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사회심리학

영화 ‘파송송 계란탁’ 포스터
영화 ‘파송송 계란탁’ 포스터

오상훈 감독의 영화 ‘파송송 계란탁’(2005)은 날건달 이대규(임창정 분)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다. 26살 한창 청춘을 구가하는 대규에게 어느날 날벼락이 친다. 서인권이라는 아홉살난 어린이(이인성 분)가 자신이 대규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나타난 것이다. 알고보니 인권은 대규가 철없던 10대시절 사고를 쳐서 낳은 아들이었다. 무정하게도 대규는 미혼모가 된 여인을 버렸던 나쁜 사내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다. 대규는 인권을 경찰서에 미아로 신고하거나 길거리에 버려두고 도망을 가는 등 별짓을 다한다. 하지만 집요한 인권을 당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인권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국토종단 여행을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자신은 대규의 곁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대규가 마다할 리가 없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에 인권은 대규에게 라면을 끓여 먹자고 한다. 편의점에 들른 인권은 라면에 파와 계란을 넣어야한다고 주장하고, 대규는 돈이 없으니 그냥 라면만 끓여 먹자며 실랑이를 한다.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던 대규와 인권은 어느날 다정하게 라면을 끓여 먹는다. 파를 송송 썰어넣고, 계란을 탁 깨어 넣어서 말이다. 인권이는 제가 만든 ‘파송송 계란탁’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대구도 아들이 만든 멜로디를 따라 한다.

사실 인권이는 불치병에 걸렸다. 인권은 생의 마지막을 친부와 함께 하고 싶어서 이모의 도움을 받아 무작정 대규를 찾아왔던 것이다. 친부에게 버려지고 생모도 세상을 떠난 후 고아원에서 자란 인권은 대규와 라면을 끓여 먹는 등 알콩달콩 인간적인 정에 굶주려 있었던 모양이다.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표지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표지

작가 김훈의 산문집 중에 ‘라면을 끓이며’(2015)가 있다. 이 책에서는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의 글이 압권이다. 얼핏 보기에 이 글은 라면 조리법에 대한 생각을 소재로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작가 김훈이 바라본 ‘해방 후 한국 서민 음식사 고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 김밥, 짜장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칼국수, 육개장, 짬뽕, 우동도 먹었다. 부대찌개나 닭볶음탕, 쌈밥은 두사람 이상이라야만 먹을 수 있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여 있다.” (11쪽)

김훈은 라면과 짜장면을 장복하면 왜 인이 박이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자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17쪽)

오늘 나는 재미삼아 이 글 속에 3쪽에 걸쳐 소개된 김훈 선생의 라면 조리법을 한의학의 약 처방이론이라고 할 ‘방제학’이라는 이론적 틀을 가지고 풀어 보려고 한다. 라면을 사물탕이나 보중익기탕처럼, ‘라면탕(拉麵湯)’이라는 하나의 한약 처방이라고 치고 그 처방의 의미와 조리법을 풀어 보려는 것이다.

뜬금없이 무슨 어려운 방제학 타령이냐고? 아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보면 방제학은 생각보다 쉽다. 복잡한 이론과 규칙을 따질 필요는 없다. 그냥 옛날 임금과 신하간의 상호관계에 빗대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른 바 군신좌사(君臣佐使)의 원리라고 한다. 일단 간단하게 살펴보자.

먼저 군약(君藥)이 있다. 말 그대로 임금의 위상을 가진 약재다. 환자에게 가장 급하고 위중한 증세, 즉 주증(主證)을 치료하는 약이다. 일국의 군주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질병을 치료할 때 주된 공격방향이 어떤지를 가늠하는 약이다. 그러므로 군약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총사령관의 역할을 맡아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에 나선 군주라고 보면 된다. 삼국지로 보면 조조나 제갈량에 해당한다.

다음이 신약(臣藥)이다. 신하에 해당하는 약이란 소리다. 신하 중에서 고급관료인 대신으로서 선봉장을 겸하는 경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신약은 임금약을 도와 주증의 치료를 더욱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신약은 또한 주증보다는 덜 위중한 증세인 겸증(兼證)을 치료하기도 한다. 삼국지의 조자룡이나 관우 혹은 장비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좌약(佐藥)이다. 보좌하는 약이란 뜻이다. 일반 장수나 하급 관료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좌약은 첫째, 군약과 신약을 도와 겸증을 치료하는 것을 돕는다. 둘째, 군신약에 독성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

앞의 것을 전문용어로 좌조약(佐助藥)이라 하고, 후자를 좌제약(佐制藥)이라고 한다. 군주나 장수를 잘 보좌하면서 지시를 곧이 곧대로 따르는 역할을 하는 부하가 좌조약에 해당한다. 직언이나 쓴소리로 견제하면서 주군이나 장수를 보필하는 이는 좌제약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좌제약은 조선시대 사관(史官)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약(使藥)이다. 사약은 일반병사나 후방 지원부대 혹은 통신부대 관제탑의 역할을 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약은 처방에 쓰인 약재들이 정확하게 치료할 지점[病所]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혹은 약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원나라 시절의 유명한 한의학자 이동원(李東垣)은 그의 저서 ‘비위론(脾胃論)’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군약이 분량이 제일 많다. 신약이 그 다음이다. 사약은 또 그 다음이다. 신약의 양이 군약의 양보다 많아서는 안된다. 군신 간에는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고 서로 간에 절도가 있어야 질병을 퇴치할 수가 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라면이라는 처방의 원리를 한번 풀어보자. ‘라면탕’에서 군약은 단연코 면이다. 아무리 분말스프가 중요하다고 해도 꼬들꼬들한 라면 특유의 면발이 없으면 그것은 라면이 아니다. 라면 스프에다가 소면의 면이나, 손칼국수 면을 넣어서 끓인다고 해서 그것이 라면이라고 할 수는 없다. 면의 재료는 물론이고 면발의 굵기나 쫄깃함에 따라서 같은 회사 라면이라도 맛은 천양지차가 아닌가.

그럼 분말스프는 어디에 해당할까? 신약이다. 신하는 임금을 돕는 게 도리다. 신약은 군약인 라면 면발을 도와서 라면 특유의 개성 있는 풍미(風味)를 내게 한다. 김훈은 ‘면과 국물의 조화’를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군약으로서의 면과 신약으로서의 분말스프(를 넣어 끓인 국물)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국물과 면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라면 국물은 반 이상은 남기게 돼 있다. 그러나 그 국물이 면에 스며들어 맛을 결정한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29쪽)

그렇다면 좌약에 해당하는 라면의 식재료는 무엇인가?

좌약은 마땅히 대파나 양파 일 것이다. 라면의 분말스프는 한약의 약성(藥性)과 기미(氣味)로 보면 맵고 뜨겁다. 분말스프의 이러한 신열(辛烈)한 성미는 마땅히 달콤한 맛(甘味)과 차가운 성질(凉性)을 가진 채소로 가라앉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일단 양파의 맛은 단맛이라 스프의 매운 맛을 중화시켜 준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30쪽)

그런데 김훈 선생은 대파의 위아래의 기운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대파는 검지 손가락만한 것 10개 정도를 하얀 밑동만을 잘라서 세로로 길게 쪼개놓았다가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는다. 처음부터 대파를 넣고 끓이면 파가 곯고 풀어져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 파를 넣은 다음에는 긴 나무젓가락으로 라면을 한 번 휘젓고 빨리 뚜껑을 덮어서 1분~1분 30초쯤 더 끓인다.” (30쪽)

무슨 소린고 하니, 대파는 밑둥과 줄기 부분이 성미가 다르다!

한의학에서는 대파의 밑둥을 총백(蔥白)이라고 하고, 줄기 부분을 총엽(蔥葉)이라고 하여 달리 쓴다.

총백, 즉 밑둥의 하얀 뿌리 부분은 온열(溫熱), 즉 따뜻한 기운이 있으므로 스프의 신열한 기운을 오히려 조장하므로 라면에는 적절하지 않다. 라면에는 마땅히 약간 서늘한 기운을 가진 대파의 윗 쪽 초록색 부분, 즉 총엽을 취하여 국물에 넣어야 한열(寒熱)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제 사약(使藥)이 남았다. 사약은 약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라면탕을 끓이는 식재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는 역시 달걀이 으뜸이다. ‘파송송 계란탁!’이 근거 없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 (30쪽)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어찌 이것만 넣어 먹겠는가? 그냥 라면에 치즈, 김치, 떡 등 재료에 따라 치즈라면, 김치라면, 떡라면 등으로 달라진다.

대학시절 학교 후문 앞에서 라면을 즐겨 사먹었는데 구멍가게 할머니가 끓여 주던 라면에 들어가는 것은 파의 파란 부분뿐이었다. 물론 돈을 더 내면 달걀을 하나 깨어서 넣어주었다.

대학생 내 아들딸들은 라면회사에서 제공하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넣지 않은 라면을 좋아한다. 라면에 밥을 말아 먹는 맛도 쏠쏠하다. 이 경우 밥은 달걀과 마찬가지로 라면의 온갖 재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 사약(使藥)이지만, 편중되지 않은 중용(中庸)의 성미가 라면의 맵고 열성의 편벽된 기운을 잡아준다는 측면에서는 좌약(佐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배를 더욱 부르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라면은 반드시 밥에 말아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서다. 달걀과 쌀밥과 떡은 사약이면서, 좌제약(佐制藥)이다. 김치라면의 김치는 분말스프의 매운 맛을 돋우기 때문에 좌약 중에서도 좌조약(佐助藥)이라 하겠다.

한편 라면을 끓일 때는 물 조절이 핵심 관건이다.

“물은 550ml(3컵) 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740ml(4컵) 정도를 끓인다. 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안하게 끓는다. 수영장이 넓어야 헤엄치기 편안 것과 같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화산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어, 또 삽시간에 익는다. 익으면서 망가지지 않는다. (29쪽)

40년대 생 60년대 학번의 김훈 선생은, 60년대 생 80년대 학번의 나와 비슷한 생각이다. 그러나 90년대 생인 내 아들딸은 기어코 라면 봉지에 쓰여 있는 레시피를 고집한다. ‘그게 제일 맛있다.’는 그들의 의견과 ‘그럼 너무 짠데다가 밥은 어떻게 말아 먹냐?’는 내 의견이 대립되면 각자 따로 끓일 때도 있다. 라면 하나 끓이는 데도 이런데 하물며 다른 때는 어떠하랴. 품 안에 있을 때도 내 자식이 아닌 경우가 많다.

라면 끓일 때의 불 조절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면 포장지에는 끓는 물에 면과 분말스프를 넣고 나서 4분 30초 정도 더 끓이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센 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로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유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으로 크게 해서 끓이면 면발이 붇지 않고 탱탱한 탄력을 유지한다. 면이 불으면, 국물이 투박하고 걸쭉해져서 면뿐 아니라 국물까지 망친다. 그러나 실내에서 휘발유 버너를 쓰는 일은 위험해서, 나를 따라하면 안 된다(어린아이 조심!)” (29쪽)

조상들은 한약을 달일 때 불의 종류를 대개 센 불과 약한 불로 나누었다. 불꽃이 강한 불을 무화(武火)라고 하고 약한 불을 문화(文火)라고 한다. 휘발성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무화로 급히 끓인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은은한 불로 오래 재료가 국물 속에 우러날 수 있도록 오래오래 끓여야 한다.

라면의 경우 오래 달여낼 재료가 아니므로 김훈 선생처럼 무화(武火)로 급히 끓여내는 게 맞을 것이다. 군 복무 중에 을지포커스 훈련을 하면 밤을 새는 경우가 많은데, 10시가량 되어 급식을 담당하는 지원부대 주임상사가 끓여 주는 라면 맛이 일품이었다.

십구공탄처럼 생긴 초대형 가스레인지에 초대형 다라 모양의 냄비 아닌 냄비에다가 라면을 열 몇 개 넣고(각 라면은 냄비 바닥면의 가스레인지 불꽃 하나하나와 매칭이 된다.) 출출한 시간도 시간인데다가 센 불로 급히 끓여 내었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십년 경력의 주임상사가 물 조절까지 얼마나 완벽했겠는가.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먹는다.” (31쪽)

김훈 선생은 라면을 먹는 그릇은 얘기했는데 끓이는 그릇은 말을 않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한약을 달일 때는 은으로 만든 것을 제일로 치고 그 다음에 흙으로 빚은 것이 좋다고 했다. 다만 철로 만든 약탕기는 기피하였다.

건강 상 노오란 알루미늄 냄비는 라면 끓일 때 주요 기피 대상이지만, 냄비 라면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알루미늄 냄비를 고집하는 사람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고교시절 구내식당에서 냄비에 담아 팔던 냄비 라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서 위에 찍힌 문양’이라는 김훈의 표현처럼 라면은 그냥 단순한 추억의 음식만은 아니다. 라면은 우리의 역사적 체험과 문화적 추억과 함께 우리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라면은 가난한 1960~1970년대 개발도상에 있던 우리나라 서민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던 훌륭한 먹거리였고, 그 이후에는 훌륭한 간식으로 대접받아 왔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지구촌의 다양한 음식이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라면의 위세가 옛날같지는 않다. 하지만 쫄깃쫄깃한 면발과 MSG 가득한 라면 국물맛은 OECD 몇 번째 가는 선진국으로 부상한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음식 중의 하나다.  

영화 ‘소명: 모겐족의 월드컵’ 포스터
영화 ‘소명: 모겐족의 월드컵’ 포스터

‘소명: 모겐족의 월드컵’(2010)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왕년에 국가대표 묘기 축구선수였던 강명관 선교사가 태국의 한 외딴섬에서 가난한 현지인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것을 소재로 한 영화다. 축구화는 말할 것도 없이 변변한 유니폼 한 벌도 없는 그곳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강 선교사의 활동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 라면과 관련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강 선교사가 식사시간에 현지 어린이들에게 해안에서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맛있는 해물찌개를 해준다. 또 그의 아내가 가지고온 한국 라면을 같이 끓인다. 라면을 몇 번 맛본 적이 있는 태국 어린이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없이 생선찌개가 아니라 라면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이 또한 MSG의 힘이었는지, 또 다른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저절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사족 1: 김훈 선생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글의 맺는말도 자못 비장(?)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승 없이 혼자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웠다. 레시피를 알고 따라 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열어가야 할, 전인미답의 경지가 보이기는 하지만 라면 조리법 개발은 이제 그만하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눈을 팔다가 라면이 끓어 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31쪽)

사족 2: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출판사 측에서는 라면과 양은냄비를 제공했던 모양이다. 도서정가제 위반에 걸려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출판사 측의 ‘추억팔이’가 좀 그렇다. 김훈 선생의 팬들이 선생의 문장을 보고 사지 양은냄비를 보고 사겠는가. 출판사 측의 팬들을 모독하는 형편없는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본다.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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