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17] 빈민공동체 7인조 청소년밴드와 한국어 선생

지도 선생님 없어 혼자 익힌 악기로 매달 청소년 위한 작은 음악회 열어 학교에 못 가는 상황 음악으로 위로

2020-12-14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수빈 선생님이 공동체 밴드들과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 주변의 요청으로 팝송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는 동영상이다. 

 

우리 마을 빈민공동체 'Mercy Children House'의 7인조 밴드 모습들. 어려움 속에서도 음악으로 희망을 만들어간다. 밴드 이름은 'Marvellous'이다. 기타, 드럼, 키보드, 싱어로 구성되어 있다. 오지의 가난한 소년소녀들이 교육을 위해 이곳으로 온다. 주로 카친 주와 샨 주에서 왔다. 이곳에서 먹고자며 인근 초중고에 다닌다. /사진=정선교

꽃의 도시 삔우린. 제가 사는 마을에는 빈민가정의 자녀들이 모여사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자비 어린이 집'입니다. 국경지대 카친 주와 샨 주에서 온 청소년들입니다. 집안이 가난하다 보니 부모들이 이곳으로 보냅니다. 엄마만 있거나 고아인 아이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먹고자고 인근 초중고에 다닙니다. 그래서 부족들의 교육 공동체인 셈입니다. 대도시에는 이런 공동체가 부족마다 있습니다. 양곤에도 보무바투 거리 주변으로 30명, 50명, 200여 명까지 각 부족들의 공동체가 여럿 있습니다. 고향까지 가려면 이틀이 걸려 몇년째 가족들을 서로 보지 못하고 삽니다. 시골의 부모들이 어려우니 이곳엔 쌀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마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얀마는 아직도 서양 악보보다 동양 악보를 쓴다. 숫자와 점, 곡선으로 표기된 고유의 악보다. 아래는 기타를 위한 악보. 초중고 교과과정에 예체능이 없어 혼자 공부해야 한다. 

이 공동체에는 남다른 게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7인조 보컬밴드가 있고, 모든 어린이들이 악기연주를 취미로 배웁니다. 기타, 드럼, 키보드, 노래 등. 학교에서 돌아오면 밭도 갈고 음식도 만듭니다. 주말에는 악기연습을 하거나 시냇가에서 수영을 합니다. 또 하나는 주말에 한국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중고생들 모두 열심히 공부합니다. 가끔 한국노래를 배우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이름은 수빈. 한국이름입니다. 만달레이 외대 한국어과를 나왔습니다. 

 

보컬밴드의 정기공연 모습. 한 달에 한 번 삔우린 쉐에인난 호텔 안마당에서 열린다. 마을 청소년을 위한 작은 음악회다. 전문적으로 지도할 선생님이 없어 각자 스스로 연습하며 하모니를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 이전의 사진이다. 

이 공동체 청소년 보컬밴드가 매달 공연을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쉬고 있지만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열립니다. 별이 쏟아지는 밤, 소년소녀들의 이중창, 합창이 울려퍼집니다. 청소년을 위한 작은 음악회입니다. 한국계 호텔 쉐에인난(Shwe Eain Nan) 호텔 안마당에서 열립니다. 밴드 연주자들과 싱어들은 이날을 위해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아직 전문적인 음악지도 선생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바이올린도 배우고싶지만 악기도 없고, 선생님도 없습니다. 이 나라 초중고 교과과정엔 음악, 미술 등 예체능 분야가 없습니다. 혼자서 공부해야 합니다. 게다가 악보도 서양악보가 아니라 동양악보를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숫자와 점, 곡선으로 표기된 악보입니다. 최근에 이 나라 정부에서 예체능 분야 교재를 만든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한국어 선생님에게 한글을 열심히 배운다. 가끔 한국노래도 배운다.
마을을 방문한 한 한국분이 만들어준 축사. 오리, 돼지를 학생들이 직접 키운다. 대도시와 떨어져 후원을 기대하기 어려워 자립하는 게 중요하다. 

이 공동체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빈 선생님. 스물 세 살의 미혼입니다. 대학시절 5인조 대학밴드에서 싱어로 활동했습니다. 팝송부터 최근 한국노래까지 잘 알고 있지요. 처음엔 호텔 안마당에서 청소년 보컬과 대학 보컬이 함께 공연했습니다. 그래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수빈 선생님은 졸업 후 아예 이곳 호텔 직원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빈민공동체에 한국어 가르치는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음악은 세계의 공통언어입니다. 양곤 인근 모비에는 음악전문학교가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후원으로 설립되었지요. 여기서 청소년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목관악기 등을 배웁니다. 제가 여기 정기연주회에 한번 간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레파토리 헨델의 합창을 들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오랫만에 듣는 음악연주회 자리여서인지. 이곳 시골은 음악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재능 있는 학생들도 눈에 띕니다. 여기 빈민공동체에 음악선생님을 모시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수빈 선생님의 모습들. 공동체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공연하던 호텔에 취업했다. 대학시절 5인조 밴드에 싱어로 활동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날 공연을 준비 중이지만 코로나로 공연을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오늘은 청소년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할 수빈 선생님과 싱어들이 모여 조촐하게 노래를 듣습니다. 제가 오래된 팝송 '호텔 캘리포니아'를 신청합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이 노래는 아직도 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누구나 체크아웃 할 수 있지만 누구도 나가지 못하는 방에 갇혀 있다'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  

 

고향의 부모들이 가난하기에 먹을 쌀이 떨어질 때가 많다. 엄마만 두거나 고아도 있다. 오랫만에 쌀과 선물이 한국으로부터 왔다. 여기선 쌀이 중요하다. 반찬은 남학생들이 인근 밭을 일구어 해결한다. 여학생들이 나무로 불을 지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공동체 아이들은 오랫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공연도 한국어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음악이 있어 위로가 됩니다. 혼자 키보드나 기타를 치곤 합니다. 슬픈 곡들입니다. 고향에 홀로 계신 엄마가 더 그리운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여자아이들은 나무로 불을 지펴 큰 솥에 저녁 밥과 멀건 국을 끓입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길고긴 시간입니다. 빈민공동체에 저녁이 찾아들고, 음악에 대해 생각합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두 소녀가 토요일 공연 때 부른 이중창 노래가사가 생각납니다. 한국의 '라이트 업'이 부른 곡입니다. 
'마음이 상해 힘든가요. 이해받지 못해 아픈가요. 힘겨운 일로 지쳐 있나요. 혼자 남겨진 것 같은가요. 잠시 눈을 감아요. 여전히 함께 하시는 그분께 모두 말해보세요.'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NGO)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