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24] 군부 쿠데타 속 시민들의 3일
첫째날: 총선 뒤 첫 국회 열리는 날 비상사태 선포 소식에 환전소 식품매장 등 장사진 이튿날: 정치인들 연행되고 공항 폐쇄···코로나 백신 실은 비행기도 착륙 못해 되돌아가 셋째날: 의사 교수 대학생 등 쿠데타 불인정 성명···밤8시 마당·베란다서 저항 노래 불러
지난 2월 1일. 새벽 3시. 행정수도 네피도. 군부대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와 주요기관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네피도는 경제도시 양곤과 제2 도시 만달레이 중간쯤 있습니다. 이곳은 이 나라 권력의 심장부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과 대통령, 각 연방정부 부처와 장관, 상하원의 국회, 사법부가 자리잡고 일하는 도시입니다.
이날은 총선이 끝나고 첫 국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상하원 의원들이 집회를 위해 모두 이 도시로 왔습니다. 여명이 밝아지자 군부가 운영하는 공영방송를 통해 충격적인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다른 모든 방송채널은 방영이 중지된 채. 수지 국가고문과 윈민 대통령, NLD 여당 고위직 등이 구금되었다는 소식입니다.
1년 간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총선의 부정선거를 직접 조사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아침을 맞아 미얀마 국민들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화와 인터넷이 되질 않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네피도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후가 되어서야 전화와 일부 통신이 개통되었습니다. 은행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놀라 은행 앞으로 시민들이 몰려왔습니다. ATM기도 먹통이 되었습니다.
환전소에는 미얀마 화폐 짯 돈다발을 들고 미화 달러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각 쇼핑센터 식품매장에도 많은 주부들과 가족들이 몰려와 식품을 삽니다. 사람마다 그렇게 많은 물품을 사는 건 처음 봅니다. 쌀, 기름, 라면, 계란, 빵, 고기 등의 주요식품들입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며 우울한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이튿날. 2월 2일. 시민들은 잠을 설치고 뉴스를 듣습니다. 페이스북으로 각 도시의 소식을 공유합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모두 페북 메신저를 주로 이용합니다. 우리의 카톡처럼 바이버(Viber)도 있긴 합니다. 현지 신문사 기자가 취재중 병원에 실려가는 소식도 있고, 군부를 지지하는 차량 행렬도 있습니다. 주요 도시에 사는 정치인들이 자택에서 연행하려는 군인들과 언쟁을 벌이는 동영상도 보입니다. 장갑차가 주요도시 주요기관에 배치되어 거리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공항이 폐쇄되어 3개월간 국제선과 국내선이 중단된다는 발표가 나옵니다. 그래서 공항으로 나가봅니다. 입구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군인과 경찰들이 지나는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합니다. 아직 공항안에 승객들이 갇혀 있다고 합니다. 교민 중 일부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합니다. 한꺼번에 주지 않고 한도를 정해 주어서 여러 곳을 다녔다고 합니다. 대량 인출을 막기 위해서라는 은행측 설명입니다.
코로나 백신을 싣고 인도에서 온 비행기가 양곤 국제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군부는 나라의 통치를 국방부 총사령관 민 아웅 훌라잉 장군에게 이양한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연방정부 장관 11명을 교체하고 차관 24명을 해임했습니다. 주로 군부 출신입니다. 이 나라 헌법에는 군부가 국회의 의원 25%를 우선 배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군인, 경찰, 국경수비대 즉 국방부, 내무부, 국경보안대를 군부가 다스립니다.
3일째인 2월 3일. 쇼핑센터는 3시간을 당겨 오후6시까지만 영업을 합니다. 밤 8시부터는 통행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대사관에서는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안내문을 내보냅니다. 양곤에는 약 3500여 명의 교민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양곤 국제공항에서 4일부터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다고 발표합니다. 노선이나 편수는 조정이 되는 듯합니다. 2일 인천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처음으로 취소된 대한항공 특별기도 곧 날짜를 잡는다고 합니다.
대도시 병원의 의사, 간호사, 교수, 교사, 대학생들의 성명이 곳곳에서 발표되고 있습니다. 즉각 구금을 풀고, 현 발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과 대통령은 현재 수도 네피도에 구금되어 군부가 기소한 상태라고 전해집니다. 재판정에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총선 후 첫 회의에 참석한 상하원 의원들은 충격적인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최근 군부는 강경발언을 해왔기 때문에 쿠데타는 예고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군이 수도 네피도에 출동해 현 정부를 장악하리라곤 시민들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총선의 부정선거 의혹 문제만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나라 군부는 한국처럼 재향군인회가 있고 현직과 함께 일사불란한 조직관계를 유지합니다.아웅산 수지 정부는 그간 군부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왔다고 말합니다. 미얀마 군부는 정치와 경제에도 깊숙이 관여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깊은 갈등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추측합니다.
쿠데타 후 72시간. 참 길게 느껴진 시간입니다. 코로나에 정치상황까지 미얀마 국민들이 안쓰럽습니다. 지금은 고요한 밤 8시. 갑자기 시민들이 마당과 베란다로 나와 냄비를 소리내어 두들기며 노래를 부릅니다. 시민들의 약속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에 15분간 두드린답니다. 노래 멜로디는 귀에 익숙한 팝송 'Dust in the wind'. 그런데 가사는 바뀌어 저항과 울분을 담고 있습니다. 암울했던 당시 88년 부르던 노래, 그 노래를 다시 부르고 있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NGO)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