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14] 여류작가 쥬(Juu)와 한국시인 전성호

쥬, 의사이지만 미얀마 '국민 작가' 반열에 전성호, 이주 20년째···시인이자 한인회장

2020-11-23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의사이자 소설가로 잘 알려진 쥬. 본명은 띤띤윈이다. 많은 소설이 영화화되어 많은 여성팬이 있다./사진=정선교

오늘은 양곤에 사는 한 작가와 한 시인을 만나러 갑니다. 두 사람 모두 이 나라에선 유명합니다. 미얀마 여류작가 쥬는 의사이자 소설가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여러 편 영화화 되어 많은 여성 팬들이 있습니다. 제 주변 여성들에게 묻다보니 한두 편 정도는 다 읽었다고 해 좀 놀랐습니다. 국민작가쯤 되는 셈입니다. 한국에도 번역된 소설 '에야워디강, 그 남자'가 있습니다. 본명은 띤띤윈(Tin Tin Win)입니다. 사랑을 주제로 많은 스토리를 만들었고, 영화로도 나왔지만 정작 본인은 평생 솔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얀마 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전성호 시인. 미얀마에 관한 많은 시를 썼지만 정작 교민들은 잘 모른다. 이번에 네번째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미얀마에 20년째 둥지를 틀고 사는 전성호 시인. 그는 시인이라는 호칭보다는 미얀마 한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어 교민들 모두 친숙한 인물입니다. 교민사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미얀마에 거주하며 쓴 시들을 보면 미얀마 곳곳을 다녔고, 이 나라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슬픔을 간직하며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미얀마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이 나라 시인과 작가들을 꾸준히 만나왔습니다. 

미얀마 고등학교 교과과정에는 시 과목이 있습니다. 은유로 가득 찬 시를 공부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 한편을 읽어봅니다. 여류시인 매코이의 시 '선물'입니다. 

사지 않고/ 네가 직접 따온 물기어린 나뭇잎/ 숯불에도 햇빛에도 말리기가 아쉬워/ 침대 아래 놓는다/ 잘 피우도록

줄기를 앞니로 물어/ 짧아졌지만 드물게 달디단 담뱃잎

비단 도움 없이/ 하얀 솜실 한 줄 감아서 싸고/ 어릴 적부터 흠모한 내 사람/ 금같은 마을 잉와로 갈 때/ 드리고싶네

이 시는 직접 나무에서 딴 담뱃잎을 몸의 온기로 말리고, 칼을 안 쓰고 앞니로 깨끗하게 물어 자르고, 비단 대신 솜실로 정성껏 싸매어 친구에게 주려는 모습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젊은 시절 자매들과 함께. 왼쪽 두번째가 쥬. 셋째 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사준 소설을 읽고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 나라의 문화예술은 오랜 군부통치를 거치면서 침체의 길을 걸었고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외국의 문화가 일상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작가 쥬 역시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한국의 예술 분야가 세계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쥬는 1983년 만달레이 의과대학을 나왔습니다. 졸업하기 전 대학 내 문학지에 단편을 발표하며 데뷔를 했고, 1987년 장편소설 '기억'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소설은 대학생활을 하며 보게 된 친구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사준 소설을 읽고 작가가 되고픈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후 '바다를 닮은 여인' '강의 책략' '한 여자의 고백' 등 여러 장편을 썼습니다. 영화로도 개봉됩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잔잔한 강이든 거친 강이든, 얕은 강이든 깊은 강이든 강은 바다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바다하고 만날 때 거친 강도 잔잔한 강도 모두 순해지고 바다 안에서 잠잠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준 바다는 늘 물결치기 일쑤다." <바다와 닮은 여성> 중에서

 

작가 쥬에겐 많은 여성팬들이 있다. 강연도 하고 팬사인회도 한다. 의사로서 인도주의 차원의 사업도 해나가고 있다.

 

그녀는 의사로서 진료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했습니다. 집중이 잘 안되어 양곤으로 이주해서는 글만 썼습니다. 2006년에 구성된 'Road to Nirvana'에 참여하고 있고, 에이즈 양성아동 고아원을 공동으로 창립해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습니다. 귀엽지만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쥬는 한국의 남북관계, DMZ에도 관심이 많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고 합니다. 미얀마 문학은 예전엔 강, 산, 숲, 꽃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작가 쥬는 앞으로는 정치, 국제, 환경,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많아질 거라고  말합니다.

 

쥬의 소설들과 전 시인의 시집들. 전성호 시인은 그간 3권의 시집을 창비, 실천문학에서 출간했다. 올해 12월 한인회장을 퇴임하면 그간 미뤄둔 작업들을 하겠다고 한다.
양곤에 있는 코리아센터 앞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사회를 위해 건립한 한인회 건물이다.

 

전성호 시인은 양곤 노스 오클라파에 삽니다. 개인사업으로 한국산 의류를 유통합니다. 대형매장이 이곳에 있습니다. 대학졸업 후 대우그룹서 의류수출도 담당했고, 나중 독립해 의류무역도 크게 한 경험이 있습니다. 좀 늦게 문단에 나온 뒤에는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했습니다. 2001년 한국을 떠나 양곤으로 오게 되면서 그의 시에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 환경, 풍광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저녁 풍경이 말을 건네신다'(실천문학사)에 수록된 시 '눈 내리는 미얀마'입니다.

두 시간 반 시차를 타고
YTN 뉴스에 눈이 내린다

어쩔 수 없는 명령처럼 얼어붙은 강
살아 있는 것들을 찾는
발톱이 아프다

눈과 상관없는 미얀마 사람처럼
나는 찬 눈을 마시고도
한낮이 무료하다

흘라잉, 네 앞에 서면
주머니는 쓸쓸해지는데,
두 시간 반 전의 눈들아
나는 마주 선 위도보다 아득한 곳
빠떼인 너머 우기의 빗줄기 희미한 곳
어떤 발자국에도 속하지 않은 모래 속으로 
더 깊이 남하해야 한다

이 시에서 흘라잉은 양곤 한 지역을 흐르는 강을 말하고, 빠떼인은 바다 가까운 농경도시를  말합니다. 시인은 이제 네 번째 시집을 출간 중에 있습니다. 개인사업과 한인회 일로 바쁜 가운데도 시를 쓰고 다듬습니다. 3년간의 미얀마 한인회장직은 올해 12월말로 마무리됩니다. 재임기간 중 코로나19가 발생해 많은 일을 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우윈틋조 장학회를 설립한 일입니다. 우윈틋조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다 사망한 미얀마 출신 근로자입니다. 따뜻하고 성실했던 그는 장기기증으로 한국인 4명을 살려내고 정부의 장례지원금도 전액 한국 어린이들에게 기부했지요. 이를 기리는 장학회로 한인들의 기금으로 미얀마 어린이들을 돕는 장학회입니다. 많은 교민들이 참여해 두 나라간 아름다운 뜻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미얀마에 대한 사랑도 시에 묻어납니다. 3번째 시집에 수록된 그의 시 '차웅따, 또 하나의 빈방'입니다.

 

양곤 국립박물관에서. 역사적 인물, 작가들의 직접 쓴 필체를 보관하는 전시관이 있다.
한인회는 한국대사관과 협력하여 미얀마의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전성호 시인은 꽃과 숲의 나라에서 20년째 살며 남다른 사랑으로 시를 써왔다.

 

미얀마 서쪽 해변 차웅따, 철썩이는 소리 몇 번이었나 가까운 잡목들을 지우는 흐릿한 안개. 한바다 키 큰 코코넛 잎사귀들이 물빛 가리는 덤불숲 물이 물을 덮어 까닭 없는 출렁임만 넘치는 차웅따 세워도 또 무너지는 파도의 흰 모서리, 벵골만의 허공을 높게 가르는 전투기들의 흰 비행운, 무엇이 허공에 금빛 벽을 세우는지 크리스마스 지난 12월 휴가철도 아닌데 빈방이 없다

차웅따, 배낭을 베고 누운 모래밭 빈방, 문 열어주는 이 없는 폭죽 가득한 해변, 양치식물 같은 흰 몸에 문신을 한 독일 남자애나 코에 금속링을 낀 영국 청년들, 큰 덩치와 자유로운 식욕 견딜 수 없어 구부러진 혀를 펴는 건어물과 똠양꿍의 짠맛, 지나온 인도차이나의 먼지를 털며 이곳도 저곳도 아닌 길이 없는 벵골만 아! 해는 지고 두 눈 속에 금부처들 바다에 긴 다리를 놓는데 어디에도 없는 차웅따, 누구에게도 빈방이 없는 아웅산의 나라, 서글픈 비각의 파도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