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10) 짓고 나면 손 뗀다···전문 운영사 없는 실버타운

복지·주거 기능 결합한 복합시설 개발·공급에만 집중된 정부 방안 전문 운영사 육성·인증제 마련해야

2025-04-27     김정수 기자
지난 24일 전북에 있는 한 실버타운에서 입주민이 걷고 있다. /김현우 기자

정부가 실버타운 공급 확대에 나섰지만 정작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는 빠져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은 뒤 손을 떼는 구조 속에서 운영 품질을 뒷받침할 전문 운영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실버타운은 노인 복지와 주거 기능이 결합한 복합 시설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주거시설 중심의 개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인복지법상 위탁 운영은 가능하지만 수탁자의 요건 검증은 사실상 형식적이다. 복지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거나 보장하는 체계는 부재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실버스테이 등 중산층 대상 민간 임대형 실버타운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활성화 방안 어디에도 ‘운영 주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현행 노인복지법상 노인복지주택 운영 수탁자 요건은 '운영 경험이 있는 법인' 또는 '전담 인력 및 조직을 갖춘 주체'로 규정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런 조건을 충족한 운영사는 드물다. 형식적 기준만 맞춘 부동산·건설업계 출신 운영사가 맡는 경우가 많아 복지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이에 따라 위탁 운영자의 자격 요건 완화 논의와 함께 전문 인력 양성과 경험 공유 체계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동현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장(전 더클래스500 사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시니어 주거 사업에서 전문 운영사를 육성하고 인증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시니어타운은 비슷한 유형으로 계속 생길 텐데 자격을 갖춘 전문 운영사가 없으면 시장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과거 호텔업계도 초창기에는 체계가 없었지만 호텔협회가 생기고 등급 심사 체계가 갖춰지면서 산업이 정착했다. 시니어타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소유주와 운영 주체가 함께 있어야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건물을 지은 뒤 위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운영을 맡을 주체가 함께 참여해 시설을 설계하고 준비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시니어타운 운영사 육성에 참고할 만한 국내 모델은 부재한 상황이다. 박 전 회장은 "국내 시니어타운들은 전반적으로 영세한 편"이라며 "외형과 운영 측면 모두 추천할 만한 곳은 많지 않다. 다만 하반기 롯데 등이 시장에 진출하면 대기업 중심으로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케어닥 케어홈'도 과거에 전문 운영사 인증 제도를 제안하는 등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므로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운영 품질 기준에 대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휴먼웨어 모두 필요하다"며 "객실 수, 레스토랑 같은 기본 설비 요건뿐만 아니라 직원 수, 교육 체계, 서비스 만족도 관리, 입주자에게 인간적 터치를 제공하는 운영 품질까지 갖춰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시설 공급만 강조한 정부 정책이 운영 공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실버타운은 노인복지법, 주택법, 건축법 등이 얽혀 법령 체계 자체가 혼재돼 있으며 복지부와 국토부 간 역할 정립도 명확하지 않다. LH가 운영을 맡는 고령자복지주택과 달리 민간 실버타운은 설계·시공·운영이 분절된 구조로 진행된다.

박 전 회장은 "정부의 시니어 주거 정책은 혼란 상태"라며 "관련 법령들이 뒤섞여 정부 관계자들도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현장과 민간, 학계, 관료 조직이 모두 따로 움직이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본지가 보도한 '[실버타운 2.0] (8) 30년 살 집에 뼈대가 없다···운영 빠진 실버타운 정책'에 따르면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장도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노인주거시설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이 핵심"이라며 "입주자들은 몇 년 살고 이사할 생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아갈 공간을 기대한다. 시간이 흐르며 건강 상태가 달라지는 어르신들을 위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운영 역량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시설 설계 초기부터 운영 주체가 참여해야 한다"며 "일본에서는 시설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운영 책임자를 채용해 설계에 참여시키고 유사 시설에 1년 전부터 투입해 실무를 익히게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시설장이 도면을 직접 검토해 어르신 생활 동선과 직원 근무를 고려해 설계를 수정한다"며 "한 번 시설이 완공되면 쉽게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초기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급 중심이 아닌 운영 중심으로의 정책 전환이 실버타운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