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편지-2]전세계로 수출, '머리카락 마을' 찌니(Kyini)에서
마을 전체가 머리털 수집 집집마다 쌀푸대처럼 쌓아놓고 손질 머리털 수출 세계 4위…중국서 수입해 가발로 재가공해 수출
긴 머리, 긴 치마. 흔히 볼 수 있는 미얀마 여성들의 모습입니다. 시골에 가면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도 자주 만납니다. 우리나라도 누이들이 치렁치렁한 그 머리털을 잘라 팔던 시절이 생각나곤 합니다. 미얀마에는 큰 도시마다 머리카락을 사는 조그만 점포들이 있습니다. 잘라서 팔면 2, 3만원쯤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600달러쯤이니 큰돈입니다. 긴 생머리는 값을 더 쳐줍니다.
얼마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근호가 아프리카의 폭발적인 가발시장을 다루었습니다. 코로나19의 경제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활기찬 이 시장의 비결은 뭘까요. 전세계로 나가는 가발의 원천은 머리카락이고, 그것을 수집하는 주요국가가 미얀마입니다. 세계 4위입니다.
미얀마에는 '머리카락 도시'가 있습니다. 오늘 그곳 찌니 마을로 갑니다. 제1의 도시 양곤에서 450km,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150km쯤 떨어진 시골입니다. 미얀마 지도로 보면 딱 중앙에 있는 도시 메익틸라(Meiktila). 이 도시와 20분 거리에 찌니 마을이 있습니다. 메익틸라는 아름답고 큰 호수가 있고, 현 정부를 이끄는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젊은 시절 신혼여행을 온 곳이기도 하지요.
왜 이렇게 먼 시골에 이 산업이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가난했던 이 마을은 30여년 전부터 농사를 포기하고, '검은 황금'이라 부르는 머리카락과 동고동락하게 됩니다. 전국의 머리카락은 거의 이곳으로 집결합니다. 인도 국경에서 오기도 합니다.
마을 전체가 머리카락을 수집해 집집마다 쌀푸대처럼 쌓아놓고 있습니다. 엉킨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풀어내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곱게 빗질하는 공정을 거쳐 8가지 종류의 머릿단을 만듭니다. 짧은 머리에서 긴 머리까지. 이렇게 손질된 재료들은 대개 중국 상인들이 사가고, 중국 가발공장에서 재가공되어 완성품으로 전세계에 수출됩니다. 미얀마도 코로나19로 경제적으로 비상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이 마을은 손이 모자랄 정도로 활기차서 우리 일행을 놀라게 합니다.
우리나라도 가발산업이 성행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보도에서 '나이지리아는 연 3600톤의 가발을 수입했는데, 이 양의 절반을 사람 머리카락으로 본다면 이것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1천만 명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발산업이 계속 상승세를 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흑인들은 곱슬에다가 머리카락이 잘 끊겨 가발은 필수품입니다. 여성들은 여러 가발로 자신을 치장합니다.
이젠 가발이 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비싸기 때문입니다. 남아공, 나이지리아, 케냐 등 12억 아프리카 인구는 이 시장의 주요고객입니다. 이 시장을 중국이 80% 이상 점유하고 있습니다. 한해 3조원 이상의 매출을 냅니다. 미셸 오바마가 쓰던 가발도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허난성에 이 산업의 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미얀마 양곤에도 가발을 만드는 한국기업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농촌마을 찌니. 그러나 집안으로 들어서면 모두 얽히고설킨 머리카락과 씨름합니다. 마을 청년들, 젊은 부부들이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낸 머리단들이 마루에 곱게 누워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머리카락들은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요. 그리고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완성품을 만들지 못해 중국이 고부가가치를 독점하는 오랜 현실이. 이 상품은 중국 전자상거래 해외상품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산다 훌라잉 부부와 사진을 찍습니다. 한국인은 처음 본다는 이 부부. 아이가 둘이고, 같이 머리카락 공방에서 일합니다. 아내 산다는 남편이 항상 곁에서 일하니 행복하다고 웃습니다. 세계 수출 4위가 되기까지에는 이렇게 소박하고 손재주 좋은 찌니 사람들의 오랜 고단함이 있었습니다.
정선교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