권에 배치됐다는 점에서 여론의 비판이 일고 있다. 개혁신당 역시 비례 순번에서 소외된 당직자들의 반발이 상당했고 한때 양향자 의원은 탈당까지 고려했었다고 한다. 

이런 각 정당의 비례대표를 둘러싼 논란 혹은 내분 사태를 보면 비례대표가 과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도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제도와 관련해서 먼저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비례대표제를 두는 국가들 대부분은 내각제 국가라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대통령제를 권력 구조로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나라에 비례대표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비례대표제는 애초에 국회 내에서의 직능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였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가 이런 비례대표제 본래의 취지에 부합한지를 생각해 보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준 연동형 비례제를 강행 도입하면서 주장했던 명분은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표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시키며, 표의 등가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주장했던 이런 명분은 현실에서는 전혀 구현되지 않았음이 지난 선거에서 증명됐다. 예를 들어 자력으로는 도저히 원내 진입이 불가능한 정당들이 민주당의 위성 정당을 통해 원내에 진입했는데 이는 표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의 가치가 왜곡됐음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진보당의 사례가 그것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3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 14.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나타난 정당 지지율을 보면, 진보당 지지율은 1%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지지율이면 비례 의석 확보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데 진보당은 민주당의 위성 정당 구성원으로 참여함으로써 3석 정도의 의석 확보가 가능하게 됐다. 

이런 식이라면 준 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또한 21대 국회의 경우 민주당 “덕분”에 간신히 원내 진입에 성공한 정당들 대부분은 총선 이후 민주당에 편입됐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했던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그리고 이를 통한 다양한 시각의 제도 정치 반영이라는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린 꼴이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의 경우는 총선 이후에도 독립성을 유지하겠지만 다른 ‘시민단체’ 추천 후보들은 민주당에 입당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준 연동형 비례제의 유지 여부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제기돼야 하고 비례제 자체의 존속 여부도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직능 대표성 대신 논공행상을 기준으로 비례 후보를 정하고 자신들의 우군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을 ‘인위적으로 키워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례대표제를 왜 존속시켜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 비례대표제의 존속에 대한 필요성을 기존 정치권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은 지난번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번 선거구 획정 당시 전북의 지역구를 한 석 줄일 필요성이 제기되자 여야는 비례 의석을 한 석 줄이는 대신 전북의 의석수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을 보면 정치권 자체도 비례 의석을 일종의 “잉여 의석”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의석 두 석 정도를 제외하고는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나머지 비례 의석은 지역구로 돌리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역구를 증설할 필요성은 있지만 국민들이 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비례 의석을 두 석 정도 남기고 폐지하고 지역구로 돌리자는 것이다. ‘명분’이 ‘위선’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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