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8] 코로나 비상사태 양곤, 한국의 사랑과 우정에 빠지다
하루 2천명대 급증ᆢ 통행카드 발행하고 야간통행금지도 발효 고통받는 일용직 가정에 한국인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10월 9일. 확진자 1460명, 사망 31명, 총 2만 3906명.
10월 10일. 확진자 2158명, 사망 32명, 총 2만 6064명.
이틀에 걸친 미얀마 코로나19 집계수치입니다. 비교적 안전하던 미얀마에 비상상황이 왔습니다.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것은 제1도시 양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인도, 방글라데시 국경지대인 라카인주에 방역이 뚫리면서 두 지역 확진자가 전체의 87%를 차지합니다.
지금 양곤에는 특별조치가 시행됩니다. 양곤 시민은 외곽도시로 나가지 못하고 또 다른 도시 사람들은 양곤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양곤 시내 타운쉽 간 이동도 허가를 받고 다녀야 합니다. 이른바 통행카드(QR PASS)가 있어야 합니다. 병원, 약국, 금융, 우체국, 택배, 생필품샵 등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이 카드를 가지고 출퇴근을 합니다. 긴급한 업종 외 모든 회사는 재택근무를 해야 합니다. 야간통행금지도 발효중입니다. 2인 이상 차를 타고 가려면 거주지 동사무소에 그 목적을 알려야 합니다.
양곤이 락다운 되다보니 긴박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만달레이에 사는 한국인들이 양곤공항에서 출국을 하려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국내선 항공, 고속버스도 다니지 않으므로 허가 받은 승용차로 양곤 톨게이트까지 와서 승용차는 돌려보내고, 양곤 차량으로 갈아타고 진입해야 합니다. 특별기 대한항공, MAI로 들어오는 한국인들은 자가격리를 지정호텔에서 2주간 해야 합니다. 본인의 집이 있으면 1주는 집에서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은 먹고자는 자가격리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대략 하루 50불 정도. 지정호텔로 공항과 가까운 한국계 호텔 프라임호텔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 양곤 시민들은 몇 달째 주로 집에서 힘들게 지냅니다. 상인들이나 공장을 다니는 청년 노동자들은 생업을 하지 못하니 고통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농업국인 미얀마지만 양곤은 경제도시라 일용직이 많습니다. 하루하루 현금수입이 없으면 아무것도 사지 못합니다. 그러다 끝내 가장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인들의 조용한 미담이 알려져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양곤 노스오클라바 보가발라 지역. 38세 가장이 세 자녀를 남겨두고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선교사 한 분이 이 사건을 안타깝게 생각해 한국의 지인들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정광수 선교사입니다. 미얀마 외국계 엔지오 FLCM 총괄이사입니다. 1차로 구미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주식인 쌀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며 '사랑의 쌀' 나누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며 2차 묘아다공, 3차 따익찌에서 지원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한국 후원자들의 모금이 이어져 마을과 마을로 4차와 5차도 곧 이어질 예정입니다.
긴급한 생활고에 처한 300가구를 동네사람들이 선정하고, 한 가구당 8kg짜리 쌀 한 푸대를 나누어줍니다. 주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거리 간격을 유지하며 질서있게 쌀을 받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기뻐하며 한국인들에게 감사해합니다. '사랑의 쌀'을 생각하면 이 나라 노인들은 옛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전쟁 시절, 폐허 속에서 한 끼를 걱정하던 한국에 옛 버마는 쌀을 보내주었습니다. 쌀을 받는 아낙네들과 빈민가정의 소녀들을 보며 한국인들은 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정 선교사가 사는 지역에는 빈민부락이 있습니다. 그는 몇 해 전부터 빈민들의 지붕과 장판을 바꾸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초가나 대나무집 지붕을 함석으로 바꾸고, 자는 곳에 장판을 깔아주는 일입니다. 양곤은 우기에 비가 많이 오므로 이걸 개선하지 않으면 지낼 수 없습니다. 한 가구당 15만원쯤 듭니다. 그간 38가구를 해왔고, 계속 해갈 것입니다. 그는 구미가 고향이고 한국선 정치계에서 오래 일했고, 중국으로 가 비료회사를 경영하기도 했습니다. 인생 후반을 맞아 2011년 선교사로 파송되며 미얀마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지난 9일. 미얀마 전역에 한국노래 '상록수'가 방송되었습니다. 미얀마 여가수 빌리라민애(Billy La Min Aye)가 열창했습니다. 미얀마 아이돌 시즌2에서 1등한 가수입니다. 노래의 한글자막이 눈길을 끕니다. 올해는 한국과 미얀마가 수교 45주년을 맞아, 기념하는 합동공연입니다. 관영방송 MRTV로 양곤시민들이 이 공연을 45분간 보았습니다. 이 나라 7인조 남성아이돌 그룹 '프로젝트 K'가 한국에 가서 K팝을 배우는 뉴스도 봅니다. 두 나라는 힘든 시기에 도움이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 우정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미얀마 여가수가 부르는 한국노래 '상록수'. 노래의 한글자막이 미얀마어와 같이 흐릅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정선교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