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박싱] ‘소통은 선택, 홍보는 필수’인 문재인 대통령

사상초유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직접 국민들에게 설명···이해 구해야 청와대, 문 대통령 선한 이미지 보호에만 관심 가질 뿐 소통엔 무심

2020-12-18     노승주 언론인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안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윤 총장의 징계안 재가에 대해  문 대통령은 4문장의 짧은 입장만을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안을 재가했습니다. 윤 총장은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윤 총장은 입장문을 내어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 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부당한 조치”라며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 징계위는 ‘법관 사찰’ 의혹 문건 작성 및 배포,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에 대해 검찰총장의 권한을 남용하고 검찰의 생명이라고 할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행위로 보고 징계를 확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야의 파열음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여야는 법치주의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여권에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징계에 대해 공무원인 검찰총장이 반발을 하는 것을 두고 항명이라며 윤 총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총장이라고 해서 위법사항의 법 적용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게 법치주의라는 것입니다. 검찰총장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성역으로 남겨두고 민주적 통제를 무력화하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부정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야권의 법치주의 해석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나면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하는 특유의 일탈한 집단사고를 통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질됐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법으로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파괴라는 것입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측근 비리를 덮기 위해 윤 총장을 몰아내려 한다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어떨까요? 집권세력의 최고수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민주당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 징계 과정에서 수차례 절차적 문제점들이 드러났다며 이에 대한 집권세력,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상세한 설명과 대 국민 설득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한 진보진영 언론인은 이에 대해 “민주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밀어붙인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윤석열 총장을 몰아세우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과 같은 개혁법안에 대해서는 기존입장을 번복하는 등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윤 총장을 칼같이 군사 작전하듯 새벽 네 시에 징계안을 확정지은 것처럼, 중대재해법 같은 개혁법안도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원안 그대로 엄정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사안은 똑 같이 공정하게 처리돼야 한다. 유독 윤 총장 징계 건에 대해서만 자구 하나하나 신경 쓰며 혹독한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하고, 무리한 추진에 대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권의 뒤가 구리니 총장을 저렇게 무리해서라도 자르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 총장 징계하듯 개혁법안도 똑같이 다루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윤 총장 징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야의 입장이 상반되는 것과 함께 진보진영에서조차 ‘형평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검사도 아니고 검찰총장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징계를 하는 것이라면 객관성과 공정성이 그 자체로 생명입니다. 법에도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를 잠시 중단시키는 징계안은 말 그대로 투명하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이 모든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확인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런 감시감독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요? 문 대통령은 청와대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단 4문장의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대통령의 검찰총장 징계안에 대한 생각은 이 4문장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오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징계 의결 내용에 대한 제청을 받고 재가했습니다. 검사징계법에 따라서 법무부 장관이 징계 제청을 하면 대통령은 재량 없이 징계안을 그대로 재가하고 집행하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총장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 이르게 된 데 대해 임명권자로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며 검찰이 바로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검찰총장 징계를 둘러싼 혼란을 일단락 짓고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수사권 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준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다면서 추미애 장관 본인의 사의 표명과 거취 결단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숙고하여 수용여부를 판단하겠다, 마지막까지 맡은 소임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정만호 수석은 기자들과의 질의문답도 없이 기자실을 총총히 빠져나갔습니다. 현직 검찰총장이 2개월 징계를 받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국가이익의 훼손 가능성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이에 정권의 비리수사가 유야무야되고 국가정책이 잘못 추진된 것에 대한 단죄도 이뤄지기 어렵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국익손실입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것은 덤입니다. 이 징계안 확정 뒤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소통수석이 대통령 입장이라며 읽은 4문장의 입장문이 전부입니다. 국민들이 제대로 납득할 수 있도록, 법률가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이러니 K방역 자화자찬 할 때는 누구보다 먼저 언론에 나타나면서, 정권에게 구린 이슈에 대해서는 모른 척 입을 싹 닫고 있다는 야권의 비난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무책임한 대처는 ‘대통령의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총장 징계안 재가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짧은 입장 발표에 대해 진보진영 언론에서조차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1년 경제정책방향 보고' 확대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을 마친 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니 진보진영 언론에서조차 “이번 사태에 대해 소회를 밝힌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상 첫 검찰총장 징계와 법무부 장관의 사의로 귀결된 이번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더 상세하고 분명하게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이 많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징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것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원칙에 비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솔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 검찰의 중립성 훼손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지적을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윤 총장 징계는 권력자 입장에서 볼 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검찰은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살아있는 권력도 베라’는 문 대통령의 주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말로만 그렇게 지시해놓고 검찰총장을 무장해제 시켜 버린다면 대통령의 그 약속은 허언에 불과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상대방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고 돌아서서 다른 행동을 하는 권력자를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대통령의 ‘초심’과는 다른 결과로 나타난 검찰총장 징계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최소한의 설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징계안이 처리됐으니 문 대통령은 ‘추-윤’의 꼴사나운 이전투구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달랑 4문장의 입장문만 밝히고 그 뒤로 나오는 수많은 논란과 의혹과 억측에 대해 대통령은 가타부타 일체 말이 없습니다.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만이 앵무새처럼 ‘대통령의 의중이 이런 거겠지’ 하며 연일 ‘찌질한’ 입장을 ‘대신’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누가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대변해주느냐’며 경쟁이라도 하듯 충성 발언이 민주당 의원들의 입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온도차를 통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대통령은 말이 없습니까? 상황이 단순한 일개 검사의 징계도 아닙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하던 검찰총장이 잘려나가는 사상초유의 상황입니다. “왜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고, 무엇을 기대했으며, 지금 그 기대는 지켜지는지, 검찰총장 임기제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대통령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는 진보진영의 지적을, 문재인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불통’입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홍보’입니다. ‘소통’은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홍보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청와대) 부대변인일 때도 대변인일 때도 ‘그분’께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홍보 많이 해라’였다. 홍보가 70%이고 정책은 30%라는 말을 할 정도로 홍보의 중요성을 많이 말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재직시절에 대해 한 말을 한 언론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문 대통령은 공공임대주택 장점을 널리 알리겠다며 김현미 장관과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를 대동한 채 경기도 동탄의 44㎡(13평)짜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아파트를 둘러본 것이 최근 들어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그 ‘행사’에 들어간 비용 때문입니다. 김은혜(국민의힘) 의원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날 1시간짜리 대통령 행차를 위해 인테리어 비용 4290만원을 비롯해 총 4억 5000만원을 썼다고 합니다. 윤희숙(국민의힘) 의원은 “10년 치 임대료를 쏟아 부은 임대주택 치장은 홍보가 아니라 조작”이라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하자불만도 터져 나오던 그 아파트에 4억원 넘는 돈을 써가며 일방적인 부동산 정책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 대통령 소통 방식입니다. 임대아파트보다 덜 중요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검찰총장의 징계안에 대해서는 국민소통수석을 연단에 세워 달랑 4문장으로 설명한 게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꼼꼼한 법률가답게 문 대통령은 자신이 빠져나갈 ‘탈출구’를 마련해놨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문 대통령은 16일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처분을 재가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징계 제청을 하면 대통령은 재량 없이 징계안을 그대로 재가하고 집행하게 된다”고 정만호 수석이 발표했습니다. 야권에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징계 결정권이 없고 책임도 없다는 취지였다. 같은 논리라면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도 대통령은 총리의 제청을 따르기만 할 뿐 인사 결정권도 재량권도 없다는 뜻이 된다. 말이 되는가. 인사든 징계든 제청 이전에 사전 협의 절차를 거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검찰총장 징계를 결정한 사람이 문 대통령이고 법무장관은 악역을 맡아 집행했을 뿐인데, 대통령이 뒤로 숨어 본인의 책임을 피하려고만 한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검찰총장 징계에 대한 그 짧디 짧은 입장문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면피 관련’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이 내려진 1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이 1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왼쪽). 이날 오전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했던 다짐입니다. 3년 반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한국기자협회의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로 집계됩니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 간담회를 모두 포함한 이 집계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의 소통 지수는 ‘낙제점’입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임기가 단축되었음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은 사실상 역대 대통령 가운데 꼴찌나 마찬가지입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던 ‘주요사안’에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확정은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도 있을까요? 거의 2년여 동안 윤 총장 한 명 두드려 잡기 위해 이런 난리상황을 연출했었는데, 이것은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브리핑할 주요사안이 왜 안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언론(여론)과의 소통보다는 SNS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구설수를 줄이고 실익도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청와대 홍보라인은 오로지 문 대통령의 선한 이미지 보호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 이니’의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대통령을 혼자 카메라 앞에 세우지 않습니다. ‘소통은 선택이요 홍보가 필수’인 것이 문 대통령의 인식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명제는 대통령 자신이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그 도덕적 힘의 배경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고 정의롭다’는 주술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현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메시지를 던지며 은근히 지지층의 백업을 기대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일에 대해서는 ‘홍보가 70%’라며 아낌없이 돈을 쓰며 자랑을 합니다. 이런 대통령의 선택적 정의는 결국 국민통합을 멍들게 합니다. 윤석열 총장에게 반드시 징계를 내려야만 했던 일을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소통입니다. 국민소통수석 내세워 4문장짜리 입장문으로 2년여 동안의 난리법석을 퉁 치려고 한다면 이는 그동안 ‘추-윤’의 볼썽사나운 싸움을 목불인견으로 참아온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종결시킨 링컨 대통령을 소환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재선에 성공했던 링컨 대통령은 ‘완전하고 영구적인’ 노예제 폐지를 담은 제13차 헌법수정안의 하원 통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13차 헌법수정안은 상원을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하원 표결에서는 2/3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습니다. 헌법수정안이 하원을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전쟁 종전은 사실상 노예제 영구 폐지 시도의 좌절을 의미하기에 링컨은 하원 통과에 그야말로 ‘올인’을 했습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여전히 헌법수정안 반대 입장을 고수했고, 링컨은 2/3 찬성을 얻기 위해 민주당 의원 최소한 20명의 마음을 반드시 돌려놓아야만 했습니다.

링컨은 반대파 20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회유수단은 모두 동원했습니다. “제2기 링컨 정부에서 적당한 자리를 보장해 줄 테니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회유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링컨은 온갖 협잡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회유작전은 성공했고 링컨은 헌법수정안 통과라는 최대의 현안을 관철시켰습니다. 당시 공화당 의원들은 링컨을 신뢰하는 정치인으로서 존경했습니다. 시골출신 대통령 링컨이 워싱턴의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솔직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링컨이 민주당 반대파 의원들을 회유할 때 보여준 협잡은 썩어빠진 구태정치였고 어떻게 ‘착한 남자’ 링컨이 저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었을까 믿지 않는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한 공화당 의원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조치가 미국에서 가장 순수한 남자가 사주하고 지원한 부패에 힘입어 통과됐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착한 남자’ 링컨은 ‘가장 나쁜’ 방법으로 자신의 최대 정치현안을 본인의 의중대로 이뤄냈습니다. 링컨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선’에 집착했다면 지금도 미국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순수한 남자라는 이미지는 완전히 떼버리고 국민통합을 위해 협잡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선한 이미지보다 국민통합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링컨처럼 협잡정치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로지 ‘국민’을 위해 그 거추장스러운 ‘착한 이니’의 이미지를 떼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요?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나타나 헌정사상 초유의 대사건에 대해 직접 브리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망했던 광화문 대토론회의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한 대통령의 결단과 용기에 따라 정치의 물길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