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박싱]이재명 지사, 문재인 대통령에게 '저주' 퍼부은 까닭은?

SNS에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날선 감정 노출 파급력 강한 사안으로 ‘할 말 하는 소신 정치인’으로 포지셔닝  친문 주자와 차별화하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 의지 드러내 

2020-09-07     노승주 언론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6일 자신의 SNS에 당정청의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에 대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자 그 진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대도민 긴급 호소 기자회견 중인 이재명 지사./경기도 제공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6일 여권을 향해 작심하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이 지사는 6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야당의 강경파가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날선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결정에 대해 같은 정당 소속으로서 이렇게까지 원망과 배신 운운하며 감정적인 표현을 썼어야 했느냐는 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먼저 이 지사는 문 대통령을 ‘디스’하기 위해 영리하게 처신했습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당정청의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대해 이 지사는 마지못해 수용한다는 의사를 먼저 표명했습니다. 불만은 있지만 여권의 일원으로서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자락을 깔아 놓으며 빠져나갈 탈출구를 만들어 놓은 뒤, 이 지사는 친문세력의 언터처블 ‘이니’를 직접 공격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친문세력에게 일종의 터부입니다. 그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해도 그것을 따지거나 비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재명 지사가 그런 여권 핵심 지지층 친문의 심리를 모를 리 없습니다. 너무도 그것을 잘 알기에(부인 김혜경 여사가 혜경궁 김씨 댓글조작 논란으로 친문의 조리돌림을 당한 경험을 뼛속까지 기억할 것입니다), 이번에 오히려 그 심리를 역이용했는지 모릅니다. 친문이나 여권이 가장 아프게 느낄 ‘문재인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직접 공격’함으로써 친문과 여권의 반발과 분노를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먼저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지사는 자신을 확실히 여권의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얼핏 보기에 ‘과욕’일 수도 있습니다. ‘시대정신은 내게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지사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관한 한 여권 내에서 가장 ‘강성’입니다. 전국민 지급을 기본 옵션으로 깔고 있습니다. 2차 지원금도 ‘모든 국민 지급’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정부 여당에서 이미 선별 지급으로 가닥을 잡았던 사안입니다. 이 지사가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는 듯하면서 여권을 강력하게 비난한 것에 대해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친문세력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와 이낙연 대표와의 차별화를 위해 강하게 반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지사처럼 누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겠느냐. 집권여당의 불가피한 재정 균형 숙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재명 지사가 선별지급에 대해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것은 자기만 살고 여권은 다 죽어도 된다는 논리 아닌가. 성숙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돌발행동”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친문 핵심으로 분류되는 한 다선 의원은 “이번 사안이 이렇게까지 각을 세울 일인가. 문 대통령을 대놓고 공격을 한 것”이라고 반발했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이 지사의 생각은 ‘민주당 지지층은 어차피 똑같다. (대선) 후보만 되면 무조건 나한테 온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중도나 강성 진보를 끌어오거나 모으려는 심산”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여권 관계자도 “지금은 대선후보 경선을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이다. 이 지사로는 시간상 어차피 자기 세력을 만들기 어려우니 지지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친문도 할 수 없이 자기를 선택하게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특히 “아무리 대권주자 차별화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국가의 재정운용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를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지사가 다른 사안도 아닌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해 이렇게 흥분하는 저의를 따져봐야 합니다.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는 국민의 일상과 직결되는 가장 휘발성이 강한 이슈입니다. 바로 이 문제로 정부여당과 정면대결을 펼쳤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지사가 다른 정부정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정권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유독 이 긴급재난지원금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소 과도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의 신천지 관련 강경 대처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두 가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안의 휘발성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삼이사 남녀노소 모두 이 문제에 대해 비판과 논쟁을 벌일 수 있는 만만하고 대중친화적인 이슈입니다. 정부의 탈원전정책, 뉴딜 정책 등에 대해서는 이 지사가 이렇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대중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사에게 이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는 피아를 확실하게 구별하는 최적의 이슈 파이팅 소재인 동시에 민심도 민감하게 반응해주는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친문 주자에 비해 약자인 이 지사로서는 이만한 도약대도 없습니다. 자신을 여권의 선의의 약자인 동시에 정의를 추구하는 대권주자로 이미지 메이킹할 수 있습니다. ‘지금 비록 물러나지만, 내가 외쳤던 전국민 지원 주장은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정의감도 뽐냈을 법합니다. 

사실 이 지사가 전국민 지원금 지급을 주장한다고 해서 다른 대권주자들에 비해 더 국민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민 100% 지급을 주장하는 사람이 보다 더 ‘애민’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라는 집단심리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는 전국민 지급의 재원이나 대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울분을 토하며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것은 곳간 열쇠를 쥔 문 대통령과 홍남기 부총리가 해결해주는 것이니까요. 남의 집 곳간을 두고 옆집 사는 주인이 곡식 더 내주라고 선심 쓰고 생색내는 꼴입니다. 이 지사로서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더 퍼주자고 하는 것이 국민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습니까? 정작 속이 타 들어가는 건 여당과 정부이겠지요. 

이렇게 자신을 여권 내 할 말은 다 하는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포지셔닝 하는 이유는 당연히 대권주자로서의 대도약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번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대해 이 지사가 이렇게까지 흥분해서 분노를 표출해야 될 사안일까요? 정부 여당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도 있는 민감한 이슈를 그것도 같은 당 소속 정치인이 이렇게 대놓고 반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여당에서는 이 지사의 비난에 대해 아쉬운 반응이 많이 나옵니다. 오랜 행정경험으로 누구보다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이재명 지사가 앞뒤 가리지 않고 전 국민에게 지급하라고 주장하는 것을 두고 ‘너무 골 욕심만 부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2차 전 국민 지급 문제에 대해 동의를 하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한 민간정책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모든 국민에게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일 민간정책연구소 LAB2050(대표 이원재)에 따르면 시민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5%가 ‘2차 재난지원금은 보편 지급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38.5%는 ‘선별 지급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여론읽기에 지극히 민감한 이 지사가 국민들의 보편 지급론에 편승해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여권으로서는 큰 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사의 일부 대권 경쟁자 측에서도 “국민에게 파급력이 큰 이슈인 재난금 지급 논란을 명분 삼아 임기말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계산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여권 내의 다른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번 이슈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그들이 의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재명 지사가 이낙연 대표와 1~2위를 다투는 대권주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국가 중요이슈에 대해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보이는 행보를 계속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신뢰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지사가 비주류 반문임에도 여기까지 온 것은 오로지 이런 이슈 파이팅을 계속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권후보일 때는 유효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지금의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심한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혀를 내두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5년 단임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부터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장 우려합니다. 강력한 대권주자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지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 수정안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를 목숨 걸고 막았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차기 대권주자가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결국 이 ‘반대’가 박근혜 전 대표를 집권여당의 확실한 대권주자로 우뚝 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재명 지사도 아마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이전 원안 고수 전략을 밤샘 연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국가의 중대한 이슈가 오로지 국가와 국민, 민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한 열혈남아의 대권 열정을 위한 것인지, 이쯤 되면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지사로서는 ‘국민에게 욕을 먹느니 같은 편인 정부여당에 욕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