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당신은 개를 좋아하시나요?”

반려견의 심리학

2021-01-25     김진국 문화평론가
미국 시애틀 외곽의 조용한 도시 골목에 나붙은 반려견 분실 공고문./김진국 문화평론가 제공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외곽의 조용한 곳에 잠시 머물고 있다. 원래 이곳은 겨울에 비가 자주 내린다. 오늘 아내와 함께 이슬비 내리는 동네를 가볍게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이정표 기둥 곳곳에 잃어버린 개를 찾는 광고지가 눈에 띈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잃은 주인의 애틋한 마음이 읽힌다. 마음이 짠하다. 

문득 대학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스페인어과에 M교수가 있었다. 그는 당시 TV방송에 나와 유창한 발음으로 스페인어 회화를 강의하던 유명강사였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나와 입담을 자랑하던 원조 엔터테이너 교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 M교수가 자신의 애완견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침 1년 후배가 M교수의 연구실 조교로 있었다. 그는 크게 상심한 지도교수의 하명을 받아 학교 근처 골목을 누비며 잃어버린 개를 찾는 포스트를 붙였다. 사실 지도교수가 자신의 개인적인 일을 조교에게 시키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공사(公私)가 그렇게 분화되지 않은 1980년대의 일이었으니 이해는 간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이 지났는데도 개를 찾기는커녕 잃어버린 개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보도 일절 없었다. 안그래도 상심해 있던 M교수는 장탄식하다못해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고 한다. 여러날 여기저기 벽보를 붙이고 다니느라고 지친 후배는 안스러운 마음 이전에 살짝 심술딱지가 났다.  

“아니, 교수님! 그까짓 강아지가 뭐라고 그렇게 서럽게 우십니까? 새로 한 마리 사시면 되잖아요. 솔직히 저희 집안에서는 꼭 복날이 아니어도 개를 잡아 먹는 풍습이 지금도 있다니까요.”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인지 반려견을 친자식처럼 아끼던 M교수에게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었을 것이다. 그날 후배는 M교수에게 된통 혼쭐이 났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지인 K씨는 정통 관료출신이다. 몇년 전 그가 모 부처 국장시절의 일이다. 장관이 새로 부임을 했는데 내부 관료출신이 아닌 외부인사였다고 한다. 부임하고 며칠이 지나 장관 결재를 받으러 갔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지 장관이 K국장에게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제안을 했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갑자기 장관이 물었다. “K국장! 개 좋아해요?” 업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개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K국장은 당혹했다. 장관의 의도가 반려견을 좋아하느냐는 것인지, 개고기를 먹는 습관이 있느냐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았던 것이다. K국장은 장관이 음주를 즐긴다는 사실에 착안, 후자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네, 개고기 좋아합니다. 장관님!” 

순간 장관의 낯빛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뿔싸! 잘못 짚은 것이다. 고향이 충청도인 K국장이 내게 물었다. “충청도 사람들은 개고기 좋아하느냐는 소리를 두 글자로 뭐라는줄 알아?” 답을 몰라 잠시 머뭇거리는 내게 K국장은 말했다. “개 혀?” 그리고는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난 장관께서 개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개를 하는’ 줄 알았지 뭐야. 하하하!” 다행히 그 장관이 포용력이 있는 양반이라 그후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 것처럼 동물도 최소한의 생존을 넘어 품격있는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예전에는 애완동물(pet animal)이라고 불리더니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바뀐지도 제법 오래 되었다. 특히 개는 수만년 장구한 세월동안 인간과 함께 공생해 온 역사가 말해 주듯이, 인간에게 일생동안 변함없는 사랑과 순종을 보여주는 최고의 반려동물임에 틀림없다. 

요즘에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펫팸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펫팸족은 영어단어 ‘pet’과 ‘family’의 합성어다. 펫팸족은 강아지를 사랑하는 내 새끼라고 부르고, 자신을 강아지의 엄마, 아빠라고 지칭한다. 이렇듯 펫팸족임에 틀림없었을 예의 M교수와 장관에게 개고기 운운하는 후배 조교나 K국장같은 사람은 분명 동료를 잡아먹는 식인종과 동급의 형편없는 부류로 보였을 것이다. 

반려(伴侶)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이다. 그렇다면 개와 사람은 과연 서로 뜻이 통하고 행동을 함께할 수 있는 반려자들일까? 한 연구팀이 아프리카에서 19세에서 55세까지의 사람들을 A,B 두 그룹으로 나누어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A그룹은 자신의 반려견과, B그룹은 낯선 개들과 시간을 보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A,B 두 그룹 모두 개를 쓰다듬거나 나지막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중간중간에 개와 사람의 혈압 및 혈중 호르몬 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두 그룹 모두 개와 사람 공히 혈압이 떨어졌다. 이것은 함께 시간을 보낸 개와 사람 모두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페닐에틸아민(PEA)이라는 호르몬의 혈중 농도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PEA는 ‘행복의 호르몬’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와 사람의 만남이 서로에게 행복한 감정을 선물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신혼기간을 30개월 전후로 잡는 것은, 사랑의 호르몬인 PEA의 혈중 농도가 커플 사이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때가 대개 30개월 전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와 사람이 서로 쓰다듬고 얘기를 나누는 등 교감을 하는 것만으로도 PEA 수치가 올라간다면, 이론적으로 반려견을 키우는 커플들은 신혼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부부가 모두 그 반려동물과 충분히 교감을 하고 있는 경우 그 부부의 금슬이 좋은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개와 사람이 훌륭한 반려관계라는 것은 경험적으로뿐만 아니라 실험적으로도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 선배는 남편이 정년 퇴직하고난 뒤에, 귀찮을 정도로 너무 자신의 꽁무니만 따라 다녀서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젖은 낙엽’처럼 아내한테 딱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배는 주위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반려견 한 마리를 가족으로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무슨 반려견이냐? 난 필요없다!”며 반발하던 남편이 이제는 반려견과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단다. 선배는 말한다. “난 정말 너무 편해. 아 글쎄 우리 애들 클 때도 한번 안아주지도 않던 인간이 24시간 개를 데리고 살면서 좋아 어쩔 줄 모른다니까. 이젠 날 쳐다보지도 않아. 덕분에 난 숨통이 틔였어!”

연구에 의하면, 개는 처음에는 인간이 포획해 온 사냥감의 뼈 사이의 고기를 처리하거나 인간의 잔반(殘飯)을 처리하는 등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라기 보다는 부수적인 동물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위험한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인간에게 알려주는 사전 경보 시스템으로서의 위상을 굳히면서 가축 중에서 최고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개는 사람을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도 않고, 경력을 보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개는 사람을 어떤 조건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친절을 베풀고 헌신한다. 이런 점에서 개는 인류 최고의 친구이자 반려자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심리치료를 할 때 자신의 애견 조피를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조피를 늘 치료 현장에 동반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마음의 가장 밑바닥의 원초적인 순수한 원시적인 본능을 사랑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동물들이 얼마나 정의롭고, 처신을 잘 하며,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으며, 자신을 낳아준 땅에 충성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고, 익숙한 방식을 얼마나 강하게 고집하는지를 보라.” 융이 동물에 대한 이 발언은 반려동물의 최고 모범인 개에게 가장 잘 맞는 말일 것이다. M교수가 결국 개를 찾았는지는 세월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번에 개를 잃은 시애틀의 개 주인은 반려견을 꼭 찾기를 고대한다.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