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현의 코인세상 뒤집어보기]
우크라 지원 위한 암호화폐 약 1억 달러 모여
크립토 펑크 NFT·비탈릭 등 기부 적극 참여
러시아 경제 제재에 암호화폐 활성화 기대감

우크라이나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 /연합뉴스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비슷하겠지만 전쟁이 끝난 후 국제정세에 어떤 변화가 올지 쉽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신냉전시대로의 본격적인 진입을 예측하는 의견도 많지만 이미 글로벌한 스케일로 확립된 국가간의 상호 의존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진영간의 대립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상호의존과 대립이 중첩적으로 공존하는 치열한 생존 게임이 국제 질서 재편의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크립토 산업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부와 공식적인 암호화폐 합법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는 동안 서로 다른 이유로 두 국가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있다. 매우 발 빠르게 크립토 산업을 합법화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전면적인 허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쟁 이전에 보여왔던 태도와 비교하면 상당한 입장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더리움와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암호화폐로 1억 달러 이상의 해외 기부를 받았다. 러시아의 침공 초기에는 NGO를 통한 기부가 중심이었지만 2월말 이후 대부분의 기부는 직접 우크라이나 정부의 어카운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정치적 이슈에 대해 강한 입장 표현을 자제하던 이더리움의 비탈릭 뷰테린이 이번 기부에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더리움 파운더 중의 하나였던 폴카닷의 게빈 우드는 580만 달러를 단독으로 기부했고 크립토 펑크 NFT도 기부에 참여했다. 전체 기부 건수는 12만회가 넘는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암호화폐 기부 내역. /엘립틱(elliptic)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암호화폐 기부 내역. /엘립틱(elliptic)

이러한 암호화폐를 사용한 기부는 그 금액의 크기 자체보다는 국제적인 이슈에 암호화폐가 동원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과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크립토 산업을 적극적으로 합법화하는 가상자산 법안을 승인함으로써 이에 화답했다. 암호화폐가 공식적으로 합법화됨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의 설립과 운영이 합법적으로 가능해지고 은행도 크립토 기업을 위한 계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암호화폐를 불법화한 것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합법화를 통해 많은 불확실성이 제거되었고 우크라이나 법정화폐인 흐리브냐(Hryvnia)와의 트레이딩이 활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러시아의 암호화폐 정책 변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러시아로 하여금 암호화폐의 활용성에 대해 재평가를 하게 만들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이미 시행되고 있었으나 최근 러시아 7개 주요 은행을 국제간 은행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조치까지 발표되었다. 이것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러시아 기업 및 개인의 수출입 대금결제와 투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외환 송금이 막힌다는 것이다.

여기다가 해외 금융기관에 예치 중이던 러시아의 준비금 중 300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이 동결됨으로써 국가 부도 위기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물론 유럽은 필요한 전체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러시아와의 모든 금융 거래를 단절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원유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방치하기도 힘들다. 스위프트 제재 대상에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Sberbank)와 가스프롬방크(Gazprombank)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프트망이 경제제재의 수단이 됨으로써 통합적인 글로벌 결제망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축소하게 만든 셈이다.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기업들. 이달 2일 기준 비자, 마스터카드, 와이즈, 애플, 구글 등이 참여하고 있다. /테크모니터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기업들. 이달 2일 기준 비자, 마스터카드, 와이즈, 애플, 구글 등이 참여하고 있다. /테크모니터

달러 주도의 스위프트망이 이미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성이 높은 상태에서 새로운 국제간 결제 솔루션을 찾고 있는 마당에 이번 조치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스위프트망 뿐만 아니라, 많은 글로벌 소매 지불 서비스들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해 지금까지 대단히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2021년 암호화폐에 대한 기관투자와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 전 러시아 중앙은행이 스베르방크에게 디지털 금융자산을 발행하고 거래를 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발급한 것은 이러한 부정적인 기조와는 상당히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스베르방크는 스베르코인(Sbercoin)을 발행하고 다른 크립토 기업들이 자산을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이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당장에 대규모의 해외 송금에 암호화폐가 이용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거래소가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고, 정부의 규제 강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특성상 거래 기록이 남기 때문에 오히려 추적이 용이한 경우도 많다. 러시아 정도의 국제 금융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거래소에 연결된 법정화폐 유동성이 아직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가 지속된다면 러시아도 해외 지불수단으로 암호화폐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국내 지불 수단은 쉽게 허용하지 않겠지만 해외 결제에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것을 차단할 명분이 크지 않다.

러시아 내국인 입장에서는 암호화폐가 지불 수단의 의미보다는 떨어지는 루블화에 대한 헷지 수단으로의 의미가 더 크고 이는 러시아 국내 거래소의 거래량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글로벌 거래소에 모든 러시아인 암호화폐 계좌를 전부 동결시킬 것을 호소했지만,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크라켄 등 대부분의 글로벌 거래소들은 이러한 요청을 거부했다.

경제제재가 명시하는 명확한 타겟 대상에 대한 제재에는 동참하지만, 특정 국가의 임의적 요청에 따라 모든 러시아인의 계좌를 동결하는 것은 탈중앙화된 암호화폐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있는 개인 역시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암호화폐를 모두 차단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신국제질서와 암호화폐

냉전시대에 미국·소련 진영은 경제적으로 단절된 상태에서 각자의 경제권을 별도로 확보하고 서로 단절된 상태로 경쟁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각 국가간의 상호의존도를 높인 상태이고 특정한 국가나 진영을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러시아와 중국이 붕괴된다고 해서 미국이나 유럽이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나 블록간의 경쟁이 약화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도전은 더 강화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국가가 주도하는 전자화폐인 CBDC를 통해 자체적인 결제 시스템을 글로벌하게 확대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지만, 호환성의 규모면에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달러 중심의 시스템과 비달러 중심의 시스템을 매개하는 또 다른 연결고리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중립적인 암호화폐가 이러한 매개고리로서의 역할을 할 가능성을 검토해봐야 할 이유다. 역설적으로 중국은 비트코인을 불법화하고 채굴장까지 다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보유량과 거래량 면에서 사실상 중국 코인이었던 비트코인을 탈중국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더리움은 글로벌 수준에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초국가적으로 연결하고 있고 새로운 인터넷 경제의 가치 인프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각 국가와 진영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두고 상호의존과 대립을 중첩적으로 전개시키게 될 텐데 여기서 암호화폐 생태계가 이들을 연결하는 중립적인 네트워크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 1세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 석사 출신으로, 이후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커뮤니케이션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아톰릭스랩 대표로 서울 이더리움 밋업 공동 운영자, 한국이더리움 사용자그룹 운영자를 역임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국내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서울 이더리움 밋업과 한국 이더리움 사용자 그룹을 중심으로 이더리움 커뮤니티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2018년 아톰릭스랩 설립 후 개인키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키관리 솔루션과 이에 기반한 Dapp 지갑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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