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피격’ 문재인 대통령의 ‘잃어버린 10시간’ 논란

[정치언박싱] 청와대 “대통령은 피격 관련 첩보 입수 10시간 뒤 보고받았다” 새벽 1시 관계장관회의 열리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는지 의문 야당, 초기 대응능력 문제삼으며 “대응 분초단위로 밝히라”요구

2020-09-25     노승주 언론인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날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 후 시신훼손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연합뉴스

 

지난 22일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 북한 측 해상에서 ‘민간인 사살 후 시신훼손’ 사건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뒤 불에 태웠다는 '엽기적'인 사건에 대해 해외에서도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북한의 잔혹한 민간인 사살도 문제이지만 이 과정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국방부 등의 안보라인의 대응도 우려를 넘어 심각한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문 대통령의 보고 뒤 대응과 행적과 관련돼 야당 등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문 대통령은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A씨(47) 사건에 대해 사흘 동안 총 4차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지난 22일 오후 6시 36분의 서면보고입니다. 이 보고에는 ‘서해 어업관리단 직원이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서 수색에 들어가 있고, 북측이 그 실종자(A씨)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내용의 첩보가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보고 시각은 우리 군 당국이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이 A씨를 발견한 정황을 입수한 지 3시간여만으로 비교적 빨리 첩보가 입수돼 대통령까지 최종 보고가 이뤄졌습니다. 이때만 해도 총격이나 시신 훼손은 확인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군 당국은 이후 22일 오후 10시 30분 북한이 A씨를 사살한 뒤 시신을 화장까지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합니다. 이에 새벽 1시부터 서훈 안보실장과 노영민 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이 참석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분석 및 대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심야의 안보라인 회의내용이 문 대통령과 공유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안보라인 참모들의 심야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 안보라인과 국방부 장관까지 참석한 이 회의를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때 문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도 군이나 국정원에 대북 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소극 대응’ 논란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문 대통령의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입니다. 

청와대는 22일 밤 북한의 사살 및 시신훼손 사실을 문 대통령에게 추가 보고했는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첩보 수준의 정보로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어려웠다”며 대통령이 22일 밤 어떤 형태로든 총격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군 당국이 시신의 훼손을 최초로 인지한 밤 10시 30분 경 대통령에게는 이 사실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민간인이 북한 해상에서 발견되었다는 최초 보고와 피살 및 시신훼손이라는 제 2보는 사안이 천지차이입니다. 대통령이 이 첩보를 같이 공유했다면 당연히 더 적극적인 대응책이 나왔어야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피살 최초 인지시점에서는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향후 정치적 쟁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청와대 설명대로 문 대통령이 밤 10시 30분 이후 피살 및 시신훼손 첩보를 보고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 전직 군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확인되지 않는 ‘첩보’ 수준을 함부로 보고할 수는 없다. 상황 판단의 기준이 되는 명확한 정보가 획득되지 않으면 대통령도 적절한 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이 구체적 정황과 정보를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실제로 보고가 미뤄졌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정리된 첩보 내용을 대면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때가 문 대통령이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총으로 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내용을 처음 보고받은 시점입니다. 문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에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며 ‘국민이 분노할 일’ 등의 언급을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설명했습니다.

공무원이 실종된 지난 22일 오후 6시 30분 문 대통령은 첫 서면 보고를 받았는데, 10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는 상황이 180도 돌변한 것입니다. 관련 첩보가 청와대에 입수된 지 10시간, 북한군이 A씨를 피격한 지 11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결국 문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이후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해당 공무원이 3시간 뒤 사살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진중권 교수는 이에 대해 “대통령의 10시간이 문제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진 전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초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아직 살아 있었으니, 그때 북에다 구조 요청을 하든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 전 교수는 “설마 표류자를 사살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8월에 이미 김정은이 국경에서 월경하는 자들을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려놓은 상태였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 실장과 서 실장은 오전 9시에 문 대통령에게 두 번째 대면보고를 하게 됩니다. 문 대통령은 해당 첩보의 신빙성에 대해 재차 물었고, 두 실장은 “신빙성이 높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대통령과 안보라인이 ‘믿을 수 없는 첩보’의 신빙성 확인에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일체의 우리 군 대응이나 북한과의 채널 오픈 시도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이 점 또한 야당이 ‘문 대통령의 잃어버린 시간’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펼칠 만한 소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노 실장과 서 실장으로부터 NSC 상임위 회의 결과와 정부 대책을 보고받았습니다. 세 번째 대면보고입니다. 문 대통령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군은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도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낸 입장입니다. 첩보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 확인된 뒤인 첫 대면보고 이후 약 33시간이 지나서야 문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한 것입니다. 

한편, 야권을 중심으로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서면보고를 받고도 23일 오전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청와대 관계자는 “유엔 연설은 지난 15일 녹화했고, 18일에 유엔으로 발송했으며 수정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서 “이번 사건과 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연계하지 말아주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사건 이후 이틀 동안 대북 조치와 대국민 발표 대신 “사실을 확인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야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비판했던 모습과 너무 다르다”며 은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최종적 사실 관계가 확정되지 않았고, 북한과도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무리한 발표를 하기 어려웠다”고 반박했습니다. 청와대는 사건 발생 이틀 뒤 오후에 22일 밤부터 24일 오전까지 군의 보고와 문 대통령의 지시 사항 등을 일괄 공개하며 ‘잃어버린 시간’ 논란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것으로 여론도 매우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지난 10년간 한국 해상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 187명을 구조해 북으로 송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심도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월북’이 의심되는 한 사람의 피살과 시신훼손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남북관계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북한의 우리 공무원 총살에 대해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지난 6월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것에 대해서도 격앙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과 비교해볼 때 이번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이 상당히 심각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 보고를 4차례나 받았는데 이 10시간의 동안 군 최고통수권자가 제대로 대응을 했는지 그 과정을 ‘분 초’ 단위로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의 ‘7시간 행적’과 비견되는 상황인식 아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은 연일 문 대통령의 초기 대응 능력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국내의 사고였지만 이번 민간인 피살 및 시신훼손은 북한의 ‘만행’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과 후유증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은 24일 “대통령을 잘 못 모신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번 사건의 여파가 문재인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회의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 안보라인은 사건의 후유증이 대통령에게까지 미치지 않기 위해 조기 진화에 나선 모습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 대북 안보 관련 민감한 사안은 대통령의 최종 결정과 재가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이번 사건 깊숙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있고 그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문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관계를 평화체제 정착이라는 강력한 기조 아래 인내심을 가지고 이끌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북한의 대응은 남북연락소 폭파와 이번 민간인 사살 및 시신훼손 등의 일방적 ‘만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더 이상 인내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로 바라봐야 할 때가 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