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박싱]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꿈’
공정경제 3법 ‘치고’ 노동법 개정 ‘빠지고’···당 혁신하고 민주당 흔들기 ‘김종인=국민의힘 대선주자’ 관철 노림수인 듯···재보궐 선거가 시험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청탁 논란과 북한의 민간인 사살 파문으로 정국이 연일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활약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습니다. 원내 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가 정치의 ‘미시적’ 현안들을 주로 지휘한다면, 김종인 위원장은 보다 ‘거시적’인 의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정경제 3법입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이유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 도약을 위한 ‘지렛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김종인 위원장에 대해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9월 중순 여권이 추진 중이었던 공정경제 3법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추미애 장관 파문 등으로 여야가 연일 대치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공정경제 3법 찬성은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정국을 읽는 감각이 둔해진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며 설왕설래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공정경제 3법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말 그대로 경제에 공정의 룰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방아쇠는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당겼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제·민생에 대한 입법에 속도를 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경제 공정’을 임기 후반기에 그 초석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기업 대주주의 방만한 경영과 전횡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재계는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신규 지주회사 전환 혹은 기존 지주회사에 신규 자회사·손자회사가 편입할 경우 상장사와 비상장사는 각각 30%와 50%의 지분을 확보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지분을 확보하면 됐습니다. 고작 몇 %의 지분만으로 기업을 좌지우지 하는 관행을 고쳐나가겠다는 의지입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조항이 시행되면 지분 매입비용 증가로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 여력이 감소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정부는 이 법안들이 향후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경우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고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이 근절되며 금융그룹의 재무건전성이 확보되는 등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이 대폭 확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오너나 대주주의 권한이 점점 더 위축돼 일사불란한 경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논란은 향후 국회에서 활발하게 논의가 진행되고 국민 여론도 수렴되는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추미애 장관 아들 논란과 북한 민간인 사살 파문 등으로 여야가 계속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뜬금없이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찬성 의견을 표명하며 여론 떠보기에 나선 상황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1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이 정강·정책을 개정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최초로 (명시)했기 때문에 그 일환에서 모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여당이 추진 중인 ‘공정경제 3법’에 사실상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당장 재계뿐만 아니라 당내 일부에서도 반발이 터져 나왔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와 연결시킨 터라 그가 쉽게 물러설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사실 김종인 위원장은 누구보다도 진보적인 경제학자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77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터라 김 위원장의 의료보험제도 도입에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진보적이고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정책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의료보험제도 도입 평가교수단 단장을 맡아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고 이를 근거로 박정희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의료보험제도 도입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단 이런 배경만 보면 김 위원장이 자신의 ‘전공’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읽힙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을 야당의 수장이 찬성하는 상황을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책이라는 것이 여야 모두를 흡족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의 이념과 정치 상황에 따라 정책이라는 것도 변색되고 본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타협을 통해 정책이 결정됩니다. 야당 일각에서는 공정경제 3법이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당의 당연한 이념적 접근입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런 일부의 반대를 뚫고 돌진할 기세입니다. 왜 이렇게 김 위원장은 당의 기본 색깔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할까요? 당의 혁신과 민주당 흔들기, 그리고 대선 로드맵의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공정경제 3법을 당 혁신을 위한 매개체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보수라는 말을 집어던지자’라는 말을 할 정도로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가지고 있는 수구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바꾸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의 최대 현안은 바로 당의 혁신입니다. 이를 위한 명분으로 공정경제 3법은 중요한 의제가 됩니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중도 외연확장을 위해 공정경제 3법에 찬성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민주당 흔들기입니다. 공정경제 3법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대표적인 국정과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1야당의 대표가 이에 동조하며 물타기를 하게 되면 김이 빠지게 됩니다.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집권여당의 대표정책에 동의함으로써 민주당의 국정주도를 견제하고 오히려 국민의힘의 정책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김종인 위원장은 공정경제 3법과 노동법 개정을 연계시키려고 합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하는 이 노동법 개정 카드는 공정경제 3법과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비대위 회의에서 “코로나19 이후 경제 체질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려면 노사관계, 노동관계법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여당은 공정경제 3법과 노동법을 함께 개선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공정경제 3법으로 ‘치고’ 노동법 개정으로 ‘빠지는’ 김 위원장의 민주당 흔들기 전략으로 여겨집니다.
정부와 여당이 ‘공정경제 3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김 위원장도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직후 그는 그것과 배치되는 노동법 이슈를 동시에 던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두 사안의 연계 가능성에 선을 그었지만, 결국은 패키지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자연스럽게 민주당에 공을 넘기는 전략인 셈입니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혼란을 겪을 것이 뻔합니다. 친 기업성향 의원들은 노동법 개정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진보색채가 강한 친 노동자 성향의 의원들은 노동법 개정에 반대를 할 것입니다. 이런 혼란이 이념 대결로 이어지면 기존의 공정경제 3법 처리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노동시장 개혁이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노조를 주요 지지세력으로 두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쉽사리 나서기 어려운 주제라는 점을 김 위원장이 간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노동법 개정을 주장할 때 민주당이 이에 쉽게 응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화두를 던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의힘 당내 분위기는, 김 위원장이 공정경제 3법을 꺼냈을 때 ‘너무 진보적이다’며 반발하는 기류가 있었지만 그가 최근 노동법 개정도 같이 들먹이자 ‘이해득실을 따지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대위 한 관계자는 “재벌을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칠 이유가 없지만, 동시에 여당이 꺼내든 ‘3법’에 끌려가는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적절한 카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비대위 회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경제3법과 노동관계법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정경제 3법을 추진하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노동법 개정이라는 타협 불가능한 돌발변수가 하나 끼어들어 골치가 아프게 생겼습니다(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김종인 위원장의 노동법 개정 제안에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김종인 위원장의 대권 로드맵입니다. 사실 공정경제 3법을 김 위원장의 혁신 의지와 연결시키기는 했지만 이보다는 공정경제 3법이 김 위원장의 정치적 야망을 숨기기 위한 위장전술이자 명분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김 위원장은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원내사령탑인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주도권을 거의 넘겨주고 있습니다. 원외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은 최전선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김 위원장은 자신의 생각이 투영된 새로운 정강정책과 새 당명, 새 로고와 당 상징색 등을 정하고 국민의힘을 ‘김종인 당’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차기 주자의 기준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국민의힘 대권 구도의 중심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 시험대가 바로 내년 재보궐 선거입니다. 김 위원장의 임기도 여기까지입니다. 이 중요한 무대에서 낙마하면 김종인의 내일은 없습니다. 그 결과 내년 재보궐 선거를 관통할 ‘창’ 하나를 만들어야 했고 그것이 바로 공정경제 3법과 노동법 개정안입니다. 민주당도 쉽게 처리하지 못할 것이고 내부분열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견하고 던진 승부수인 것입니다. 이런 모든 전략들은 ‘김종인=국민의힘 대선주자’를 관철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김종인 위원장을 ‘미래’로 인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안한 당내 입지,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낡고 수구적인 이미지, 진보와 보수를 오락가락했던 철새 처신 등이 김종인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권력에 관한 ‘촉’이 가장 발달한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들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종인을 대권으로 인식했다면 벌써 그 주변에 줄을 섰을 것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아직도 회의 때마다 쭈뼛쭈뼛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는 김종인 위원장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