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와 보상, 불균형 우려
투명한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블록체인./픽사베이
블록체인./픽사베이

얼마 전 한국의 4대 거래소 중 하나인 코인원이 메타마스크와 같은 개인 지갑으로의 출금을 제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오는 3월 25일 시행되는 특금법에 의거해 은행이 불법적인 자금 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트래블룰(자금 이동 제한)'의 적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미리 등록된 화이트리스트 지갑만으로 출금을 할 수 있게 하고, 등록 요구 조건에 본인의 지갑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지갑 정보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 지갑은 개인 정보 입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거래소가 요구하는 본인 확인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상호간에 정보 확인이 가능한 일부 거래소 간의 송금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된다. 

같은 NH농협은행을 이용하는 빗썸의 경우도 유사한 정책을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코빗도 신한은행과 계약시 트래블룰 준수 조건을 포함했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업비트의 경우, 케이뱅크와의 계약시 트래블룰 조건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 지갑 출금 제한을 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만일 업비트를 제외한 다른 거래소들은 트레블룰에 걸려 개인지갑으로의 출금을 막는데, 업비트만 이를 허용한다면 안그래도 독점화되어 가고 있는 크립토 거래 시장의 기형적 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트래블룰은 자금세탁방지와 테러방지를 위해 미국 주도하에 1996년 Treasury Department’s Financial Crimes Enforcement Network (FinCEN)에 의해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도입되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송금 트랜잭션을 추적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서 고안된 것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2019년 이 룰을 가상자산사업자로 확장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FATF의 규칙을 준수하는 각 국가들은 저마다의 일정에 따라 별도의 실행안을 내놓고 있다. 한국의 특금법도 이러한 FATF의 준수를 위한 실행방안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트래블룰의 구체적인 도입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기존 금융시스템과 크립토 생태계는 쉽게 호환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밑바탕은 금융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에 대한 라이센스 시스템이다. 고객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는 운영 주체가 없이는 시스템이 작동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송금은 금융기관(또는 이에 준하는 송금업체) 간의 거래이다. 개인 간의 직접적인 송금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크립토 생태계는 이러한 제3자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난 개인 간의 트랜잭션을 가능케하자는 발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부패한 금융시스템으로부터 개인 자산을 지키려면, 기존 은행이나 금융기관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모든 혁신은 결국 탈중앙화된 개인 간의 직접적인 트랜잭션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크립토 시장도 대중적인 성장과 확장의 과정에서 중앙화된 거래소와 접점이 커지고, 기존 금융시스템과의 접점도 커질 수밖에는 없다. 공익을 대변하는 국가의 규제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 하지만 크립토 시장의 본질적인 혁신의 성격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정책의 무리한 적용은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지금 크립토 시장을 이끄는 대부분의 혁신적 산업은 모두 탈중앙화된 개인 지갑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국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연합뉴스
한국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연합뉴스

아직까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트래블룰 관련 논의는 기업 간의 트랜잭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개인지갑으로의 출금을 전면 금지하려는 시도는 아직 한국을 제외하면 사례가 없을 정도이다. 기존 트래블룰 시스템과 크립토 시장과의 불호환성 문제를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개인지갑 송금을 전면적으로 막는 것은 블록체인이 가져다 줄 혁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매우 관료주의적이고, 형식적이고, 근시안적인 조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만일 거래소가 확인할 수 없는 외부 지갑으로의 송금시 생기는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한다면, 각 개인이 스스로 선언한 본인 지갑으로의 출금은 허용해야 하고, 스스로 입증한 개인 지갑이 본인의 것인지 아닌지는 개인키의 사인 능력으로 검증해야지, 외부 기관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안된다.  

사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래블룰 관련 혼란은 시장의 각 주체에게 부과되는 리스크와 보상의 불일치에서 기인되는 바가 크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자금 세탁 감시의 책임까지 떠맡아야 하는데, 이에 걸맞는 수익을 확보하는 길은 막아 놓았다. 거래소가 대부분의 이익을 독식하는데, 실제적인 책임은 은행이 져야한다면, 왜 은행이 적극적으로 이 리스크를 떠안아야 할까? 고객의 입장이나 거래소 입장은 부차적이 된다. 오로지 자신의 리스크를 축소하는 데만 관심이 집중될 뿐이다.

거래소가 혼자 리스크를 다 떠안겠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결국 리스크와 보상이 균형이 맞지 않으면, 은행과 거래소 모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정책이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에게도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단히 불편한 거래 환경과, 개인이 부담해야 되는 거래 비용 증가를 가져올 뿐이다. 애초의 목적인 불법적인 자금 거래 차단에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제적인 트렌드로부터 동떨어져 나가 혼자만 고립되겠다는 것도 국가적 산업 경쟁력면에서 큰 마이너스 요인이다. 불법 자금 차단이 주목적이라면 차라리 금융권의 크립토 산업 진출을 전면 허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단기적인 규제 일변도로 산업을 보는 정부 당국의 근본적인 정책 방향 전환 없이는 앞으로도 계속 심각한 잡음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은행과 거래소 뒤에서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대신 보다 투명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새로운 글로벌 디지털 이코노미에서 크립토 산업을 어떻게 보호 육성할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될 때이다.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 1세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 석사 출신으로, 이후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커뮤니케이션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아톰릭스랩 대표로 서울 이더리움 밋업 공동 운영자, 한국이더리움 사용자그룹 운영자를 역임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국내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서울 이더리움 밋업과 한국 이더리움 사용자 그룹을 중심으로 이더리움 커뮤니티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2018년 아톰릭스랩 설립 후 개인키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키관리 솔루션과 이에 기반한 Dapp 지갑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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