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에게 ‘선택당한’ 이낙연 대표 절체절명 과제는?

[정치언박싱]임기 7개월, 친문에 얹혀갈 경우 ‘문재인 시즌2’ 우려  친문 목소리뿐인 당내에서 친문 탯줄 끊고 민주적 여론형성 기제 만들어 새로운 정치세력 만들어내야

2020-08-31     노승주 언론인
8월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제4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이낙연 의원이 자가격리로 인해 자택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6석 집권여당의 당 대표가 됐습니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 입증된 셈입니다. 이번 민주당의 당 대표 경선을 보면서 한국 정치에서 점차 라이벌 구도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김영삼-김대중의 30여년에 걸친 양김 전쟁, 2002년 광주 경선에서의 노무현-이인제 극적 승부, 2007년 이명박-박근혜의 피 말리는 1.5% 차 경선 승부 등 드라마틱한 대결 구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이렇다 할 박빙의 명승부가 없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경선이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도 안철수 전 대표와의 경선 전쟁이 있었지만 라이벌 대결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저는 한국 정당의 다양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영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했지만 통일문제 등에 있어서 명백하게 정치적 철학이 엇갈렸습니다. 노무현과 이인제의 정치 노선도 진보와 중도보수로 크게 달랐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보수노선이긴 하지만 실용과 원칙이라는 뚜렷한 가치관의 차이를 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백가쟁명식의 정치 노선 경쟁이 시들해졌고, 무엇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보해내는 정치판의 역동성이 많이 퇴화됐습니다. 보수는 여전히 탄핵 뒤 영점을 잡지 못하고 있고, 진보는 친문이 강건한 주류연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민주당 대표 경선을 두고 ‘이낙연이 친문으로부터 선택을 당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낙연이 민주당의 지지 세력을 견인해낸 것이 아니라 민주당 기득권층으로부터 ‘콜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노무현의 부상을 보면 이낙연의 부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노무현은 비주류였지만 동교동계가 밀던 이인제 후보를 이겼습니다. 노무현 바람이 전국에 불었습니다. 노무현의 깃발 아래 지지세력이 우후죽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낙연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낙연 대표가 물론 직관적인 메시지, 합리적 사고, 다양한 경험, 친숙한 이미지 등의 장점으로 당 대표로까지 올랐지만, 순전히 그가 일으킨 바람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이후 친문을 대표할 대권 후보 적임자를 찾지 못한 친문세력이 과도기로 이낙연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물론 아직 최종 대권후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친문은 이낙연 의원에게 거의 몰표를 던졌습니다. 2022년 대선 최종후보로 ‘안정적인’ 이낙연 카드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장외에는 김경수 임종석 조국 등의 친문적자들이 있지만 정치적 경륜이 짧아 중간단계로 이낙연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주류였던 이낙연 대표로서는 거의 천운에 가까운 당선입니다. 이 대표는 노무현 정부 초기 여권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졌을 때 노 대통령이 속한 열린우리당 대신 민주당을 택했습니다. 민주당은 2004년 3월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 앞장섰습니다. 비록 이 대표는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이후 ‘친노(친노무현)’와 그 뒤를 이은 친문이 주도하는 현 민주당에서 ‘소수파’이자 ‘비주류’가 되고 말았습니다. 친문적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출신으로 나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입니다. 

이 대표로서는 자신이 별로 공을 들이지도 않은 친문 대의원 진성당원들에게 특히 고마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선택을 당했다’는 평가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진중권 전 교수를 비롯해 보수야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친문세력에 둘러싸여 눈치만 보고 소신 있는 국정운영을 펴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진중권은 “이낙연은 친문에 얹혀갈 것이다. 문재인 시즌 2가 될 것”이라고 힐난했습니다. 이 대표가 당을 좌지우지 하는 친문세력 눈치보기에 급급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자신이 은혜를 입은 친문이기에 그들에게 밉보이는 순간 끝이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2022년 경선 때까지 계속 철저하게 친 문재인 세력을 등에 업고, 정치를 할 것입니다. 

현재 민주당에는 당의 대의원과 진성당원을 거의 독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친문세력이 당과 정부여당, 청와대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친문의 ‘향도’ 역할을 하는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지금은 정치활동을 하지 않지만 한때 그가 말한 것이 곧 친문의 ‘명령’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유시민이 주도했던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불려나와’ 대화를 한 것이 상징적입니다(물론 유시민이 이해찬의 초기 보좌관이라는 오랜 인연도 있었지만요). 김어준 같은 친문의 ‘스피커’들도 장외에서 ‘훈수’를 넘은, 사실상의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로서는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여론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정권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소통이 오롯이 친문과의 ‘짝짜꿍’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미래통합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어느 한쪽 특정세력의 지도자가 아닌 국민 전체를 통합하는 대통령이 되라’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아니라 여전히 친문세력의 계파수장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정당의 충성 지지층이 그 정당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사실상 당을 떠받치고 있다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친문세력의 주장이 무조건 옳을 수도 없습니다. 미래통합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야당다운 역할을 못해서 그렇지 그들의 정책 가운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수구꼴통야당으로 찍힌 미래통합당에서 나오는 정책은 거의 배척되고 있습니다. 정략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장외의 친문세력이 끊임없이 비판논리를 양산해내고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의 임기는 고작 7개월입니다. 이낙연 대표는 자신의 과제를 ‘국민과 당원의 5대 명령’으로 정리해 내놓았습니다. 코로나 전쟁 승리, 코로나 민생 대책, 코로나 이후미래 준비, 통합의 정치, 혁신 가속화입니다. 재임 중 코로나만 안정시켜도 큰일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 대표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빠져 있습니다. 바로 민주당에 다양한 정치노선이 활발하게 토론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당심이 만들어지는 민주적인 여론형성 기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물론 일사불란한 당내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주류에 조금이라도 이견을 내는 세력에 대해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철저하게 왕따를 시키는 독선적인 구조가 있는 한 민주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 대표 자신이 지도자로서 소신과 용기를 보이지 못하고 친문의 일방적 주장에 끌려간다면 그것이 민주당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전반에 영향을 끼칩니다. 176석 집권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앞으로 권력의 추도 청와대보다 강력한 대권주자 이낙연 대표가 있는 민주당으로 더 쏠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청와대와 이낙연 대표가 친문 눈치만 보게 되면 코로나로 국가비상사태가 된 현 상황을 효율적으로 타개해나갈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지지세력이라고 해도 때로는 그들의 의견과 상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그들을 설득시켜 나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김영삼-김대중, 노무현-이인제, 이명박-박근혜 등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을 때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고 양 계파의 장단점이 확연하게 비교되면서 시너지 효과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친문의 목소리만 있습니다. 친문에서 태어난 이낙연 대표는 그 친문의 탯줄을 끊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는, 딜레마의 과제를 풀어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