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9] 두 나라 엄마아빠를 둔 엔젤라의 꿈
국제결혼 인정 않는 미얀마 국제결혼 100쌍 넘어 3가지 언어로 소통하는 다문화 가정의 삶과 사랑
오늘은 엔젤라(Angel La)를 만나러 갑니다. 중학교 1학년인 학생입니다. 아빠는 한국 사람이고 엄마는 미얀마 사람입니다. 양곤 외곽 둔테마을에 삽니다. 엔젤라는 11살, 우리 나이로는 12살입니다. 요즘 두 살이 된 동생 젯나와 고양이를 돌보며 지냅니다.
코로나19로 초중고는 7개월째 휴교 상태입니다. 엄마와 함께 한국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도맡아 하고, 엄마가 미싱하는 일을 곁에서 도와줍니다. 가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엄마와 한국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봅니다. 저도 모르는 의학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를 반복해 보는 이유는 엔젤라는 의사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와 함께 골프와 낚시를 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뒤뜰에 간이 골프연습장이 있고, 우기가 끝나 작은 호수가 생겼습니다. 둘 다 아빠의 취미입니다. 아빠는 낚시광에다 한인회 골프대회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엔젤라와 대화를 하다보니 이 소녀가 3개 국어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미얀마어, 한국어, 영어. 아빠가 서울 사람이라 발음도 또박또박 표준말입니다. 제가 미얀마 말을 잘 못하니 3개 언어를 섞어서 우린 얘기를 나눕니다. 거실 한켠에 엔젤라가 초등학교에서 받은 수상 트로피가 있습니다. 학년마다 하나씩. 올A 특별 트로피도 있습니다.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고 이웃사람이 말합니다. 총명한 학생입니다. 그게 느껴집니다.
이 나라는 초중고 교육제도에 석차표기를 쓰지 않는 등 특이한 것들이 많습니다. 한국 유학갈 때 정부장학생 서류는 석차가 있어야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중학과정이 4년제, 고등과정이 2년제입니다. 미술, 음악, 체육 과목이 없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려운 시를 배우는 과목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재는 모두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성적표기는 ABCD 네 등급을 사용합니다. A는 100~80, B는 79~60, C는 59~40, D는 39~0. 그런데 국어와 영어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90점 이상은 주지 않는 관례를 지킵니다.
최근 미얀마 한인회(회장 전성호)에 따르면 미얀마 다문화가정은 100쌍을 넘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대개 양곤에 살며 자녀를 키웁니다. 한국으로 가 사는 경우도 있고, 실태조사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도 있어 약 150커플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미얀마 남편을 둔 여성분들도 있습니다. 이제 이웃나라처럼 미얀마에 다문화가정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가정들이 이 나라에서 겪는 어려움 점은 우선 혼인과 호적에 관한 것입니다. 이 나라엔 외국인과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오랜 관습법이 있습니다.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대통령에도 출마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법원에서 혼인신고를 인정하고 소셜비자를 내주어 살게 하지만, 판결을 받는 데도 애를 먹습니다. 결혼할 때 사원에 기부해야 하는 등.
문제는 본가에서 분가해 독립된 가족관계증명(Household Members List)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미얀마 아내의 본가 부모 앞으로 남편의 이름과 자녀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니 모두 신분이 불확실합니다. 자녀들은 관계증명이 있어야 학교를 다닐 수 있습니다. 독립된 가족증명을 받을 수 있도록 양국 정부나 우리 모두 도와줘야 합니다. 자녀들이 성장해 외국에 나가게 되면 이 증명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미얀마 유학생들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어 이런 일을 보게 됩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주는 장학혜택도 받는데 애를 먹기 때문입니다.
엔젤라 아빠는 최근 아내 이름으로 분가를 하였습니다. 자신과 자녀 둘의 가족관계 증명을 미얀마 법원에 신청하고 판결을 기다립니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엔젤라 아빠는 무역업을 합니다. 농산물, 식품, 옷감 등. 엄마는 집 창고에서 한국원단을 파는 일을 하고 옷 만드는 일을 합니다. 두 사람은 거래처 직장에서 처음 만나 사랑의 싹을 틔웠습니다. 엔젤라 엄마는 23살에 한국인과 결혼해 엔젤라를 낳았습니다. 엔젤라의 끝자 라(La)는 엄마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 사람간의 결혼에는 언어, 음식, 문화, 관습으로 갈등이 있습니다. 엔젤라 아빠는 처음 결혼해 아주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침이면 양곤 쉐다곤 파야를 향해 합장하고 기도하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남편에게 절을 한 후 매일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남편은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언어와 음식은 두 나라 언어가 공용으로 사용됩니다. 상대의 언어와 음식을 서로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다른 커플들은 문화와 관습으로 갈등을 빚습니다.
미얀마 주부들은 늦은 귀가를 아주 싫어합니다. 여기 현지인들은 업무가 보통 오후 4시쯤 끝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밤늦게까지 잡무도 보고 접대도 합니다. 종교가 달라도 힘듭니다. 여긴 철저한 불교국가니까요. 모든 관습이 불교의 가르침에서 나옵니다. 한국인들은 정리정돈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미얀마 주부들은 검소한 반면 쓰지 않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둡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견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소소한 갈등을 겪으며 많은 커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 엔젤라와 헤어질 시간입니다. 동생 젯나와 고양이도 따라나왔습니다. 엔젤라는 한국에 대한 잊지못할 추억이 있습니다. 딱 한번 엄마아빠랑 한국에 가서 바닷가를 간 일입니다. 아빠의 나라가 그립지만 엄마의 나라도 소중하다고 합니다. 두 나라 모두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엔젤라는 의사가 되기 위해선 나중 의대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영어로 물어봅니다. 나중에 한국에서 공부할 거야, 아님 여기 의대를 갈 거야? 엔젤라가 한국어로 대답합니다. 그게 고민이예요. 두 나라에서 다 공부하고 싶어요.
정선교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