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잇단 강경발언 왜 쏟아내나?
[정치언박싱]성추문‧부동산 문제 등으로 지지율 떨어지자 관용 리더십 균열 국가 위기상황 감정적으로 인식할 때 강경대응책 먼저 꺼내게 돼 성숙한 민주주의 위해선 인내‧타협보다 더 강력한 공권력은 없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워딩’이 심상치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소 신중한 성격에다 좀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경청하는 스타일입니다. 웬만해선 상대가 불편해 할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내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몰상식’ ‘적반하장’ ‘음모설’ 등 과격한 발언을 계속 쏟아내 참석자들도 곤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광화문 집회 참여 일부 교계 인사들을 겨냥해 “일이 그쯤 됐으면 적어도 국민에게 미안해하고 사과라도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음모설을 주장하면서 큰소리를 치고 정부의 방역 조치에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평소 세심하게 자신의 발언과 메시지를 관리하며 젠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견 화가 난 표정이었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오전 11시부터 낮 12시 50분까지 2시간 가까이 오찬도 없이 진행되며 문 대통령과 교회 지도자들 간 날선 공방이 오갔습니다. 지난 20일 문 대통령이 “종교가 모범이 돼 달라”며 협조를 당부했던 천주교 지도자 간담회와는 크게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에도 휴업과 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의료계를 향해서도 파업 중단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습니다. 평소 문 대통령의 ‘워딩’은 부사와 비유가 거의 없는, 무미건조한 모범답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교계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적반하장’이라는 과격한 직설화법을, 의료인 파업에 대해서는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라는 비유법을 사용하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문 대통령의 다소 과격한 화법은 지난 24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어떤 종교적 자유도,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국민들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 안전과 공공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공권력의 엄정함을 분명하게 세우겠다”고 경고한 뒤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공권력’이라는 단어는 문 대통령이 집권 내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용어였습니다. 문 대통령 자신이 촛불혁명으로 집권했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그 어느 정권보다 폭 넓게 허용하며 관용도 베풀었습니다. 과격한 시위에 대해서도 강경대응을 자제하고 시위자 안전관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권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향후 불법 시위에 대해 엄정한 대처를 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의 지지가 허약한 정권일수록 철권을 휘두릅니다. 공권력을 입에 달고 삽니다. 전두환 공안정국 때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더구나 촛불민주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이기에 더욱 공권력을 부르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국민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갑자기 ‘공권력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일단 최근의 시국 상황을 문 대통령이 상당히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동안 치적으로 내세웠던 ‘K방역’과 경제 선방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재 확산 억제가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교계 관계자들을 ‘모신’ 자리에서 ‘적반하장’이라는 과한 용어로 강력하게 경고를 날렸던 것입니다. 물론 문 대통령이 지지율을 의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과격한 발언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최근 정부가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단호하게 나서면서 국정 지지율이 다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대통령이 공권력을 단호하게 외치는 것은 국가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통치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공권력이라는 단어에는 객관적인 질서유지책 이외에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권력의 정략적인 의도가 숨어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할 때는 여유와 관용,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총선 뒤 민주당의 성추문과 부동산 파동 등이 터지면서 지지율에도 균열이 생겼고,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관용 리더십도 그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짚어봐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위기상황을 감정적으로 인식할 때 강경대응책을 가장 먼저 꺼내게 됩니다(박정희 대통령의 부마사태에 대한 감정적 인식과 대응이 결국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하게 국정운영을 해온 문 대통령이 최근 일련의 종교계 해악 행위 등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해 다소 과도한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나를 만만하게 보고 너무도 쉽게 도발을 하는 것 아니냐’며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엄정한 공권력 확립과 통치자의 감정적 국정 인식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는 인내와 관용, 타협의 산물이지 조급함과 충동, 독선의 산물이 아닙니다. 최근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면서 문 대통령의 심기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 대통령에게 여론이 손가락질만 하니 상당히 불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향해 휘젓는 그 손가락을 꺾으려 드는 것은 또 다른 저항과 반발을 부를 뿐입니다.
문 대통령이 무조건 참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공권력의 기준을 확립하기만 한다면, 그 공권력이 여권의 지지세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라면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습니다. 위기를 잠시 탈출하기 위해, 청와대로 몰리는 책임론을 잠시 회피하기 위해 공권력이라는 방패막을 무리하게 휘두른다면, 그것은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코로나19와 관련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시위는 단호하게 엄격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료인 파업 등과 같은 사회의 첨예한 쟁점현안에 대해서는 코로나19 관련 사안과 등가식의 대응을 해서는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다행인 것은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며 무기한 집단 휴진에 나선 전공의들에게 ‘고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보류했다는 것입니다. 전날 수도권 지역의 전공의·전임의를 대상으로 즉시 진료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명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이어 형사처벌이라는 초강수까지 동원하려다가 급히 멈춘 것입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인내와 타협보다 더 강력한 공권력은 없습니다.
“왜 이렇게 강경한가. 대화와 협상이 먼저여야지 공권력이 먼저여선 안 된다.”
지난 2013년 12월22일 야당 국회의원 신분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권의 민주노총본부 공권력 투입을 비판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썼던 글입니다.