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환수된 조선의 해시계 '앙부일구' 일반 공개
지난 6월 미국 경매 매입 후 8월 국내로 들어와 정밀하고 섬세한 주조 기법, 18~19세기초 제작
"모든 시설(施設)에 시각보다 큰 것이 없는데, 밤에는 경루(更漏)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구리로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으니 모양이 가마솥과 같고, 지름에는 둥근 톱니를 설치하였으니 자방(子方)과 오방(午方)이 상대하였다. 구멍이 꺾이는 데 따라서 도니 겨자씨를 점찍은 듯하고, 도수(度數)를 안에 그었으니 주천(周天)의 반이요, 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소소(昭昭)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만들 줄을 알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16년(1434년) 10월 2일 을사 4번째 기사-
조선 최초의 공중(公衆) 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가 지난 8월 미국에서 환수된 이래 11월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仰) 가마솥(釜) 모양에 비치는 해그림자(日晷),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안쪽에 시각선(수직)과 절기선(수평)을 바둑판 모양으로 새기고, 북극을 가리키는 바늘을 꽂아, 이 바늘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에 따라 시간과 날짜를 알 수 있게 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해 8월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 1월 이 유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후 면밀한 조사와 검토, 국내 소장 유물들과 비교분석을 진행했다”며 “코로나19로 여러 차례 경매가 취소 또는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환수된 앙부일구는 18~19세기 초 사이 제작되었으며 지름 24.1㎝, 높이 11.7㎝, 무게 약 4.5㎏의 동합금 유물이다. 주조법이 정밀하고 은입사(銀入絲, 홈을 파서 은실을 박아넣는 것) 기법이 섬세하며,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의 뛰어난 장식요소를 지녀 숙련된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앙부일구는 백성을 굽어 살피는 애민 정신을 담아 만들어진 시계로, 세종대부터 조선 말까지 제작됐다. 특히 지평환(地平環)에 새겨진 한양의 위도 ‘북극고 37도 39분 15초((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는 이 앙부일구가 1713년(숙종 39년) 이후에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앙부일구는 현대 시각 체계와 비교해도 거의 오차가 없으며, 절후(節候,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 표준), 방위, 일몰 시간,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기기다.
이번 환수된 유물 이외에 국내에 유사한 크기와 재질의 앙부일구는 7점이 있으며, 이 중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두 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유사한 앙부일구는 영국에 1점, 일본에 2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